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비판집회가 기말고사보다 중요한 세 가지 이유
첫번째 탄핵안 무산 소식이 들린 7일, 하버드 계엄비판성명문을 작성한 "하버드 민주주의 행동본부" 톡방에서는 이틀 후인 12월 9일 월요일 오후에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말 중에 몇가지 아이디어를 준비하고 행동해보자는 취지였다. 하버드 스퀘어에 있는 스미스 센터에서 만나기로 했다.
12월 9일 월요일. 도시설계 전공 필수 과목인 Element of Urban Design 최종 발표날이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잠을 줄여가며 발표준비를 했고, 발표 이미지와 대본까지 완벽하게 준비 한 상태였다. 혼신의 힘을 다한 프리젠테이션을 마쳤다. 지칠 법도 하지만 나는 해야할 일을 아는 멋진 놈이기에, 또 다시 눈을 반짝이며 스미스 센터로 갔다. 비가 왔었던 것 같다. 하버드 커먼 2층 소파가 비어있어 자리를 잡았다. 한 사람씩 모여 대략 8명이 참석했다. 처음 만난 자리인 만큼, 자기소개를 했다. 짧게 어떤 생각으로 왔고 어떤 일을 추가로 하면 좋을지 덧붙였다.
"안녕하세요. GSD에서 도시 설계 석사하고 있는 어대건입니다. 군을 동원한 계엄은 한국의 거친 민주화를 통해 가지게 된 공동체 트라우마를 강제로 재현한 일입니다. 정치성향과 관련없이 정당성 없는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게되었고, 디자인 대학원 학생인 만큼 영상, 포스터, 홍보물 제작등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왔습니다."
가감없는 솔직한 소개였다. 다른 분들의 소개가 워낙 멋있어 나도 한껏 포장하고 싶었지만, 이 정도가 사실이었다. 나는 뭔가 해야한다는 기세는 있는 멋진 놈이지만, 뭘 어떻게 하면 효과있는지 아는 똑똑한 놈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홍보물 및 영상 제작 정도 였을 것이다.
정치학 박사, 국제관계학 박사, 경영학 석사 등 처음 접하는 분야의 사람들이 많았다. 나름의 아젠다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회의를 진행하며 국제 법원에 윤석열을 고발하자는 아이디어, 하버드에 걸려있는 윤석열 사진을 내리자는 아이디어, 한국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공명하여 물리적 집회를 하자는 아이디어 등등등. 각자 전문성을 가진 분야가 있어 이야기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국제 기구에 윤석열을 제소할 수는 있지만, 어떤 어떤 조항 때문에 정식으로 사건이 접수 되긴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고발했다는 사실 만으로 여론에 파동을 줄 수 있다 등등.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 윤석열 사진을 제거하는 건의문을 작성했고, 시간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난 효과적으로 일하는 법을 아는 똑똑한 놈은 아니지만, 낄 곳 안 낄 곳 구분 못하는 바보는 또 아니기에, 조용히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듣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12월 13일 하버드 스퀘어에서 열릴 집회 홍보물 제작을 하게되었다.
집에 왔다. 12월 13일, 즉 4일 후에 집회가 열리기 때문에 빨리 포스터를 만들어야 했다. 설계 과목 발표를 마친 지 하루 만에 또 마음이 급해졌다. 하루동안 굉장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샤워를 하는데 머리가 멍했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시험하나, 집회하나, 토요일 까지 페이퍼 하나. ENTJ적인 생각이 자연스레 시간표를 작성하고 있었다. '좀 부담은 되지만 나는 멋진 놈이니까 전부 잘해 버려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계엄이라는 사안이 나에게 일상의 과제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계엄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현하고 그 부당성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일은, 석사 과정 과제따위가 바쁘다고 우선순위가 밀려서는 안된다. 또 "시험하나, 집회하나, 페이퍼 하나" 처럼, 캘린더에 적어놓고 해치워야 하는 일상적 업무로 취급하는 것도 부당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유는 한국 현대사에서 계엄이 가지는 의미이다. 2024년 10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을 서술한 책이다. 최전선에서 군인들과 맞서는 투쟁의 이야기가 아니라, 후방에서 시체를 닦고, 안치하고, 관을 만들어주고, 향을 피우는 소년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책은 국가 폭력의 물리적 피해와 정서적 피해를 공동체가 어떻게 떠안는지 보여준다. 일선에서 싸우는 "투사"들은 물리적으로 죽는다.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육체에 있는 혼이 빠져 나간다. 이선의 투사들은 정신적으로 죽는다. 