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시작.

by 대건
1997년 출생, 나와 사촌누나, 사촌형

하버드 대학. 세계적인 지식의 상아탑에서 석사생으로 2년동안 나는 생활하게 되었다. 미국인, 유럽인, 백인, 흑인, 동양인, 라티노, 동남아시아인. 다양성 속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는 것은 과제이다. 2024년 7월에 간단히 현대사를 점검하고, 그 연장선 속에 나의 미국 유학생활을 써내려가 보겠다는 생각은 제법 6개월 간 끌렸다. 하지만 하기로 한 이상, 끝까지 해보자.


1997년 1월 8일 내가 태어났다. 1997년은 전두환 짝꿍이던 노태우에서, 대한민국 첫 민주 정권인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해이다.



어린 내가 기억하는 가장 이른 정치적 사건은 2008년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이명박 정부 광우병 파동 당시에 광화문 집회에 나선것이다. 아마 현장체험활동을 내고 등교를 하지 않고 집회에 간걸로 기억한다. 집회는 어땠고 내가 구호를 열심히 외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체험학습 보고서에 집회 현수막을 몸에 두르고 있는 사진을 첨부하며, 내가 뭔가 멋진 활동을 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려고 현수막을 학교에 가지고 갔던 것도 같다.


다음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이다. 2009년,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이다. 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2동에 살았다. 라페스타라는 중심상업가는 술집과 노래방, PC방등이 많이 있어, 사춘기 초등학생들이 어른인 채 하며 많이 놀러가던 곳이다. 앞 뒤 관계가 기억나지 않지만, 왠일로 아버지가 일찍 집에 왔고, 왠일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가족이 라페스타 술집에 갔다. 홍합탕을 시켰던 기억이 있다. 야외테이블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초등학생 시절 나의 용돈벌이 수단은 두 가지 였다. 신문 스크랩과 아빠 구두닦이. 아빠가 출근하기전에 구두를 닦으면 300원, 신문 스크랩은 500원 정도 였다. 당시 분식점에서 종이컵에 떡볶이를 담아주는 컵떡볶이가 500원 가량임을 생각할 때, 신문 스크랩은 고임금 노동이었다. 구두 닦이는 아침에 아버지 출근전에 해놓으면, 아빠가 검사 후 돈을 줬다. 신문 스크랩은 학교에 다녀와서 남는 오후 시간에 해놓으면 엄마가 돈을 줬다. 방과 후, 신안 아파트 거실에는 석양이 식탁까지 잘 들었고, 노란 빛 조명삼아 가장 짧고 쓸말 많은 신문 기사를 찾던 기억이 있다. 어려서 부터 신문을 읽도록 독려한 어머니의 안배로, 나는 글 읽기 자체에 익숙하게 자랐다.


중학교 1학년에 아이리버 아이팟 등등 첫 핸드폰과 MP3가 생기며, 어머니는 "나는 꼼수다"라는 방송을 들어보라고 했다. 여러 정치인사들의 비리 의혹에 대해 파헤치는 B급 저널리스트 김어준의 방송이었다. 욕설도 나오고 제법 선동적인 내용이어서, 나같이 성격있는 사내놈한테는 잘 추천을 안할 법도 한 방송이었다. 정치인 이름도 많이 나오고 검사가 어쨌니 법사위가 어쨌니 당시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들어봐, 라는 어머니말에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핑크색 아이리버 MP3겸 핸드폰에 흰색 유선 이어폰 꼽고, 영어학원 수학학원 오가며 계속 들었다. 학원 숙제는 다 답지를 배꼈지만, 뭔지도 모르는 이 팟캐스트는 꼼꼼히 들었다. 친구들한테 아는 척 하기도 좋고, 뭔가 대단한걸 알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나는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17학번이다. 신입생 때 박근혜가 탄핵 되었다. 탄핵 집회에 갔던 기억이 있다. 가족과 함께 한번, 혼자 한번 갔을 것이다. 가족들과 같이 갔을 때는 제법 추웠던 것을 기억한다. 혼자 갔을 때는 탄핵이 인용되고 축하하는 집회였을 것이다. 당시 멋부린다고 빨간머리에 뿔태안경을 하고 갔었다. 외신기자들이 한국 민주주의가 대단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국가적 문제 사안을 우리힘으로 해결했다는 자부심에 흥분했었다. 갓 성인이 된 나에게, 광화문으로 가는 가득찬 지하철 안에서의 기억.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광화문역에서 내려 같은 방향으로 가던 기억. 집회가 끝나고 근처 순대국 집에서, 어른내기의 상징인 소주를 먹던 기억. 옆 테이블 아저씨한테 탄핵이 되었다면서요, 하고 말걸었던 기억. 등이 있다.


같은 해 5월 본 "노무현 입니다"라는 다큐는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의 확고한 공작으로 정치적 감정은 이미 특정 정파에 기울어 있었지만, 그 면밀한 부분들을 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 이다. 자세히는 기억 안나지만, 노무현의 불같은 진심, 지역감정을 해결해야 한다는 시대의, 혹은 개인의, 사명, 다수에게 그의 진심이 전해지며 이루어진 제법 어려운 승리의 일대기, 그 나름의 꿈이 현실 행정으로 바뀌었을 때의 어려움. 노력. 역사. 현실. 현실. 현실.

나루토, 슬램덩크에도 감동해서 눈물 흘리는 내게는, 이것보다 더한 소년 만화는 없었다. 그 사람이 텅빈 시장에서 "안녕하세요 노무현 입니다"라고 되내이며 걸어가던 다큐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미 눈 두덩이가 퉁퉁부어 그 큰 화면이 잘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2018년 12월 문재인 정부의 군복무기간 단축과 징집병 임금인상이 발효된 이후 군대에 간다. 대학교 진학 후 춤에 빠져서 휴학하고 춤을 열심히 추던 나에게, 군복무기간 단축은 복학을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춰 주었다. 7사단 최전방 GOP에서 대략 20개월 가량을 보내게 된다. 복학한다. 이왕 복학하는거, 건축학부에서 열심히 해보자 마음 먹는다. 매 학기 나름의 철저함에서 열심히 설계작업을 한다. 대학교 2학년에서 5학년에 졸업하기 까지, 내 작품들은 건축 잡지에 실리고, 서울시장상과 한국건축설계학회 상을 받게 된다. 졸업까지 총 3번의 인턴경험을 했고, 각종 공모전에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이후 하버드 도시설계 대학원에 합격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12.3 계엄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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