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경 소설가]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

소설가의 에세이_초고를 쓰는 일

by ARKO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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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역에서 내린 나를 캐리어 바퀴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드륵드륵드륵. 그건 마치 나 자신을 예열하는 소리처럼 들렸는데 그만큼 나는 의욕에 차 있었다. 사실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첫 책 출간 이후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환경 탓을 했다. 내게 밥을 해줄 사람과 멋진 작업실이 주어진다면 소설을 쉽게 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환경이 변하면 집에서는 쓰지 못한 새로운 문장과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호텔로 오기 전에는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큰소리를 쳤다.

“너무 많이 써서 노트북 용량이 모자랄까 봐 걱정이야.”

호텔에 도착해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키를 받았다. 나는 작업실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집에서 글을 썼고 가끔 카페에 나가서 쓰는 정도였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짧은 시간 동안 가슴이 설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을 찾으며 곧 마주할 작업실을 상상했다. 초췌한 몰골로 푹신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를 내며 글을 쓰다가 아침을 맞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접했던 천재적인 작가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의 방은 비범해 보였다. 마치 그 방이 대신 글을 써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소설가의 방’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은 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 자리에 붙박인 듯 서서 방 전체를 눈으로 훑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히 처음 방문한 호텔인데 어디선가 본 것처럼 낯이 익었다.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족한 것이 없는 공간이었다. 비즈니스호텔답게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아서 아늑하고 신뢰가 갔다. 공간뿐 아니라 세 끼 식사와 방 청소까지 제공해주는 레지던스라니. 그토록 바랐던 ‘글만 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나는 2월 한 달 동안 입주한 작가였고 2월은 1년 중 가장 일수가 적은 달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28일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어젯밤 집에서 정성 들여 쓴 일정표를 가방에서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하루 8시간 집필. 이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마지막 날에는 장편 소설 초고를 손에 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었다.

첫날부터 글이 써지진 않았다. 호텔 방에서는 글쓰기 말고도 할 일이 많았다. 첫날은 입주 기념으로 영화 속 작가의 모습 중에서 ‘술 마시는 작가’의 모습을 흉내 내느라 맥주를 마신 다음 나른한 상태에서 몇 줄 쓰다가 곯아떨어졌고, 둘째 날은 집에는 없는 호텔 방의 욕조를 사용하기 위해서 인근 화장품 매장에 방문해 입욕제를 사 와서 거품 목욕을 하면서 집에서 가져온 버블 스틱으로 비눗방울을 불어 날리며 놀았다. 또 셋째 날에는 오래전 명동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명동 거리와 남산 산책로를 걸었다. 그러자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들이 밀려드는 바람에 청승맞게 눈물을 흘리며 찬바람을 맞고 돌아다니다가 몸살에 걸렸다. 그렇게 하루 이틀 침대에 누워 있다가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상태로 주말이 돌아왔고, 개들이 보고 싶어서 집에 갔다.

현관문 앞에 서자 개들이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십 년 만에 귀향한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재회식을 치르고 개들과 함께 산으로, 공원 산책을 하고 돌아와 청소까지 한 다음 김치찌개를 끓여 밥을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남편의 노트북으로 글을 조금 썼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집안일을 하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작업실에서는 써지지 않던 글이 써졌다. 나는 남편의 노트북으로 쓴 원고지 5매 분량의 글을 내 메일함에 저장했다. 첫 문장은 이런 문장이었을 것이다. ‘달콤한 향이 나지만 먹으면 역해서 삼킬 순 없고 입 밖으로 뱉어내야 하는 비눗방울. 언제 녹아버릴지 모르는 비눗방울 같은 방.’ 물론 그 문장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녹아버려 이제 책에서 찾을 수 없다.

퇴근해 집에 들어온 남편이 물었다.

“웬일이야? 밥을 다 차려놓고. 글은 좀 썼어?”

“아니. 한 글자도 못 썼어.”

“그럼 왜 작업실에 가? 집에서는 하루 한 장씩은 썼잖아.”

“꼭 종이를 채워야 쓰는 거야? 머릿속에 글자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어. 아직 몸이 호텔 방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래. 그건 그렇고 다음 주에 작업실에 한번 들러.”

“외부인 출입 안 된다면서.”

“가족이잖아. 남편은 괜찮을걸.”

“호텔 방이잖아. 안 돼.”

물론 남편도 출입할 수 없었다. 호텔 측에서는 지인의 객실 방문과 애완동물 입실을 제한한다고 미리 알려줬다. 하지만 나는 단 한 시간이라도 남편과 함께 호텔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같이 커피를 타 마시고 빵을 먹는 것 같은, 여느 부부들에게 허락된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그때 신혼이었고, 혼인신고만 한 채로 반지하 집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호텔 방이 아니라 작업실이라니까. 거기서 뭐 이상한 걸 하자는 게 아니라 같이 글 쓰자는 거야. 나 당신하고 한 시간 동안 거기서 글 쓰는 게 소원이야.”

