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에세이_초고를 쓰는 일
2018년 여름, 나는 소설가의 방에 머물며 레지던시를 배경으로 한 공포 소설을 기획했다. 창작자로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을 공포로 대치시키고 싶었다. 동시에 집필 노동자로서 무상으로 쓸 근사한 공간이 주어진 행운을 새옹지마랄지 호사다마의 맥락에서 풀어보고자 했다. 복 중에 화가 있다는 말처럼 이 여정이 내게 어떤 불안을 동반하는지 알고 싶었다. 삶을 장르로 분류한다면 성장 소설보단 공포 소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어려서부터 나는 의심이 많았다. 잘 놀라고, 높은 곳을 무서워했고, 발목까지 잠기는 물이 두려웠다.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조용히 떠는 일이 잦았다. 인간이란 본래 그런 존재라고, 오래도록 믿어왔다.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을 살다가도 별안간 오싹해지고, 오금이 저리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식은땀이 흐르며 심장이 쿵쾅대는 순간들이 있었다.
슬프고 무서운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밤이 오고,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새가 날아들고,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그림자가 나타나고 소리가 일렁이다가 멎는다. 늦은 밤 가족들이 돌아오고 불이 켜졌다가, 다시 캄캄해진다. 이튿날, 하나씩 집을 나서면 어제가 반복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안도하는 만큼 불안했다. 익숙해지지 않았다. 반복되고 갱신될수록 슬프고 무서운 일의 가짓수도 늘어났고, 그 양상도 달라졌다. 그런데도 살아가는 인간이 실로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집이 있었다. 집은 공포를 펼쳐 보이고, 그것을 깨닫게 하는 장소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담겨 조용한 낮 한때를 보내다가도, 온몸으로 공포가 번져나가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감각에 집중했다. 담벼락의 균열을 헤아렸고, 기하학적인 패턴의 벽지를 노려보며 그 속에서 이 세계 동식물을 만들어냈다. 무늬는 천장에도 이어져 있었으니, 이야기는 끊기지 않았다. 받아들이고 상상했지만 전부를 헤아릴 수는 없었다. 그게 다 무엇이었을까.
유년기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공포의 기원을 추적해 근사한 소설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차에 소설가의 방에 들어섰던 것이다. 책상과 의자, 침대와 커다란 창문. 모든 게 갖춰진 방이었다. 이제 원하는 만큼 쓸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으나 이야기는 좀처럼 한데 모이지 않았다. 생각은 넓게 퍼지기만 했고, 파편적인 메모만 늘어난 채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메모마저 막히면 방을 나섰다.
산책 코스는 정해져 있었다. 명동 길목을 가로질러 성당까지 가거나, 을지로를 지나 광화문과 종묘까지 걸었다. 때로는 서울역 청사에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한두 시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호텔 로비에서 접객을 하던 이들이 나를 환대했다. 잘 쓰고 있느냐고 묻는 이는 없었지만 이제 들어가 열심히 쓰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반나절쯤은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온기를 손에 쥔 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른 아침 눈을 뜨면 그 온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꿈이었나 싶었다. 침대 위에서 어제가 반복되리라는 걸 예감했다.
예감은 비슷하게 들어맞았다. 소설가의 방에 머무는 동안 나는 바라는 만큼의 초고를 쓰지 못했다. 대신 수십 개의 메모를 남겼고 그곳을 떠나기 전 하나의 문서로 묶어 저장했다. 파일명은 ‘게스트’였다. 그 메모들이 2025년 11월 출간한 『호스트: 환영의 집』의 설계도가 되었다. 설계도를 살피며 초고를 쓴다는 말의 의미를 새로 생각하게 되었다. 초고란 완성으로 향하는 첫 단계가 아니라,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이야기의 조각을 머물게 하는 임시 거처에 가까웠다. 언어가 되기 전 몸에 먼저 도착한 생각들, 가시화되지 못한 불안과 두려움, 사적인 기억과 보편적인 정서가 서로를 돌보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 방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이야기가 고일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에 가까웠다. 환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묻게 되었다. 이야기란 환대할 수 있는가.
2018년 여름, ‘명동 산책’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의 여정은 수현과 그의 쌍둥이 딸인 실비와 실리의 등장과 함께 나오에서 금자로, 다시 명숙으로 이어졌다. 그들이 가상의 공간인 청림을 오가며 저마다의 역사를 써 내려가길 원하면서, 2025년에 머물렀던 시간은 1995년과 1945년, 명동대성당이 세워진 이듬해인 18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나는 그들을 알고 싶었고, 가능한 한 더 긴 역사를 품은 채 더 넓은 영토에 다다르고 싶었다.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슬퍼하는지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공포가 있다고 믿었다. 명동에서 감각했으나 그때는 나란히 쓰지 못했던 공포였다.
시공을 가로질러 소설의 주요 무대인 청림에 머물며 문턱을 넘고 경계를 드나들 때마다 소설 안과 밖에서 손을 내밀어 준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는 환영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소설가의 방에서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내려다보면 명동 시내가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몇몇은 구석진 자리에 붙박인 채 머물러 있었다. 나는 고요한 방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백지를 마주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받은 환대는 그들이 내어준 것이거나 그들이 받아야 할 몫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두려웠다.
이야기는 환영하는 동시에 공포와 불안의 정체를 보여줬다. 두려움으로 다져진 땅 위에 집 한 채가 들어섰다. 전쟁이 모든 일상을 잠식해 가던 시절에 지어진 집으로 일제강점기에 부를 축적한 이가 마을의 당산나무를 베어 애장 옆에 지은 일본식 가옥이었다. 이곳에서 식민 권력의 폭력과 이주, 이산의 역사가 어떻게 현재를 흔드는지 알고 싶었다. 이 공포의 적층을 측량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억압을 드러내야 했다. 억압은 공포로 현현했고 공포는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았다. 불안, 고통, 분노, 굴욕감, 수치심 등으로 갈라지는 감정들은 식민지의 질서 속에서 유령처럼 떠돌며 누군가를 죄인으로, 또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나는 그 감정들의 불균형과 모순을 따라가며 공포가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점령하고 주둔하는지 쓰고자 했다. 그것은 소설가의 방에서 적어 내려갔던 메모들 아래 잠들어 있던 말들이었다.
이야기는 환대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자주 되뇌었다. 2018년과 2025년, 적지 않은 시차를 두고 공포의 기록을 읽고 쓰는 동안 공공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모두의 공간에서 낮에는 어린이자료실에서 근무하고 저녁에는 종합자료실을 지킨다. 서가를 돌보다 보면 호텔 로비에서 마주했던 환대를 떠올리곤 한다. 이곳에서 나는 ‘안녕’이란 말을 생애 이만큼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언제나 더 많은 인사를 받는다. 그제는 자신이 길치라 책을 찾지 못하겠다는 7살 아이에게 책을 찾아주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어제는 종이접기 책을 독파하는 어린이에게 색종이를 몇 장 건넸는데, 얼마 뒤 그 친구는 색종이를 안킬로사우루스로 변신시켜 돌려주었다.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변화였다. 나는 2018년 여름 호텔을 떠났고, 긴 시간 오갔던 청림도 마침내 떠나 이곳에 와 있다.
이야기는 환대할 수 있는가.
‘도서관은 죽은 자들이 말을 거는 장소’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이제 이편에서, 그들을 환영할 것이다. 그들은 책장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우리와 대화하고 있다.
소설가. 함께 읽고 혼자 쓴다.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똥」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하바롭스크의 밤』, 『당신에게 죽음을』, 『호스트: 환영의 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