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비상 계엄과 하버드_1

오늘 만우절 인가요?

by 대건

할아버지 때 부터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일상과 연결짖는 이 작업은 제법 지루하다. 역사는 옛날 이야기 같고, 내 오늘과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 그런데 이게 웬걸.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WhatsApp Image 2025-06-20 at 11.25.02.jpeg 12.3 불법 계엄 비판 자유발언 현장, 하버드 스퀘어


12월 3일 윤석열 내란 괴물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 기말고사 기간으로 한참 바쁠 때 였다. 아침 8시 쯤 일어나서 핸드폰을 봤는데 이게 무슨일인가.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군과 경찰이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시차 덕분에 한국에서 한 밤중의 일을 아침부터 생중계 받기 시작했다.

방송 삼사 뉴스이니 거짓은 아닐텐데, 내가 자라나고 대학과 군생활을 했던 한국 사회는 도저히 "계엄" 따위와 가깝지 않은 곳이었는데, 이게 무슨일인가. 미친 놈이다.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군대에 있는 친구가

"나 소속 계엄군 되어버림"

이라고 보냈다.

"뭐야 우리 예비군 소집되냐?"

"갑자기 40년 전으로 회귀해버리네"

"1공수여단 국회로 이동중이라는데"


등등의 카톡이 오갔다. 이거 잘못된거 아니냐라는 반응은 없었다. 그만큼 현실적이지 않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기말 고사 최종 발표가 얼마 안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작업실로 갔다. 가는 길에 계속 뉴스를 확인했다. 뉴스 속으로 뚫고 들어갈 듯 발걸음은 빨랐다.


"친구 아들들이 군에 있는데. 제발 별일없길" 이라 어머니께서 보내셨다.

작업실에 도착했다. 가방을 놓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국회로 군인들이 진입을 못해 헬기로 공수한다는 뉴스가 떴다.

탱크앞을 어떤 비쩍마른 남자가 막아서는 사진이 떴다.


계엄 반대하러 나온 사람들한테 총이라도 쏘려는 심산인가?


문든 어렸을 때 본 영화장면들이 스쳤다. 계엄군 총알에 시민들 내장이 쏟아지던 애니메이션 장면. 정확한 디테일은 기억이 남지 않지만,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진영논리를 떠나서, 계엄은 한국의 국민적 트라우마이다. 윤석열 미친 새끼야.


하버드 정책대학원인 케네디 스쿨이 생각났고, 케네디 스쿨 석사생 A에게 카카오톡을 남겼다.


"누나, 계엄령인데 우리 공동성명 발표하자" 08:57

A : "진짜 미친놈 아님? 돌아버리겠다" 08:58

"탱크돌린거 사진봤어?" 08:58

A: "진짜 말이 안되는 듯. 미친놈인듯함" 09:02

"사람들 모아보자" 09:07

A: "그래 좋아" 09:07

"좋아. 저녁에 만나자" 09:12

A: "케네디스쿨 학생들 몇명 모으고 있어" 12:49


하루종일 손에 잡히지도 않는 작업을 하는둥 마는둥 했다. 오후 다섯시가 되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및 윤석열 정권 규탄 관련 공동 성명 링크가 나왔고, 한인 학생들 사이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케네디 스쿨 1층 윈터가든에서 성명문 작성이 진행되었다. 어리둥절하고 믿기지 않았지만, 역사책에서 배운 "...학생 시국선언문", "...학생운동" 같은 것들이 머리속에 떠올랐고, 뭐 그런것처럼 행동해하지 않는가 싶었다.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보다는 빠르게 성명문이 발표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9시 30분까지 참여의사를 받기로 했고, 결과적으로 36인 공동성명문이 완성되었다.


"겨우 1년 7개월 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연설을 했습니다. 그 날, 수백명의 하버드 학생들과 교수진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2월 3일 오늘, 바로 그 동일한 공간에서 비상계엄 선포라는 대통령의 결정을 비판하기 위해 다시 모여 있습니다...(중략) 이에, 하버드 대학교의 한국인 학생 및 교수진 36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합니다."

미국 내의 여론 형성을 위해 영문 버전을 작성했다. 한국에도 기사를 내기 위해 언론사에 접촉하는 것이 동시에 진행 되었다. 크림슨/한국일보/코리아 타임즈등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왔다.

자정이 되었다. 첫 기사가 나왔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진행한 덕분에 북미 유학생 사이에서 처음으로 나온 퇴진요구가 되었고, 이후 옥스퍼드, 존스홉킨스 등에서도 퇴진 요구가 일기 시작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등 국내에서도 성명이 나왔다.

"하버드에서 발표된 이번 성명은 유학생사회에서 처음으로 나온 퇴진 요구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 보스턴 코리아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 일을 진행한 분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분들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아는 사람도, 글을 예쁘게 쓰기도, 사람들을 이끌 카리스마도 부족한 대학을 갓 졸업한 풋내기였다.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왔다.

