아닌 밤중에 개한테 물렸다.
12월 12일 목요일에는 비가 많이 왔다. 아침부터 왔나? 밤에는 확실히 내리고 있었다. 13일 금요일에는 계엄 반대 집회도 있지만, "Landuse and Environmental Law" 수업 기말고사도 있었다.
"Landuse and Environmental Law" 수업은 하버드 GSD 첫 학기에 들은 최고의 수업 중 하나였다. "재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로 부터 시작해서, 도시와 필지, 건물의 관계를 건축법과 도시설계법까지 연결시키는 과목이다. 제롤드 케이든은 하버드 GSD와 법학 대학원을 모두 졸업하고, 건축법과 부동산법을 잘 알고 있다. 카리스마 있게 수업을 진행하는 그는, 학생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는 질문을 공격적으로 던지고, 그 자리에서 언쟁하며 학생들을 뜨겁게 수업주제로 끌고간다. 교수법이 일품이라 하겠다. 텍스트 PDF가 아닌 토론과 예시로 생동감 넘치게 수업하는 만큼, 기말고사도 난이도가 있었다. 수업시간에 다룬 여러 주제들 중 두 개의 주제를 던지고, 그에 관해 10분 동안 자유롭게 의견을 펼치는 스피치가 기말고사 였다. 일종의 말하기 시험이었던 것이다. 말하기 시험은 내가 참을 수 없이 좋아하는 것이기에,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10분짜리 무대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30여개의 질문에 모든 답을 먼저 써보고, 완벽하게 외워서 시험을 치기로 했다.
수요일 하루종일 시험준비를 했다. 토요일 까지 제출할 페이퍼를 하나 썼다.
목요일도 하루종일 시험준비를 했다. 목요일 저녁 6시가 되었다. 내일인 금요일 집회에서 쓸 현수막을 출력했다. 현수막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너의 퇴진 나의 졸업", "논문 쓰다가 뛰쳐나온 대학원생들" 등등 재치있는 문구를 넣었다. 정치학 박사 과정의 Y형과 현수막과 스피커, 현장에서 쓸 용품들을 한번 점검했다. 저녁 10시 쯤 되니 "Landuse and Environmental Law" 예상 질문들의 답 작성이 끝났고, 입에도 잘 붙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부족한 부분은 시험장에서 기세로 보완할 수 있을터 였다. 10시까지 얼마나 답안을 계속 중얼거렸는지, Gund Hall 설계실 윗층 사람들이 "뭘 저리 말하나" 하고 계속 힐끔 거렸다.
밤이 늦기도 했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기에 집에 자러 돌아갔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 시험볼 것은 120%로 준비했는데, 정작 불법계엄 비판대회에서 할 말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내일 쓰지 뭐" 라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했다.
지금 쓰는게 맞다.
잠옷 바람으로 다시 학교로 향했다. 자정 쯤이었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뭔지 모를 감정에 갑작스럽게 집을 나와서 일까, 괜히 거리가 스산했다. 침대에서 몸뚱이를 일으켜 나오기 까지 제법 진지한 생각들을 많이 해서, 학교로 가는 내 얼굴은 굳어 있었을 것이다. 뭐에 취한 것처럼 세게 걸어갔다. 학교로 가는 길에는 주택이 많다. 어떤 주택 앞 큰 개가 어두운 거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나를 보고 놀랐다. 개는 크게 짖고, 내 다리를 물었다. 옷은 찢어졌지만 뭐 상처는 없는거 같았다. 개의 주인이 놀라며 집 앞 Porch에서 일어났지만, 난 엄지를 들어보이고 철벅 철벅 발걸음을 옮겼다.
설계실에 도착했다. 도대체 자유 발언 집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이 비오는 한 밤중에 왜 집밖으로 나선걸까. 계엄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말하고 싶은걸까. 책 속에서 읽은 멋있고 논리적인 혁명가 같이 보이고 싶은걸까. 구글 문서 파일에 이런저런 말들이 쓰이고 지워졌다. 문득 계엄 당일 아침 친구들과 주고받은 카톡이 생각났다.
"나 소속 계엄군 되어버림"
"뭐야 우리 예비군 소집되냐?"
"갑자기 40년 전으로 회귀해버리네"
"1공수여단 국회로 이동중이라는데"
어리둥절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일상적인 카톡이다.
얼핏 보면 남의 일을 이야기 하듯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나와 초등학교 때 부터 흙먼지 마시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친구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 괜한 싸움이 나고, 확인 할 수 없는 사실 관계만 뒤엉키며, 우리의 것이 아닌 부모세대의 언어로 서로 감정을 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정치 그런 건 잘 몰라"가 되었다. 괜히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다보니 정치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ㅋㅋㅋ"으로 끝나는 카톡으로 자기 감정을 미리 철회한다. 우린 분노하지도 감탄하지도 않고 그저 관망할 뿐이다. 혹자는 청년세대가 탈정치화 되며, 자기보전적인 전략적 시민이 되어간다고 표현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친구들이 광화문 집회에 나갔으면 했다. 유튜브 뉴스로만 세상을 접하지말고, 직접 의견과 감정을 표출하며 삶의 영역으로 나갔으면 했다. 이 메세지가 내가 계엄 자유비판대회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할 말을 쓰기로 했다.
다음은 자유발언집회 대본의 일부이다.
"...우리가 비록 역사시간에 맨날 졸고 딴 짓만 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른거 같다.
