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에세이_나의 미발표작
여름 즈음, 힐마 아프 클린트에 대해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짧은 원고를 썼다. 마침 부산에서 전시를 보고 난 뒤였다. 전시를 보며 써보고 싶은 얘기가 생긴 참이라 어려움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 그 즈음 우연히 에밀리 디킨슨의 시 몇 편을 번역할 일도 생겼다. 어느 시각예술 작가의 패브릭 작업들과 시를 매칭하는 프로젝트였다. 비슷한 시기 두 작가에 대한 작업을 하게 되어서였을까. 에밀리 디킨슨과 힐마 아프 클린트가 둘 다 ‘비밀’을 지닌 작가들이었다는 것에 새삼 밑줄을 긋게 되었다. 나는 그들처럼 자기 작품을 세상에 모두 다 공개하지 않는 작업자에게 때로 동경과 시기심을 느낀다. 나의 엄마가 그런 작업자이기 떄문이다. 신빈은 자기 그림을 세상에 선보이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는 화가다. 나는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작가다. 내게는 이따금 더욱 절실하게 사랑이 필요하다. 나는 엄마가 나만큼 사랑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까봐, 줄곧 두려워 하고 있는 듯도 하다.
에밀리 디킨슨이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건 아니다. 겨울에 이르며 나는 수업을 준비하려 그가 남긴 것들을 찾아보곤 했다. 수업 커리큘럼에 크리스티앙 보뱅이 쓴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책 『흰 옷을 입은 여인』과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 『수—영원해!』를 넣었다. 파시클 출판사에서 나온『수—영원해!』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 중에서도 수잔 디킨슨에게 보냈던 시들 중 77편을 골라 묶은 시집이다. 시집 표지에는 수잔에게 보냈지만 수잔의 남편이자 에밀리의 오빠였던 오스틴 또는 그의 정부 메이블에 의해 지워져버린 에밀리의 시 「One Sister Have I in the House」가 실려 있다. 이 문장은 이상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지워진 시가 표지가 된 시집인 것이다. 검열되어 거칠게 지워져버린 시는 이제 언어적인 것보다는 시각예술적인 것에 가까워져 보인다. 나는 책을 전시의 시공으로 읽어내는 예술 이론들에 대해 설명하며 이 시집을 이야기했다.
수잔에게 바친 에밀리의 시는 세상 모두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었다. 에밀리 디킨슨 사후 시들이 출간되는 과정에서 「One Sister Have I in the House」가 혹독하게 검열된 것은, 그 시에 수잔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영원해!(Sue—Forevermore!)’ 시의 마지막 행은 그렇게 마쳐진다. 찬미와 애정이 수잔이라는 한 사람에게 향한다. 이 시는 에밀리 디킨슨이 가지고 있던 원고 말고도, 수잔이 받은 편지에도 실려 있었기에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단 하나의 원고였다면 말소되었을 것이다. 미발표 시에 가깝지만 수잔이라는 단 한 사람의 수신자가 있는 편지이기도 했기에, 지금 우리는 이 시를 함께 읽을 수 있다.
세상으로부터 숨긴 비밀을 갖는 일과 영원을 꿈꾸는 사랑을 앓는 일은 서로 닮아 있는 것만 같다. 이 시의 마지막 행을 따라 읊조려볼 때면 비밀을 함께 앓는 기분이 든다. 에밀리 디킨슨을 직접 만난다면 그가 내게 자기 저택의 문을 열어주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과연 편지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녀는 평생 부유하게 산 여자였고, 생애 가운데서 돌연 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의 삶을 선택한 시인이었다. 오빠의 배우자가 된 여자에게 열렬한 애정의 시들을 쓴 여자이기도 했다. 나는 늘 흑백으로만 그의 이미지를 보아왔기에 보뱅의 책을 읽다가 뒤늦게 그녀가 빨간 머리칼을 가진 여자였다는 걸 깨달았다. 책으로만 접속하던 작가에 대해서는, 그 사람에게 육체가 있(었)다는 걸 때로 개의치 않게 되기도 한다. 내게 그는 시이고 편지다. 그 사실이 우리에게 잔인할 때조차 피치 못하게 그러고는 한다. 에밀리 디킨슨은 편지가 불멸할 거라 믿는 시인이기도 했다. 1869년 친구이자 조언자였던 토마스 히긴슨(Thomas Higginson) 대령에게 쓴 편지(Letter 330)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제게 편지는 언제나 불멸처럼 느껴집니다. 육신의 친구 없이 오직 마음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A Letter always feels to me like immortality because it is the mind alone without corporeal friend).”