탄핵까지 가게될까? 2차 계엄이 있을까? 내 대학생활, 직장생활을 했던 서울의 거리들은 어찌 되는거지? 다시 사람들이 거리에서 싸워야 되는 걸까?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 계엄 해제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지만, 군을 동원한 이상 그 정도 행정 절차야 무시하고, 나중에 여론과 사상 교육을 통해 통제하면 되는 일이였다.

계엄성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있다.
정서 공동체가 존재를 위협받아 생기는 불안한 감정일 것이다.

이게 내가 계엄 당시 느낀 막연한 초조함이었다.


한국사람이라는 내 정체성은 내 기억과 경험에 기반한다.
예를 들어보자. 초등학교 때 먹던 분식집 500원 컵떡볶이. 당시 내가 먹은 떡볶이는 그냥 떡볶이가 아니다. 거시적 틀과 극히 개인적인 변수가 만나는 순간이다.
당시 쌀을 만들고 떡을 유통하는 한국의 농업구조, 외국에서 수입하는 여러재료들로 대변되는 국제 무역 구조, 그 일부를 담당하는 사회 구성체인 가족이라는 단위 속 성장기 아이의 허기짐이라는 변수가 만난 것이다.
중학교 때 다니던 농구학원.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 안하고 가던 순대국집.
대학교 때 전집에서 먹던 막걸리.
이 모든 순간들이 거시적 틀과 미시적 변수의 접점들이다. 이 접점들이 개인을 형성하고, 개인들이 모여 국민을 형성하고, 우리는 공유된 시대기억을 가진 세대가 되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다.


내가 가진 일상의 추억들은 한국이 가진 특수한 지리, 기후, 역사가 만들어낸 문화 속에 있다. 문화는 자유롭게 사는 사회 구성원들이 시간 속에서 그 의미를 덧씌워 가며 변화한다. 계엄을 통해 군권력으로 사회를 통제한다는 것은 이 유동적인 문화 굳히고 죽이는 것이다.


내가 느낀 존재론적 불안은 한국 사람이라는 내 정체성이 느낀 위협이었을 것이다.
여기 까지 생각하니 잠이 올까 싶었지만 잠은 잘 왔다. 신기한 일이다.

4일이 지난 12월 7일, 탄핵안 투표가 무산되었고, 우리는 계속 행동해야 했다.



기사 링크 :

https://bostonkorea.com/news.php?mode=view&num=39027

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857955?sid=100





다음은 성명문 전문이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관련 하버드대학교 한국 학생 및 교수진 36인의 공동성명문

2024년 12월 3일, 21시30분


겨우 1년 7개월 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하버드대학교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Pioneering a New Freedom Trail)’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했습니다. 그 날, 수백 명의 하버드 학생들과 교수진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2월 3일 오늘, 바로 그 동일한 공간에서 비상계엄 선포라는 대통령의 결정을 비판하기 위해 다시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수없이 해명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괜찮은 것 맞냐. 대체 무슨 일 때문에 비상 계엄(martial law)이 선포된 것이냐. 원래 그렇게 쉽게 선포하느냐.”라는 낯선 질문을 수십 번, 수백 번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든 설명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맞으며, 오늘 일어난 이 사태가 대한민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말입니다.


이에, 하버드 대학교의 한국인 학생 및 교수진 36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선포된 비상계엄령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비민주적인 행위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77조에 따르면, 계엄은 ‘전 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에 대한 적절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였 을 뿐만 아니라, 계엄령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을 위반하였습니다. 또한 계엄 선포 이후 군병력을 동원하여 국회를 폐쇄하며 민주주의 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삼권분립을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말했던 자유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에, 오늘의 비상계엄령 선포가 과연 필요한 결정이었는지를 말입니다. 하버드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을 빠른 시간 안에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한 자랑스러운 사례로 접하고는 합니다. 하지 만 오늘 일을 기점으로 미국 등을 비롯한 온 국제사회가 또 그 무엇보다 저희 주변의 친구들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게 될 것 같아 우려됩니다.


오늘 저희는 당신으로 인해 부끄러웠고, 오늘 당신의 결정은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한국인 학생 및 교수진 36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진 사퇴를 통해, 아직 대한민국에 당신이 말한 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함을 스스로 증명하길 촉구합니다.


참고: 공동성명문 서명인 목록 (하버드대학교 한국인 학생 및 교수진 36인, 가나다 순 정렬)

고수현, 권대욱, 김근욱, 김도연, 김민호, 김선, 김세인, 김소연, 김슬기, 김우희, 김현수, 김형준, 박기, 박재민, 백규재, 소익성, 손지 현, 신정현, 양지수, 어대건, 오재원, 이기정, 이동욱, 이소민, 이수정, 이의환, 이지윤, 이치운, 임소라, 임태균, 장소현, 정갑용, 정성 연, 조은수, 차민형, 최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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