왜 죽었는지 모르는 시체가 아침 저녁으로 동사무소에 안치된다. 시체의 신원 확인을 위해 소년과 소녀들은 시체에 얼룩진 피를 닦는다. 어떤 시체는 총검에 목젖이 드러나고, 어떤 시체의 매니큐어 바른 손톱은 몇 일이 지나 생강 처럼 검게 부푼다. 쏟아진 창자를 집어넣는 일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유족들이 찾아오면 천을 들춰 신원을 확인하고 다시 덮는다. 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주변 목공소에 연락해야 하고, 시취를 감추기 위해 잡화점에서 양초를 계속 사와야 한다. 이선에서 이 후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죽은 혼령들의 환상을 보며, 정신적으로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신형철 평론가를 인용하자면, "응징과 복권의 서사이기 보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기와 천착"이, 국가 폭력이 공동체에 가한 위해를 여러 층위로 독자에게 전달 했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가 경험한 계엄이다. 단지 광주만의 이야기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공통으로 가진 시대 기억이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의 트라우마. 부정적인 감정, 결핍의 감정은 중독성이 강해 고개를 돌리는 것에 많은 힘이 든다. 이제 60년 지나 겨우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나가려는 시대를 다시 혼란에 빠트리려고 한것, 그것이 12.3 계엄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공유된 시대 기억을 집권 엘리트들이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계엄이라는 단어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 지 모른다. 그들의 한국 현대사는 우리가 살아온 것과 다른 서사이다. 윤석열 검사 정권과 군 수뇌부들은, 2024년 한국인으로써 산다는 것이 어떤지 모르고, 자신들의 폐쇄적 계급행위만을 답습하고 있다. 또 그 폐쇄적 구조가 합리적이라고 우길 줄도 알아서, 국민 40% 이상의 지지를 끌어낼 수도 있다. 이건 내가 수능 수학에서 1등급을 받은 것과 같은 구조다.
나는 수학을 못한다. 하지만 수능은 1등급을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3월 모의고사에서 4등급인가 3등급인가 받았던 기억이있다. 건축학과를 가고 싶어 이과를 선택한 나에게는 큰일이 아닐수 없었다. 또 당연히 SKY를 가고 싶던 나는 전혀 납득하지 못하고, 수학을 죽어라 공부했다. 문제집을 서너번씩 풀고, 오답노트를 작성하고, 틀린 문제는 답안지를 참고해 풀이법을 외웠다. 결과적으로 수능에서는 1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문제만 풀줄 알지, 수학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 기하와 벡터, 미적분 통계를 넘나들며 수학적 춤을 출 수 없다. 그저 문제에서 제시하는 풀이 힌트와 그 힌트가 유도하는 풀이 해법을 다 외웠을 뿐이다.
윤석열은 소통을 못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었다. 윤석열로 대변되는 그 계층은 국민 정서와 소통하지 못하지만 지지율을 이끌어 내는 공식은 알고 있다. 내가 수학적 사고를 하지 못하지만 문제 풀이는 할 수 있는 것 처럼. 시간을 들여 자극적인 여론전을 통해 사실이 아닌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을 줄 알고, 만들어낸 믿음을 집결시켜 지지율과 같은 지표로 만들 줄도 알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합리적인 비판을 무시하거나 공격하여 무마시키는 극악무도함도 가지고 있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문제풀이를 하는 정부에게, 국민은 소통의 대상이 아닌 공학적으로 계산하고 통제하는 변수일 뿐이다. 우리와 시대적 공감대가 없는 소수가 우리를 밥상머리를 결정짓게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세 번째 이유는 우리 엄마가 날 잘 키웠기 때문이다.
샤워하는 동안 이런 생각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 마자 포스터를 만들었다. 3가지 안을 만들었다. 1안은 사실명시 + 중립성(흰색 + 검정색), 2안은 민주주의 + 활기참(하늘색 + 노란색), 3안은 선동성 + 정치적(빨간색 + 회색) 정도의 컨셉을 가지고 진행했다. 톡방에서 투표를 했는데 1안과 3안이 동률이었다. 3안은 자극적이라는 생각에 1안으로 진행했다.
여러 문구와 오타를 조정하고 홍보를 시작했다. 3일 후가 집회날이었고, 홍보시간은 부족했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빠르게 집회를 열고 그 소식을 다른 유학생들과 한국 본토에 알리는게 중요한 상황이었다.
톡방에서는 스피커, 확성기, 현수막 프린트, 홍보, 성명서 낭독 및 집회 일정 등등이 조율되기 시작했다. 이런 바쁜 와중에 한 축이 되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12월 13일 금요일, 집회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