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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Aug 06. 2024

할아버지의 이야기

내가 이렇게 철이 없어도 되는걸까?

1957년 경, 종로 광신약방, 할아버지

    내 기억이 닿는 한, 친할아버지는 아파서 누워계실 때가 많았다. 제법 어렸을 적 돌아가셔 추억이랄 것도 많이 없다. 장난감을 많이 사주시고, 민물 게를 잡아서 보여주셨던 기억이 난다. 


    친할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신화와 같이 느껴지는 옛날 이야기속에서 현재의 나와 연결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가 살아온 삶의 궤도를 정확히 추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역사의 안개 속을 들여다 보는 일은 제법 많은 상상을 해야만 그 초점이 맺히는 듯 하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살아온 시대는 마치 꿈 같은 것이어서, 그들 개별의 이야기는 하나의 서사로 얽혀 내 기억에 존재한다. 어릴적 들어 어렴풋한 이야기 파편들이 친할아버지의 것인지, 동시대를 살아온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것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지만, 역시 모두의 것 이겠지만, 나는 1900년대 이후 사건들 속에서 그들의 삶을 상상해볼 것이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1925년 생이다. 삼형제 중 둘째 였다. 일제강점기가 1910년에 시작해 1945년에 끝났으니, 한참 일본의 통치 하에서 태어난 셈이다. 그는 자라며 일본식 이름을 쓰고, 일본어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1944년 19살 소년은 일본에 의용군으로 착출되어 만주로 끌려간다. 소련과 전투에서 패배하고, 일본군 포로로서 잡히게 된다. 1945년, 포로 생활 중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다. 조선은 해방된다. 소련군은 조선인 포로들을 풀어준다. 20살 청년은 품에 지닌 것 하나 없이 만주 벌판에 던져진다. 만주에서 걷고, 기차를 타고, 마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마지막에는 말을 한 필 훔쳐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안장이 없어 배개를 깔고 앉아 돌아 왔는데, 먼 길의 여행으로 배갯잇 피가 흥건했다고 한다. 포로 생활 중 장티푸스에 걸려 돌아온 할아버지는 죽도록 앓았다. 장티푸스가 옮아 본인의 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포로 수용소에서 들은 해방소식에 기뻤을까? 감옥같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풀려났을 땐 어땠을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을까? 기차편은 어떻게 알아봤을까? 역사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을까? 병에 걸린 채 말을 타고 돌아오는 길은 어땠을까? 본인이 걸려온 병으로 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어땠을까? 20살 청년에게 시대는 야속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1947년 냉전이 시작된다. 전쟁에서 돌아온 청년은 지금의 보건복지부인 보건사회부의 공무원이 된다. 이념갈등이 시작된다. 미국과 소련, 자본인지 공산인지, 어떤저떤 "주의"들 간의 대립은 너무나 확고해서, 22살 청년의 가정에 까지 스며든다. 자본주의가 맞네, 공산주의가 맞네, 너네는 쓸데없이 그런걸 왜 고민하니, 등등의 이야기가 형제간에 오고 갔을 것이다. 잠시 평화가 지속된다.

 

    할아버지는 이제 25살 청년이 되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난다. 북한은 서울을 점령한다. 공무원이던 할아버지는 피난길에 오른다. 부산을 제외한 남한은 모두 점령된다. 좌익활동을 하던 할아버지의 형은 점령군활동을 하셨던 것 같다고 한다. 이제 공산주의 시대가 왔으니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UN군이 참전한다. 인천상륙작전. 서울을 수복한다. 북한군은 후퇴한다. 큰할아버지는 행방불명 된다. 좌익활동 단속이 심했던 당시 가족들은 그저 큰 아들이 없어졌다고 했지만, 후퇴와 함께 월북했을 거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이산가족이 되었던 것일 수 도 있다. 


    피난 길은 어땠을까? 짐은 어떻게 쌌을까? 가족들은 어떻게 챙겼을까? 잠은 어떻게 잤을까? 너무 빨리 다시 찾아온 전쟁이 어땠을까? 만주에서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을까? 부산에서 생계는 어떻게 유지 했을까? UN군이 서울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어땠을까? 돌아온 고향의 폐허를 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갑자기 없어진 형의 빈자리는 어땠을까?


역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할아버지는 이렇듯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인물임에도, 그의 젊은 날의 경험은 나와 상이하다. 흔적이 뚜렷한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흔적과 유리되어 살아와서, 이를 상상하는 과정은 많은 이질감이 든다.


    1956년, 31살,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결혼한다. 이 때는 보부사에서의 경험을 살려서 종로에 약방을 차린다. 위 사진의 장소는 종로 1가 대로의 광신약방이다. 당시 임대료가 비싸 광신 안경점과 나누어서 약방을 운영했다고 한다. 대략 1957년도 쯤으로 추정한다. 



    1959년, 34살, 본인의 둘째 아들이자 나의 아버지가 태어난다. 



취미 활동, 등산과 사진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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