전통적인 몸과 마음의 이원론에 기초한 구절이다. 그러나 나는 편지에게 몸이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에밀리 디킨슨이 만들어낸 텍스트-몸들이 이제 무척 귀중하게 분류되고 연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것들을 비밀로 간직했지만, 지금 그 비밀들은 ‘Letter 330’ ‘L330’처럼 체계적으로 분류되고 보존된다. 온라인 아카이브에서는 수많은 편지와 파시클 등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이미지들은 복제되고 유통되며 에밀리 디킨슨을 다른 방식으로 물리적 불멸에 가깝게 만든다. 파시클은 한때 단 하나의 원본으로 서랍 속에 간직되어 있었던 비밀이다. 1886년 에밀리의 죽음 이후 여동생 라비니아는 언니의 방에서 이 바느질된 종이 뭉치들을 발견한다. 마흔 권 정도의 파시클,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그 종이 묶음은 당시의 표준적인 편지지보다 크기가 조금 작다. 그것이 시인의 비밀이자 은둔자의 종이 영토였다. 이제 그들은 불멸하는 몸이다. 사람의 것이든 그렇지 않든, 미디어란 틀림없이 몸이므로.
1862년 10월 26일, 에밀리 디킨슨이 죽음을 맞기 24년 전 스웨덴 스톡홀름 근교에서는 또 다른 비밀이 눈을 뜬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살아 있는 동안 풍경화와 초상화 등을 선보이며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자신의 추상화는 비밀로 삼았다. 1906년 힐마 아프 클린트는 ‘신전을 위한 그림들(The Paintings for the Temple)’을 그리라는 계시를 받는다. 신지학 그룹의 다른 이들은 그것을 겁낸다. 그 작업이 힐마를 미치게 할 거라 경고한다. 그러나 힐마는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은밀하고 강렬한 힘에 이끌린다. 그녀의 눈에 비친 세계의 이치는 빛이자 어둠이다. 빛을 향해 올라서거나, 빛으로부터 거꾸러지는 거대한 삼각탑처럼 정교하고도 단순한 것이다. 그녀는 서로 상반된 것들이 세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아챈다. 구상(figurative)의 형태를 지니기에 그것은 너무 아이러니하다. 그녀는 세계가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지 않는다. 그녀가 본 것을, 정말로 그녀가 보았다고 믿어줄 거라 여기지 않는다.
그녀가 세상으로부터 숨긴 것들은 한편으로 가장 은밀한 영토에 촘촘하게 기록되었다. 힐마가 ‘신전을 위한 그림들’ 연작을 시작한 시기는 ‘청색 화첩(Blue Notebooks / Blå Böckerna)’의 제작 시기와 겹친다. ‘청색 화첩’은 힐마의 작업이 지니는 내적 체계를 기록한 아카이브적 문서이자 실험적인 장치, 해설서이자 질서였다. 이 파란 표지의 종이 시공은 가장 정교하고 노골적으로 작가의 목소리를 지면 전시의 일부로 삼는다.
1914년 힐마 아프 클린트가 말뫼에서 열린 발트 전시회에 초상화와 풍경화를 내보일 때 같은 전시회에서 칸딘스키가 추상화를 전시한다. 70년 후 힐마와 칸딘스키는 ‘영성’과 ‘추상’이라는 말 조각들이 열어보인 자리에서 다시 서로의 가장자리를 마주한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추상화가 최초로 공개된 것은 1986년 로스앤젤레스 미술관에서 열린 예술의 영성: 추상 회화 1890-1985(The Spiritual in Art: Abstract Painting 1890-1985)에서다. 그 전시에는 최초의 추상 회화 작가들로 알려진 바실리 칸딘스키와 피에트 몬드리안, 카지미르 말레비치, 프란티셰크 쿠프카, 그리고 힐마 아프 클린트가 속해 있었다.
