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에세이_나의 미발표작
엄마. 어색하다. 내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엄마라고 불러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 30년이 훌쩍 넘은 일이네. 내가 엄마 지갑에 손을 댔다가 들킨 날이었잖아. 그때 엄마는 지쳐서 회초리를 더 들지 못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나를 매질했어. 몇 대를 맞았는지 울면서 세다가 중간에 포기했는데, 족히 수백 대는 됐을 거야. 그렇게 많이 맞으니까 언젠가부터 신기하게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고 눈이 스르르 감기더라. 그때부터였어. 엄마 얼굴을 보면 엄마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막혔어. 엄마가 무서웠기 때문이냐고?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엄마가 전보다 멀게 느껴졌었어. 그래서 내가 선택한 호칭이 어머니였어.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반말하는 건 이상하잖아. 하루아침에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존대하게 된 이유야.
엄마. 왜 내게 단 한 번도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바뀐 이유를 묻지 않았었어? 그때 내 나이가 고작 11살이었잖아. 궁금하지 않았어? 내가 엄마라면 갑자기 어린 아들이 자기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존대하는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것 같거든. 먼 훗날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 엄마도 사실 내게 그 이유를 물어보기가 두려웠던 게 아니었을까? 엄마는 평소에 나를 많이 매질했지만, 누가 봐도 지독한 학대로 보일 만큼 매질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잖아.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내가 다음날부터 호칭을 바꾸고 존댓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도 겁을 먹었던 게 아닐까?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내게 매를 잘 들지 않았어. 엄마는 더는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 나를 보며 매질을 후회했던 게 아닐까? 엄마는 술에 취한 날이면 유난히 내게 자기가 ‘엄마’라고 강조했었어. 엄마는 자기를 ‘엄마’라고 불렀던 나를 그리워했던 건 아닐까?
엄마. 꿈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흩어져서 붙잡아두기 어렵잖아. 그런데 내 머릿속에 아직도 처음과 끝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꿈 세 개가 있어. 모두 엄마가 나왔던 꿈이야. 첫 번째 꿈을 꾼 날은 내가 엄마 지갑에 손을 대 죽도록 맞았던 날 즈음이야. 꿈속에서 엄마는 나를 두고 집을 나갔고, 나는 점점 멀어지는 엄마를 뒤쫓다가 지쳐 쓰러져서 서럽게 울었어. 공교롭게도 꿈은 며칠 뒤에 현실이 됐지. 다행히 엄마는 머지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 하지만 나는 엄마의 가출이 나 때문인 것만 같아서 꽤 오래 죄책감에 시달렸어.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꿈속에서 본 엄마의 뒷모습이 더 선명해졌어. 어린아이가 중년 아저씨로 변할 만큼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꿈은 내 기억 속에서 못 자국처럼 지워지지 않아.
두 번째 꿈을 꾼 날은 20년 전 엄마가 자살로 세상을 떠나고 며칠이 흐른 뒤였어. 꿈속에서 엄마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나를 원망하듯 노려봤어. 그 꿈을 꾼 뒤, 나는 무서워서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어.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애를 써도 꿈에서 본 엄마의 눈빛은 오히려 더 뚜렷해지더라. 엄마의 자살이 나 때문인 것만 같았거든.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기억나? 지금 가면 다시는 못 볼 거다……. 그때 내가 엄마의 말을 조금이라도 귀담아들었다면, 엄마는 높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문을 넘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아파트 뒤편 화단 앞에 널브러진 엄마의 끔찍한 모습을 보는 일도 없었을까?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바닥에 흩어진 엄마를 두 손으로 쓸어 모으며 울부짖는 일도 없었을까? 난 지금도 차가운 바람에 실려 있던 엄마의 비릿한 피 냄새를 잊을 수 없어.
세 번째 꿈을 꾼 날은 2년 전 겨울이야. 꿈속에서 늘 엄마는 오래전 젊은 모습, 나는 오래전 어린아이의 모습이야. 이날 꿈속에서도 그랬어. 나는 어렸을 때 살았던 반지하 빌라 거실에서 동생과 함께 놀고 있었고, 엄마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어. 동생과 티격태격하던 나는 문득 지금 상황이 꿈이란 걸 순간 깨달았어. 엄마와 동생 모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도 함께. 이런 꿈을 자각몽(自覺夢)이라고 부른다더라. 나는 동생을 두고 안방으로 도망치듯 달렸어. 내가 자각몽을 꾸고 있음을 엄마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걸 지난 여러 자각몽을 통해 배웠거든.
나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엄마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나간 날이 없어. 예전에는 자주 밉고 가끔 그리웠는데, 요즘에는 가끔 밉고 자주 그리워. 그래서일까. 나는 엄마 꿈을 자주 꾸는데, 꿈을 꾸고 깨어난 아침은 너무 우울해서 온종일 힘들어. 무슨 꿈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 별 내용 없는 꿈이 대부분이었거든. 같이 무언가를 하거나, 어딘가를 걷거나……. 하지만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따뜻했다는 느낌만은 꿈에서 깨어나도 생생하게 남아있더라. 눈을 떴을 때 곁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지독한 허탈함이 몰려와 견디기가 어려웠어.
