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용 소설가] 변방 소설가의 영구동토

소설가의 에세이_나의 미발표작

by ARKO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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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표작이라… ‘미발표’라는 단어 속에는, 발표하지 않음과 발표하지 못함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소설가인 나의 해당은, 발표하지 않은? 혹은 못한? 소설 인 듯한데… 이 타이밍에 헤매고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웬 얄궂은 상념인가. 거 참,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얄궂은 상념을 따라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다 보니, 이 길 저 길 헤매고 사는 걸 응당 그런 것이려니 여기며 살았다. 가끔 회한이 고개를 쳐들 때는, 소설을 쓰는 일은 갖은 이야기를 직조하는 일이니, 그 헤맴의 종류가 더 다양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헤맴을 지팡이로 삼았다. 그 지팡이를 짚고 걷다가 좁고 굴곡진 골목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숲속 작은 오솔길 너머에서 굉장한 무엇을 찾으려다가 길을 잃기도 했다. 때로, 길이 무서워 제자리에 한 참 서 있기도 했다.

그런 헤맴과 서 있음 사이에 위치하는 게 내가 품은 미발표의 자리가 아닐까… 하는, 말랑한 생각으로 서둘러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은 게으름이 손을 내밀지만, 이 글을 읽어줄 분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생각하면, 어림없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요럴 땐 좀 더 세밀하게 사건의 인과(因果)를 살피는 게 좋다. 나는 소설가이고 소설을 쓴다는 건, 사건의 지평선 위에서 어름사니1)가 허공잡이2)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앞과 뒤, 위와 아래가 있어야 하고 중심을 잡아줄 부채가 필요하다. 모든 이야기 속 콩은 심은 곳에서 나야 하고 혹여, 콩이 아닌 팥이 난다면 그 이유가 필요하다. 확 줄여서 말하자면, 소설을 쓸 때는 이렇게 저렇게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그런 말인데… 누군가 아니라도 말해도 어쩔 수 없긴 하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미발표’라는 사건의 인과를 살펴보자.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발표가 함의하고 있는 ‘발표하지 않음, 혹은 못함’은 작가의 실존적 좌표에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작가의 의식과 작품 속에서 그것들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그 좌표를 들여다보면 작가가 가진 미발표의 윤곽이 대략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먼저, 물리적 인과를 살펴보자.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미발표작은 발표를 안 한 것인가요? 못 한 것인가요?”라고 묻는다면,

“흠… 둘 다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대답의 무게에 맞춰 선택하라면, 못 한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 대답의 근거로 제시할 의견이 있습니까?”

“그게… 범위를 넓게 보면 세계적 추세와도 관련되겠지만, 우리나라에 국한해서 이야기하죠. 가장 큰 원인은 베스트셀러 중심의 출판의 구조 아닐까요? 서울 중심주의에서 기인한 지역 문학 인프라의 상대적 쇠퇴가 그 두 번째로 생각되네요. 거기다 제 소설 자체의 미흡함도 있고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더라도, 제아무리 발표를 하고 싶어도, 청탁을 받을 지면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미발표작이 쌓여갈 수밖에 없다. 물론, 작가 개인의 적극적인 투고 활동이나 출판 활동을 통해 기회를 더 잡을 수도 있으나, 그 효과는 노력에 비해 미미하기 그지없다.

둘째로, 존재론적 의미에서 미발표의 인과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작가 자존의 영역이다. 그 속에는 작가 스스로 지켜나가야 할 정의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벼려놓은 이야기의 칼이 있다. 또한, 자신의 예술 행위가 여전히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반성적 자아에서 유발된 부끄러움의 미학이 있다.

이 두 인과를 합쳐 생각해 보면, 미발표작은, 작가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가 내포한 문제에, 작가의 실존 인식이 합쳐지고, 거기에 아직 다다르지 못한 미완의 반성 미학이 더해진, 그런 상태로 오랜 겨울을 나고 있는, 어떤 씨앗이 아닐까. 툰드라의 영구동토 속에 묻혀 썩지 못하는 매머드의 털자락에 붙은 석기시대 꽃씨 같은. 언젠가는 얼음이 녹기를, 그 해빙이 지구를 멸망시키는 온난화라는 이름의 질병일지라도, 그 질병이 멸망을 완성하기까지의 시간 속에서 싹을 틔우고, 다시 꽃이 되고 숲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기어코 그 길을 가고야 말, 이기와 간절함이 책임과 윤리를 이기는, 꽁꽁 얼어붙은 동토 아래에서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런 꽃씨 말이다.