1986년 로스앤젤레스 전시가 이뤄진 건 1944년 81세로 그 몸의 눈을 영영 감은 힐마 아프 클린트가 ‘사후 20년이 지날 때까지는 추상 작업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뒤, 그녀의 요청보다 두 배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20년도 40년도 충분하지는 않았다. 최초로 공개된 그녀의 추상화는 기존 유럽 아방가르드 양식과 지나치게 다른 무언가였다. 그것은 너무 고립된 것, 너무 많은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는 것, 충분히 순수하게 추상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논란을 맞뜨렸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자신의 작업이 영성(spirituality)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시인하지만 동시에 작업에 어떠한 내러티브와 상징성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모더니즘의 기수였다. 그러나 힐마 아프 클린트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회화는 역사적인 정전으로 요약되기에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너무 고립된 것, 너무 고대적인 것, 사기 행각에 가까워 조롱당할 수 있는 비밀이었다.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가장 ‘최초의’ 것이었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업이 최초의 추상화로서 존중받게 된 것은 모더니즘 말기의 영향력이 지배하던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 탈근대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2000년대에 이르러서다. ‘세속화 이후의 성스러움’은 9·11이 무너뜨린 폐허에서 다시 긁어모아 찾아낸 예술의 실마리였다. 2008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성스러움의 흔적(Traces du sacré)》 전은 1980년대와 달리 성스러움과 절실함을 연결한다. 현대 미술의 당혹스러움과 절박함, 폐허의 인상이 깃든다. 사람들은 이제 사람이라는 고립된 폐허의 거주자들에 매혹되는 대신, 사람이 아닌 것들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이때 힐마 아프 클린트라는 여성 작가의 추상화들이 ‘성스러움의 흔적’을 지니고서 그들 앞에 새로이 나타난다.
그녀는 남자가 아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닌 것에 대해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그 사실들을 이해하려 할 준비가 되었다. 실은 준비가 되었든 그렇지 않든, 그들은 절박하다. 절박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이들마저 절박하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모르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힐마를 발견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에 대해 떠올릴 때 내가 가장 아끼게 되는 사실은, 그녀가 자신의 비밀을 강박적일 정도로 촘촘하게 화첩에 기록했다는 점이다. 글과 그림이 화첩의 지면이라는 흰 땅에 깃들었다. 표지를 여는 일, 또는 닫아 감추는 일. 때로 페이지는 가장 은밀한 장소다. 가장 사적인 어리석음, 어여쁨, 찬미와 애정이 페이지라는 시공에 기록되고 전시된다. 어느 페이지에 사랑을 고백하고 그 위로 표지를 덮기. 20년, 40년이 지나도 조롱당할 분석과 도상을 지면에 전시하고 그에 표지를 덮기. 그것들이 에밀리 디킨슨과 힐마 아프 클린트가 해보인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들의 작업을 한번의 여름 가운데 마주했을 때, ‘비밀’이라는 단서가 그들의 삶을 비추었다. 그리고 나는 ‘비밀’을 떠올릴 때면 또 다른 한 사람을 생각한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인 듯도 하다.