우리는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결혼했다. 당시 남편은 글을 쓰지 않고 돈을 벌었으므로 다시 함께 글을 쓰고 싶었다. 단 한 시간이라도.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오면 돼. 다른 층에 올라갔다가 계단으로 내려와. 그리고 들어올 때 프런트에 절대로 내 이름 말하면 안 돼.”

남편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게 뭐라고 흠 잡힐 행동을 하냐. 글 쓰라고 특별히 공간을 마련해줬는데 남자나 끌어들였다고 소문나 봐. 다시는 작업실 못 얻을 거야.”

“남자가 아니라 남편이잖아. 벌써 잊었나 본데 당신은 결혼 전에 내가 살던 고시원에도 몰래 들어온 적이 있어.”

“내가? 그랬나.”

남편은 시치미를 뗐다.

“소문보다 중요한 건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이야. 소문 좀 나면 어때. 호텔에 젊은 외국인 커플이 있더라. 신혼여행 온 거 같았어. 우리도 신혼여행 온 셈 치자고.”

남편은 역시 답이 없었다. 나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호텔은 원래 숙박하는 곳인데 지인을 절대 들이지 말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대학교 기숙사도 아니고. 소설이라는 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써지는 건데. 소설가의 방은 응당 작가로서 갖춰야 할 인내력과 절제력을 가르치는 곳인가 봐.”

“규정이 없으면 통제가 안 되니까 그렇겠지. 그런 규정을 정한 걸 보면 분명 안 좋은 사례가 있었을 거야. 어서 가서 열심히 써. 다시없는 기회잖아.”

남편은 은근히 내가 작업실에 나가길 바라는 것 같았다. 주말 동안 집에서 지내려고 온 것이었지만 나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등 떠밀려 작업실로 돌아왔다.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서도 글은 잘 써지지 않았다. 첫 주보다는 지면을 채웠지만 종이로 출력해서 읽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을 모두 지운 다음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로 시간을 보냈고 호텔에서 제공한 식사를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와 몇 줄 끄적이다가 앉은 채로 졸았다. 객실 청소를 원하면 ‘Make up’ 방해받기를 원치 않으면 ‘Do Not Disturb’ 카드를 바깥 문고리에 걸어놓으라고 했는데 나는 밖으로 나갈 때마다 ‘Do Not Disturb’ 카드를 문고리에 걸었다. 객실을 어지럽혀놓아서 창피하기도 했고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서비스를 받는 것이 쑥스러웠다.

그렇게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버렸다. 평일에는 독서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주말에는 내심 그리워한 허름한 반지하 집으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강아지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내 집이었다. 낡은 이불을 덮고 강아지들을 품에 안은 채로 꿈도 꾸지 않고 단잠을 잤다. 잠에서 깨면 아직 쓰지 못한 소설을 떠올리며 호텔 작업실로 돌아왔다. 호텔 작업실에서의 시간 역시 언젠가는 내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임을 절절히 깨닫게 될 터였다. 28일 동안 집에 가면 호텔 방이, 호텔 방에 가면 집이 그리워지는 기이한 현상이 반복되었다.

어느덧 마지막 주가 돌아왔다. 노트북 용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지만 거울 속 내 얼굴은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다. 일은 열심히 안 하면서 매일 삼시 세끼 양질의 음식을 먹으니 살이 찌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한잔 타서 작업 테이블에 앉았다.

처음 작업실에 들어왔을 때 왜 기시감이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두 달 전에 다녀온 이케아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한국에 상륙한 이케아 광명점에 홀로 다녀왔다. 축구장 10배 크기라는 드넓은 이케아 매장을 헤매다가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축구를 한 것처럼 진이 빠졌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쇼룸들은 손을 뻗어도 만져지지 않는 신기루 같았다. 이케아 쇼룸에서 받은 인상과 호텔 방에서 받은 인상은 비슷했다. 내 것이 아닌 방. 내 집이 될 수 없는 공간. 잠시만 머물 수 있는 곳. 내 보금자리를 초라하게 느껴지게 하는 곳. 종국엔 내 보금자리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장소.

나는 메일함에 저장해 둔 문서를 내려받아 뒤이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거칠게 써나갔다. 떠오르는 대로 아무거나. ‘아무거나’가 언젠가는 ‘무엇인가’가 될 거라고 믿으면서. 무엇이 될지 모를 작은 씨앗을 호텔 방 안에서 굴렸다. 맥주에 타 입안에서 굴리며 마셨고, 입욕제와 함께 욕조에 넣고 휘저었다. 마치 쇼룸처럼 느껴지는 호텔 방에서 『쇼룸』의 씨앗이 자라났다. 호텔이라는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들, 갖고 싶은 것들을 떠올렸고, 써나갔다. 이케아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 이케아 쇼룸에서 만난 젊은 청년들, 글쓰기를 중단하고 아침마다 일하러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 그런 것들이 마구 섞여 호텔 방 안을 떠다녔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얇고 투명한, 좋은 향이 나는 비눗방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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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경

2014년 장편소설 『청춘 파산』으로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쇼룸』 『두리안의 맛』, 장편 소설 『콜센터』 『헬로 베이비』가 있다. 제6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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