지금 '광장에 나가서 뻘쭘하게 서있다 오는게 무슨 효과가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래도 한번 나가보고, 소리도 내 보고, 내가 뭐 정치는 모르겠지만 이것 아니다, 한마디 외쳐봐야지. 시위도 해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뭐 좀 끓어오르는 감정도 느껴봐야지. 언제까지 세상 일이 남 일은 아니잖아.
당장 큰 변화가 없더라도, 우리가 시대를 통해 공유하는 감정이, 뭐 안되더라도 일단 내가 그 자리에 갔다는 사실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몇 십년에 이정표가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든다. 우리도 이제 나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제법 절실하게 쓰지 않았는가? 나는 젊은 꼰대가 분명하다.
너무 오글거리는데? 뭐 아무렴 어떠랴. 자유 발언 대회인데.
A4용지 한 장을 채우는 글을 쓰고나서야 집에 돌아갈 생각이 들었다. 젖은 잠옷이 다리에 엉겨 붙어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집으로 돌아가 잠에 들었다.
12월 13일 금요일이 되었다. 오전에 "Landuse and Environmental Law" 말하기 시험을 봤다. 랜덤으로 주제를 뽑고, 15분간 준비 한뒤, 다른 학생들 앞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했다. 이미 예상 질문에 답을 다 작성하고 외운 나였기에, 자신감을 가니쉬로 올려 멋지게 시험을 마쳤다. 5시에 집회가 시작 될 예정이었다. 박사 후보생 Y형과 4시 15분에 어제 준비한 플랜카드와 확성기, 스피커, 테이블 등등을 챙겨 하버드 스퀘어로 향했다. 비온 다음 날이여서 그런지, 날이 추웠다. 따뜻한 커피를 사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같이 집회를 주도하기로 한 분들이 모였다. 스미스 센터에는 동네 사람들이 체스를 두는 광장이 있다. 하버드와 마주하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길목이다. 그곳에 책상을 펴고 짐을 풀었다. 5시가 되었다. 홍보가 잘 되었는지 약 40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박사 후보생 Y형은 제법 집회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확성기를 집어들고는
"저희는 12월 3일 불법계엄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하고 토론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추운 날씨에 모여주신 점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라며 집회를 시작했다. 한국어로 먼저. 그 다음은 영어로. 우선 하버드 불법계엄 비판 공동 성명문을 읽었다. 한국어 버전을 먼저 읽고, 영문버전을 읽었던 것 같다. 이 후 어떤 여자 분이 나섰다.
"미국에서 여는 집회인 만큼, 새로운 구호를 외쳐보는게 어떨까요. 제가 먼저 외치면, 여러분이 뒷 구호를 외쳐주세요"
"Hey Hey Ho Ho President Yoon gotta go away
Hey Hey Ho Ho President Yoon gotta go away"
"Ask me what democracy looks like
This is what democracy looks like"
처음들어보는 구호였지만, 리듬감도 있고 또 어찌나 열심히 선창을 해주시는지, 따라하는 사람들도 점차 목소리를 높여 구호를 외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구경꾼들도 이리저리 생겨났다. 날씨가 추워 플랜카드를 들고있는 손이 빨개졌다. 어떤 분이 손난로를 잔뜩 구해와서 시린 손을 달랠 수 있었다.
이후 자유발언 시간을 가졌다. 노란 비니를 쓴 보건학 박사생, 포마드한 MBA 석사생, 정장입은 정치학 박사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말했다. 어떤 의견들은 아주 정제되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되어서, 듣고 있는 내 생각까지 예리해 졌다. 여성학과 정치를 같이 공부하고 있는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군대가 통제하는 전시 상황에서 남성과 여성, 노인과 어린아이들 모두 역사에는 남지않는 이면의 폭력을 당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멋진 발언들을 뒤로 하고 나도 나섰다. 어제 개한테 물리면서까지 썼는데 당연히 말해야지. 시험도 그렇고 집회도 그렇고. 오늘 말하는 운이 튼 날인가 보다. 확성기를 잡고 나름의 상황에 대한 진단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느끼는 정치적 피로감과 무관심, 또 그것들이 불러온 이번 불법 계엄 상황. 친구들에게 전하는 같이 광장에 나가보자는 이야기. 앞서 말한 분들처럼 차분하고 적확한 언어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한테 물리지 않았는가.
1시간 가량의 집회가 끝나고,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이러 쌀국수 집으로 갔다. Le’s Vietnamese Restaurant 이라는 식당이었다. 이 식당에는 소고기 쌀국수가 가장 맛있고 양도 많다. 이 날 따라 시원한 해산물 국물이 먹고싶어, Seafood Pho를 시켰다. 한 입 먹고는 아뿔사, 소고기 시킬 껄. 같이 오신 분들은 주로 하버드, MIT 학생분 들이었다. 학사과정을 보내고 있는 분들은 뉴스에서나 보던 한국의 집회에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한 듯 했다. 공동체가 느낀 감정에 대해 함계 표현하는 느낌은 절로 벅차기 마련인 것 같다. 상기된 얼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다. 카카오톡방에서는 집회 사진과 영상, 윤석열 탄핵과 관련된 정보를 계속 주고 받았다. 추운 날씨에 함께 답답한 마음 풀 수 있어서 좋았다는 훈훈한 카톡도 오갔다.
그날 새벽인 12월 14일, 국회의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윤석열이 파면되었다.
관련 기사 :
https://v.daum.net/v/20241214115932421
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mp.aspx?CNTN_CD=A0003088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