그런 씨앗에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다. 부끄럽고 이상하지만 어딘가에로 이어지고, 때때로 폭력적이다가 틈틈이 이기적이다. 빼앗고 싶은 마음과 다 퍼주고 난 뒤의 개운함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고, 성실의 나라에 사는 자부심과 허무의 세계에 자라나는 슴슴함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이상한 꽃씨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문득 생각나면 부끄럽고 가끔 애틋해서 버려지지 않는, 이상한 엽편 소설이다. 일단 한 번 읽어주시라.



까꼬막3)


아침부터 남선창고4) 주위를 얼쩡거리는 각다귀들이 여럿이다.

“이노무 짜슥들. 까마구 새끼도 아이고, 와 자꾸 맹태 눈깔을 파묵노. 절로 안 끄지나.”

일꾼이 으름장을 놓아도 각다귀들은 똥파리마냥 휘 날아올랐다가 다시 돌아온다. 대폿집에 앉아 그 꼴을 지켜보던 태수의 얼굴이 뾰로통하다. 장국에 막걸리까지 밀어 넣은 탓인지, 밤새 참았던 아니꼬움이 터져 나온다.

“간나 새끼, 널린 게 명태구만, 얼라들 눈알 좀 파먹는 게 뭔 대수라고. 장 형, 안 그러오?”

“니 같으면 눈깔 없는 명태 팔고 싶갔어? 저쪽서 뺨 맞고, 와 이쪽 와서 부스럼이네!”

태수의 마음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오전에 들어온다던 UN 보급선이 영도 위로 달이 걸려서야 들어왔다. 덕분에 부두에서 밤을 지샜다. 밀가루 포대, 쌀 포대, 옥수수 포대, 뭐가 든지도 모르는 포대까지 날이 밝도록 날랐다.

“장 형, 전 반장 그 간나 새끼 또 나이롱뽕5)쳤지 않소?”

“추잡스러도 참으라. 난리 통에 일 있는 게 어디네.”

“그래도, 짐이 그리 많은데, 품을 더 쳐 줘야 하는 것 아니오?”

“그럼 어쩌네. 니나 내나 목구멍이 포도청 아이네?”

“장 형, 그래도 이건 심하지 않소? 두 대가리를 나이롱뽕 쳐서 한 대가리는 저 혼자 처먹는 거 아니오?”

“캑 죽었다 생각하고 성질 죽이라. 피란살이 성질부리면 배만 꺼진다.”

태수가 벌써 비었던 막걸리 주전자를 들었다가 열없이 내려놓았다.

“그만 마시라. 해 지기 전에 전 반장 만나기로 했다. 들어가서 한숨 자야 저녁에 또 움직일 것 아니네. 이거나 한 대 피우고 고만 인나라.”

장 씨가 태수 앞으로 아까다마6)를 내밀었다.

“웬 겁니까?”

“육거리 미제할마이한테 한 보루 샀다. 전 반장 간나, 아니꼬워도 한 갑씩 멕여 놔야 하지 않캈어?”

“장 형, 이케까지 해야 하오?”

“막말로, 지금 당장은 그놈이 우리 목숨줄 아니네? 니, 전쟁 끝나면 고향 아이 갈끼네? 갈라면 노잣돈이라도 모아 둬야 할 것 아이네. 아니꼬워도 살고 봐야지. 기네 아이네.”

태수가 마른세수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아까다마 한 개비를 뽑아 문다. 이내 연기를 푹푹 내뱉는다.

“인나라우, 들어가 자야 저녁에 또 움직일 것 아니네.”

장 씨가 일어서니 태수도 푸들푸들 따라온다. 양키 골목을 지나고 교회를 지났다. 고개를 드니 가풀진 비탈 따라 따개비 같은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었다. 그 사이를 가르마처럼 가르며 하늘로 뻗쳐 올라간 계단이 보인다. 계단 아래 우물에는 오늘도 물지게가 줄을 섰다. 계단 폭은 석 자 남짓 되고 워낙에 가풀지다. 그 덕에 중간에 물지게끼리 마주치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성난 게 꼴이 된다. 서로 부딪지 않도록 몸을 비틀고 물통을 치켜들어 종종거린다. 덩달아 뒤따르는 사람도 살금살금이다. 앞서가는 물지게를 따라 계단을 반쯤 오르니 태수가 숨찬 목소리로 묻는다.

“장 형, 이 계단이 몇 갠지 아오?”

“이 동네서 그거 모르는 사람 있네?”

“허허 장 형, 세 본 적 있소? 나는 매일 세오. 근데 말이오. 내려올 때는 백예순일곱 개고, 올라갈 때는 백예순여덟 개오.”

“그게 뭔 소리네?”

