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1997년 1월 8일 출생.
일산 신도시에서 자라며 동네 중학교를 다니고, 특목고인 외고를 졸업하고 인서울 대학을 졸업한 나에게 제법 특별한 이벤트가 생겼다.
하버드 건축 대학원에 합격하게 된 것.
맨날 동네에서 농구공이나 튀기고, 벨튀나 하고 놀던 나에게 이례적인 이벤트가 생긴 것 이다.
"하버드"라는 간판명은 허물이 좋아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헷갈리는 상태가 되었다.
몸에 비해 큰 양복을 입어 어색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글을 써 보기로 한다.
나는 누구일까?
가족사진
내 친할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는 가족 사업을 하셨다고 한다. 본인의 형제, 사촌들과 함께 했던 사업은 흥망성쇠가 있어, 종지엔 가족 중 한명이 감옥에 가야하는 상황도 생겼다고 한다. 친할아버지는 책임을 가지고 감옥에 다녀오신다. 6.25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고, 가족들이 극적으로 헤어졌다가 재회하는 굴곡을 거친다. 이후 남북의 이념갈등 속에 몇몇 가족은 북으로 향했고, 남쪽에 남은 가족들은 연좌제를 피하기 위해 그 사실을 숨기며 살았다. 이후로도 몇 번의 사업과 실패로, 아버지의 성장과정은 굴곡이 있게 된다.
내 아버지는 1950년대 생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제법 무거운 생각을 하게 된다. 본인의 부모님을 부양하고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목을 내놓고 민주화 운동을 하는것이 썩 내키지 않았을 지도, 그만큼 부양의무가 절실했던 것 이었을 지도, 역시 둘 다였을지도 모르겠다. 여름에는 수박을 떼와 거리에서 팔고, 가을이면 대학 서클의 탈춤 공연을 하고 막걸리에 취하며 청춘을 보낸 아버지가 사회에 섰을 땐 주머니에 500원 한장이 있었다고 한다. 현대 건설에 입사를 하고, 중동에 다녀온 옆집 아저씨를 보게된다. 70년대 중동에 3년간 다녀오면 서울에 집을 마련한다는 말을 듣고, 파키스탄으로 향한다.
이방의 땅에서 맨땅에 부딫히며 일하는 틈틈, 배낭하나 꼬나쥐고 유럽을 돌아다니며 아버지는 세상을 꿈꾼다. 귀국하고, 본인의 사업을 시작하고, 결혼한다.
내가 출생했다.
이후 그는 새로운 회사 건물을 올리고, 세계 곳곳의 나라와 사업 파트너쉽을 맺었고, 사장이자 판매원으로 활동했다.
내 외할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는 아주 생활력이 강한 분이었다. 제법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6.25 전쟁 당시에는 집에 있던 소를 다 잡아 장조림으로 만들어 피난길에 오르셨다고 한다. 이 후 남편을 만나 독자적 경제를 꾸리시면서, 밭도 매고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고 안해본게 없다고 하신다. 열 명 가까이 되는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딸로 태어나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 것을 생활력에 동력 삼아, 차별이 심했던 그 시절 본인의 자녀는 아들 딸 모두 대학교에 보낸다.
내 어머니는 1960년대 생이다. 어머니는 시골 소녀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본인 어머니 장사에 쓸 쌀을 씻고 두부 사오는 것을 도와드리고, 여동생과 남동생을 깨워 학교로 갔다. 겨울 아침 찬 물에 쌀을 씻는게 그렇게 손이 시렸다고 한다. 산 속으로 향하는 전철길을 2시간 걸어가면 학교가 나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영특하게 태어나셔서, 학업 뿐 아니라 웅변대회에 나가는 등, 온 동네 1등은 다 했다고 한다.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산과 들을 뛰놀기 보다는 책 속의 세상이 더 재미있었다고 한다. 연필심을 굽혀 밑줄을 치며, 책 속에 낙엽 한 장 놓고 달력을 뜯어내며, 책의 주인공과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어머니는 청춘을 보낸다.
어머니는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한다.
내가 출생했다.
이후 그녀는 여성인권 NGO 단체에서 양성평등 교육자로써 활동 했고, 성폭력 상담사와 소외계층 돌보미로 활동했다.
제법 단순하게 설명한 이 개인사에는 많은 시대 상황이 얽혀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를 살아냈다. 그리고 그 삶은 지금 나에게 이어졌다. 굴곡지고 얼룩진 한국 근현대사를 그들이 살아 낼 수 있었던 정동은 한 가지 였을 것이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자는 것. 따뜻하게 잠들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편안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삶. 성별에 차별 받지 않을 수 있고, 교육 받을 수 있고, 폭력에 다친 마음을 만져 줄 수 있는 삶.
그렇다면, 그 들이 겪어온 시대는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