가장 힘든 날은 엄마가 나오는 자각몽을 꾸는 날이야. 엄마는 내가 자각몽을 꿨다는 사실을 눈치채면 늘 표정 없이 뒷걸음질 치거나 연기처럼 사라졌거든. 아무리 붙잡고 울어도 소용없었어.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날 때마다 다짐했었어. 앞으로 엄마를 만나는 자각몽을 꾸면 절대로 들키지 않겠다고. 어떻게든 꿈속에서 엄마와 오랜 시간을 보내겠다고. 웃기지?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잖아. 엄마가 나오는 꿈을 언제 꿀지도 알 수 없고, 꾸더라도 내가 꿈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게 과연 가능하겠어? 그런데 간절했던 마음이 통한 건지 그런 일이 정말로 벌어진 거야.
꿈속에서 안방으로 달려간 나는 창틀 아래에 숨어 있다가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려 바깥을 바라봤어. 창문 너머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더라. 빨래를 하나하나 털어서 건조대에 너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반갑고 따뜻하던지…….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겨우 삼키며 엄마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어. 당장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엄마가 바로 사라져버리고 꿈에서 깨어난다는 걸 아니까 억지로 참았어. 눈과 코 사이가 뻐근해지더니 목구멍 끝에서 끅끅 소리가 새어 나오더라. 엄마에게 들킬까 봐 참고 또 참았는데 더는 버티지 못해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어. 그 소리를 들은 엄마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더라. 나는 목놓아 울다가 꿈에서 깼고,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참 동안 울었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꾼 꿈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슬픈 꿈이었어.
그거 알아? 엄마가 내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걸?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그게 정말 원망스럽더라. 한편으로는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었어. 엄마가 나 때문에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엄마를 미워하는 거였으니까. 엄마는 어린 나를 무자비하게 때렸고 내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한 번 해주지 않은 무정한 사람이라고. 끝내 험악한 꼴로 죽으며 내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 사람이라고. 엄마를 향한 원망을 키울수록 죄책감은 줄어들었어. 그렇게 버티면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
오해였더라. 오랜 세월이 흘러 내 나이 마흔이 다 돼서야 처음으로 엄마가 남긴 일기장을 읽었어. 그 일기장에 또박또박 적혀 있더라. 엄마가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엄마도 엄마로 사는 게 처음이어서 내게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고작 스물두 살이었잖아. 나는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로만 알았을 뿐, 엄마가 그렇게 어린 줄 몰랐었어. 나는 그 나이에 몸만 커버린 아이였을 뿐인데, 엄마는 어떻게 엄마의 무게를 견뎠던 거야? 조금만 용기를 내 일기장을 더 일찍 읽었다면 엄마를 그렇게 오래 미워하지 않았을 텐데. 돌이켜보니 나 또한 엄마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했어. 그리고 나는 엄마처럼 일기장에 사랑한다는 말도 한 번 적지 못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 얼마 전 동네 안경점에서 새로운 안경을 맞추는데 사장이 나보고 노안이라더라. 아직 노안이 올 나이는 아니라고 여긴 데다, 고도 근시인 사람은 노안이 늦게 온다는 말을 들어서 그 말이 믿기지 않았어. 다시 노안인지 아닌지 검사를 받아봤는데, 부정할 수 없는 노안이더라. 언젠가부터 코털이 하얗게 세기 시작했어. 치아도 벌어져서 음식이 그사이에 자꾸 끼어서 불편해. 이쑤시개는 안 좋다고 해서 치실을 쓰고 있어. 기억력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집 앞에서 도어록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당황한 일도 있다니까.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이제 몇 년 더 지나면 내가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아져. 엄마는 못 살아본 나이를 살아간다는 게 놀라워. 남들처럼 엄마와 함께 느리게 걸으며 나이들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기승전결도 없이 끝난 엄마와 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영원히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걸까. 나는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엄마. 내 꿈에 한 번만 더 나타나 줘.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아채도 사라지지 말아줘. 한 번만, 단 한 번만, 엄마를 엄마라고 소리 내 불러보고 싶어.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기회를 줘. 엄마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로 내게 사랑한다고 해줘. 살아서는 서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레 헤어졌지만, 꿈에서만큼은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다정하게 헤어지자. 엄마와 나의 이별 이야기를 이렇게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 우리 더 늦기 전에 꿈속에서 꼭 만나. 오래 붙잡지 않을게. 대신 기억만 오래 할게.
장편소설 『도화촌 기행』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정치인』 『왓 어 원더풀 월드』, 소설집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등을 썼다. 월급사실주의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