“아 그러니까, 내려갈 때는 계단이 하나 줄고, 올라올 때는 하나가 는다 그 말이오. 못 믿겠으면 세 보오.”

빙긋 웃고 있는 태수를 보며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다. 계단 수가 짜장 줄었다 늘었다 하기야 하겠냐만, 오를 때는 길 위로 놓인 계단부터 세어지고, 내려올 때는 길 아래 계단부터 세어질 터다. 그러니 그렇다고 해도 그만이다.

“기래, 한번 세봐야 되갔구만.”

태수의 말에 정신이 팔렸는지 앞서가는 물지게가 출렁이며 넘친다. 내려오는 물지게가 그 꼴을 보고 같이 갈팡질팡이다. 장 씨와 태수는 옆 골목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 태수가 올라온 계단을 되돌아보며 말했다.

“여든아홉 개. 절반 넘게 올라왔으니 개성쯤 되오. 장 형 고향쯤이오. 아이 그러오?”

“허, 기럼 여기래 선죽교쯤 되네?”

“장 형, 나는 아직 멀었소. 고향까지 가려면 이 까꼬막 다 올라도 모자라오.”

쨍한 날씨 덕인지 오륙도 너머 수평선 위로 신기루 같은 대마도가 아른거린다.

“기래, 별수 있나. 또 가보자우.”

다시 계단에 들어서니, 오늘따라 온통 성난 게들투성이다.

“장 형.”

“아 또 뭐네.”

“다음에 아까다마 살 때는 나도 반 내오.”

등 뒤에서 뱃고동이 길게 운다.

“기래, 그러라.

그렇다. 이런 소설이다. 욕심만큼 각주가 주렁주렁 달린. 좀 송스러운 맘이 들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이 미발표 소설의 인과를 밝혀야 이야기가 끝난다. 기왕 읽은 김에 좀 더 읽어주시라.

그리하여, 이 소설의 인과를 밝히자면, 그 인과는 여지 없이 나의 실존과 이어진다.

그냥 그런 작가로 살다 보면, 이러저러한 주머니 사정과 이러저러한 이유들이 만나, 글을 밥으로 바꾸는 경우가 생긴다. 그중 계약과 청탁의 형식을 갖추는 것이 있고, 문학상에 투고하는 방법이 있다. 후자의 경우 쓴다고 다 밥으로 바꿔지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상이 구분된다. 하지만 가끔 도깨비 놀음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 지자체에서 관광 상품으로 기획한 문화유산에 그럴싸한 스토리를 입히는 과정에서, 전례 없는 밥상을 차려 놓고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했다. 누가 봐도 허술한 기획에, 가당찮게 상금만 많은 문학상 공모였다. 시민 세금으로 이런 짓을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엽편 소설 분량에 몇천만 원을 상금으로 걸었다. 응모 자격에 대한 제한도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 작가된 자존심과 대중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합쳐져서 이런 도깨비 놀음은 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상금 탓에 덜컥 욕심이 났다. 이 소설은 그 욕심에서 탄생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이 밥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도깨비 놀음은 우려했던 대로 주최측의 어눌한 진행으로 여러 잡음이 들리다가, 시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모르게 푸시시 사라졌다. 잡음만 남은 자리에는 괜한 짓을 했다는 자괴와 함께 소설만 덩그러니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고 있다가 문득 이 소설이 떠오르면 부끄러움도 같이 올라왔다. 어디에 내비치기 민망한 자식 같다가, 내 탓에 동토에 갇힌 꽃씨 같다는 애틋한 마음이 들어버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보일 때마다 다듬었다. 내 욕심의 모양이 깎여 나갈 수 있도록 조금씩 깎았다. 아직 더 깎아야겠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이렇게라도 내보일 만큼의 마음이 모였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다. 변방 소설가의 동토에 묻혀있던 씨앗에 대한 이야기였다.



1) 남사당패에서 줄을 타는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

2) 줄광대가 줄 위에서 벌이는 곡예의 하나.

3) 가풀막의 경남 방언.

4) 1900년부터 함경도에서 배로 물건을 싣고 와서 보관하던, 부산초량에 위치한 최초의 물류 창고. 주로 명태를 보관함.

5) 화투 놀이의 하나로, 고생하지 않고 거저 얻은 것을 비유한다.

6) 아까다마(ぁかだま):럭키스트라이크 담배.붉은 원 모양 디자인에서 기인한 일본식 명칭.



1. 임성용_프로필.jpg

임곰용(본명:임성용)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기록자들』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 공저 『도망가자 밤으로 밤으로』 등이 있다. 현진건문학상추천작,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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