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브릿지 첫발, 뉴욕과 넓은 세계 01

청춘은 오직 전진입니다.

by 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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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곳인가.

내가 나비가 되기 위한 요람이.


지루한 16시간의 비행을 막 마쳤지만,

보스턴에 내린 나의 눈빛은 신생아처럼 반짝였다.

힘들수록 빛나는 것. 그것이 청춘이니까.


보스턴 Logan Airport 1층으로 나왔다.

한국의 습한 여름을 뒤로하고 도착한 7월의 보스턴은 화창했다.

시간이 묻어 거뭇거뭇해진 붉은 벽돌 건물들이 파란 하늘 아래로 늘어섰고,

찰스 강에 비친 햇살이 물결 따라 부서졌다.


학교가 있는 캠프릿지는 보스턴에서 좀 떨어져 있다. 버스를 타고, 전철로 환승해 Somerville로 향했다. 계약한 자취방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버드 GSD학생들은 크게 세 가지 housing option을 가진다. 첫 번째는 학교 기숙사이다. 바우하우스의 대표 격이자 하버드에서 교수직을 했던,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기숙사로, 신입생들은 대부분 방 배정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On Campus Housing이다. 학교 측에서 소유하고 있는 주택들을 학생들에게 임대하는 방식이고, 보통 3명에서 4명의 룸메이트들과 살게 된다. 세 번째는 off campus housing이다. 개별 집주인과 rent계약을 통해 사는 방법으로, 자취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Facebook market place나 whatsapp housing 그룹 톡방을 이용해 구할 수 있다. 나는 디자인 대학원인 GSD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Somerville에 방을 하나 빌렸다.


pre-college-harvard-program.jpg Harvard Yard


다리 위를 건너는 전철너머로 보스턴의 전경이 멀어졌다. Kendal/MIT역을 지나고, Central 역을 지나 Harvard역에 내렸다. 2개나 되는 짐가방은 무거웠지만, 청춘의 힘을 쥐어짜 계단을 올랐고, 눈앞에 적갈색 벽돌건물이 들어왔다. 여기가 그곳이다! 적갈색 벽돌건물은 하버드를 대표한다. 학교의 로고와 굿즈들도 이 적갈색을 테마로 이용한다. 건물들이 가운데 정원을 두고 네모난 모양으로 둘러 있었고, 그 가운데 학교 설립자인 John Harvard의 동상이 있었다. 동상의 발을 만지면 자식농사가 잘된다는 말이 있어서, 아침부터 사람들은 긴 줄에 서 있었다. 동상의 발등은 바래진 소원들로 반짝였다.


영화였나 드라마였나.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 학교 전경이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찍던 차에, H형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사진을 그렇게 찍어. 지금 완전 관광객이야."


H형으로 말하자면 아버지 친구의 아들이다. 훤칠한 키에 무심한 헤어 스타일, 총명함으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주 멋있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교환학생을 간 것도, 미국 대학원을 지원하게 된 것도, 형이 롤모델이었기 때문이다. H형은 하버드 공공정책 대학원인 케네디 스쿨을 졸업하고 이제 학교를 떠나던 참이었고, 마침 내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바통터치 하듯이 형의 자취방을 이어받게 된 것이다.


흥분 때문이었을까 시차 때문이었을까, 형을 따라 자취방으로 가는 길은 몽롱했다. H형은 가는 길에 있는 매사추세츠 bluebike, 식료품점과 동네 정원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내 새로운 거점은 위치가 아주 좋았다. GSD 설계실인 Gund Hall에서 10분 정도 거리였고, 5분 내에 식료품점과 bluebike가 있었다. 2층 단독 주택에 빨간 문에 집이 보였다. 집에 들어서자 에콰도르, 콜롬비아, 미국 등등에서 온 룸메이트들이 나를 반겼다. 정신없이 인사를 하고 1층 연두색으로 칠해진, 내가 살게 될 방으로 갔다. 아아. 넓다.


자취방에 짐을 풀었다. 캠브릿지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핸드폰을 개통하는 것과,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 매사추세츠는 크게 두 개의 지역 번호를 쓰는 모양이었다. 617과 857. 나는 617을 쓰기로 했다. 이유는 617이 857보다 모양이 더 예쁘기 때문이다. 외국인 신분이기에 복잡할 거라 생각했지만, 핸드폰 개통은 도착한 지 3시간 이내에 끝났다. 좋아. 기세를 몰아 다음 날 Bank of America에 방문예약을 했다. 미국에서 많이 쓰는 은행은 Bank of America와 Chase은행 정도가 있다. 나는 BOA에 먼저 계좌를 만들기로 했다. 복잡한 절차 없이 신용카드를 바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은 SSN(Social Security Number)가 있어야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다. 하지만 SSN은 미국에서 급여거래를 추적하기 위해 부여한 ID이기 때문에, 고용되어야만 번호가 나온다. 방금 캠브릿지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SSN 없이 활동할 수 있는 BOA를 선택했다.