올해 여름은 내게 숲에 다닌 계절이기도 했다. 군산 작업실 뒤편 숲 공원은 신빈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했다. 신빈, 나의 엄마는 어릴 때 숲의 밤에 휘말려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숲에서 은밀한 보석들을 줍는 법을 안다. 에밀리 디킨슨, 힐마 아프 클린트……. 명사들의 삶을 공부하면서도, 나는 ‘비밀’이라는 말을 들으면 도리 없이 신빈을 떠올린다. 몸속을 울리는 그녀에 대한 미묘한 감정과 조우한다. 엄마는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는 작업자다. 그녀의 그림들은 아름답다. 그렇지만 나는 어린 시절 그 그림들이 볕이 드는 베란다에 걸려 있던 풍경을 기억한다. 찬란한 햇빛이 신빈의 재능을, 몰입을, 그림들을 바래게 만들던 풍경…… 그 풍경은 아름다워서 더 이상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는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굳이 그림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발표하지 않았고, 자기 재능을 시험하던 모든 사회적인 힘들에 결코 붙잡히지 않았고, 거기에 대해 아무런 아쉬움도 없었다. 오랫동안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았다. 그러다 요즘 혼자서 다시 그림을 그린다. 7천 원을 주고 잘라온 커다란 판자 앞에 엄마가 있다. ’우리에게 꼭 온 세상이 필요한 건 아니야.’ 신빈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서로가 있다면.’ 그건 우리만의 비밀들이었다. 나는 비밀에 반한 어린아이로 살다가, 혼자서 어른의 세계로 던져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신빈은 여전히 자기만의 비밀을 갖고 있다. 딱히 세상 없이도 자생할 것만 같은 비밀이다.
나는 그래서 엄마의 그림들이 더 아름다운 건지, 아니면 그래서 쉽게 다락이나 창고에 감춰지곤 하는 건지,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덜컥 어른이 되었다. 이제 나는 읽히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곤 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래서 나는 신빈이 될 수 없겠지, 될 필요가 없다는 건 알지만, 아무렴, 하고 고개를 젓는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에 영영 가닿을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며 우리가 된다. 여름 숲에서 내가 쓴 일기에는 그런 얘기들이 나온다. 그게 나의 미공개 원고로 남을까. 아니면 나는 그것도, 지금 이 글처럼 조금씩 꺼내어 흘려 내보내게 될까. 사랑을 따라 흐르길 바라면서, 세상 없이 자생하는 비밀 대신 다른 걸 구하게 될 수도 있을까.
아무렴 나의 여름 미공개 원고 다음 페이지에는, 신빈의 물감 팔레트를 몰래 써서 내가 그린 그림이 있다. 신빈의 그림과 똑같은 색깔의 그림(또는 얼룩, 놀이 흔적)이다. 나는 그것까지 미공개로 두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이런 게 있었다고, 엄마가 그림을 그렸고 나는 그 곁에 있었다고 말하려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렸다. 그 그림을 본 누군가가 내가 보는 것과 똑같은 걸 볼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신빈의 딸이고, 그러니 반쯤은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에게 꼭 온 세상이 필요한 건 아니야.’ 그렇게 속삭이는 듯한 은밀한 작업들을 발견할 때면 나는 도리 없이 엄마를 생각한다. 어떤 작업들은 정말로 그렇게 비밀의 몸이 된다. 수십 년,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흐르도록……. 그러나 세상은 때로 기어코 그들을 필요로 한다. 오스틴이 지워버린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수잔이 간직했던 편지에서 다시금 발견해 복원해낸다. 여기 우리가 간절히 찾으려던 비밀이 있다. 그렇게 말하듯 비밀의 이미지가 온 세상에 퍼져 나간다. 부산에서 힐마 아프 클린트의 전시를 보며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건 ‘파란 화첩’ 곁에서였다. 나는 그 정교한 종이 전시의 시공에게 표지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세상은 시간에 기대어 그 표지를 활짝 열었다. 세상이 너무 일찍 망가트려버리지 않은 비밀이 그 안쪽에 숨겨져 있었다. 그 비밀은 힐마의 곁에서, 그녀와 단둘이 서로의 몸으로 겹쳐졌을 것이다. 사람의 몸과 작품의 몸. ’우리에게 서로가 있다면.’
《문학의오늘》 소설 신인상,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크로스로드 프라이즈, 《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을 수상했다. 소설 『공기 도미노』 『수초 수조』 『연인을 위한 퇴고』, 에세이 『사랑으로 돌아가기』, 공저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