여권, 비자, 집 계약서 정도의 서류가 필요했다. H형이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준 덕분에 나는 캠브릿지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미국에서 해야 할 일들이 끝났다. 일주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이제 뭘 해야 할까. H형이 예일 대학교와 뉴욕을 방문하면 어떠하겠냐는 제안을 했다. 낯선 환경에서 이런저런 일처리를 하느라 힘들기도 했고, 아직 시차적응도 다 되지 않았던 차였다. 하지만 나는 반짝이는 청춘이고, 청춘은 오직 전진이기 때문에, 새로운 모험은 언제든 환영이었다. 삼일 후인 토요일에 Yale 대학교 및 뉴욕행 버스 티켓을 샀다.


KakaoTalk_20250902_103129933.jpg 건드홀 내부 전경


남은 이틀 동안에는 학교 구경을 했다. 먼저 Gund Hall에 갔다. 아아, 건드 홀. 건드 홀은 Architecture, Urban Design, Landscape, Design Engineering, Real Estate, Urban Planning 등 GSD의 모든 석사과정이 공유하는 거대한 작업실이다. 5층 규모로 되어있는 건드 홀에선 모든 전공의 학생들이 각자의 책상을 가지고, 다른 학생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수업하고, 놀며 생활하게 된다. 학기가 시작되면 각자의 책상은 모델과 도면, 케이스 스터디와 책들로 가득 차며, Final Review기간에는 잠 못 드는 열정으로 밤이 뜨거워진다. 주변의 적색 벽돌과 대비되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들어서자 cafeteria인 chauhaus의 커피 향이 났다. 어지러운 책상들이 계단식으로 이어지며 눈을 꽉 채웠고, 기둥 하나 없이 펼쳐진 공간은 두꺼운 천장 구조체로 받들어져 있었다. 학기 시작 전이지만, 세계 곳곳에서 이곳으로 올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계속해왔던 것처럼, 여기서도 새벽을 달려 멋진 작업물을 만들게 될 터였다. 열심히 사는 건 쉽다. 그냥 하면 되니까.


KakaoTalk_20250901_091129514_01.jpg 중앙 도서관 열람실


건드를 나와 중앙도서관에 갔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사이로 두꺼운 그리스식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기둥 뒤로 적색 벽돌이 높게 쌓여 있었고, 사이사이 기다란 창문이 나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대리석 기둥과 계단이 펼쳐졌고, 약자를 구원하는 천사와 전쟁터의 병사를 병치시킨 그림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미국의 군대는 약자를 구원하는 천사인가? 짙은 갈색의 목재로 마감 된 열람실이 나왔고, 천장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오크책상 위에는 금색 램프가 올라가 있었고, 넓은 공간 양쪽으로 두꺼운 책들이 늘어서 있었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공간이었다. 멋있긴 하지만, 이곳은 내가 지낼 공간은 아니었다. 법이나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멋쟁이 디자이너는 모름지기, 설계 모형이 쌓여있고 도면이 널브러져 있는, 무질서하고 혼란한 작업실에서 머리를 뜯을 때 가장 빛다는 법이다.


버락 오바마가 공부한 Law School, 여러 주지사를 배출한 Kennedy School, 하버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MBA 경영대학을 구경했다. 각각의 학교가 방향성과 규모에 맞는 시설과 캠퍼스를 가지고 있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구경했는데, 얼마나 걸었는지, 만보기가 돈이었다면 나는 이재용이 되었을 것이다. 마침 경영대에서 Asian Business Conference가 열리고 있었다. 아시아 시장에서 규모 있는 기업을 가진 사업가들을 초청한 행사였는데, 중국기업 세 곳과 일본기업 하나가 초청연사였다. 정장을 차려입은 학생들이 강연장을 채우고 있었다. 강연이 끝나자 간단한 간식거리와 커피가 제공되며 강연자들과 격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다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networking을 했다. 정장을 입고 멋있게 머리를 하고 서 있는 학생들이 미래의 사업가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이런 것도 있군. 재밌다.


KakaoTalk_20250901_094434003.jpg 경영대학교 Conference


도착한 지 첫 일주일은 마치 하루처럼 뭉탱이로 지나갔고, 처리된 정보량과 시차 덕분에 머리는 팽팽 돌고 있었다. 하지만 청춘은 오직 전진이기에, 토요일 아침 나는 예일 대학교 행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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