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해 소설가] 가장 서툰 진심, 초고

소설가의 에세이_초고를 쓰는 일

by ARKOMUNHAK
4. 박소해_상단배너.jpg


1.

그해 겨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폐부 깊숙이 얼음 결정 같은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매일 뛰었던 조깅 코스다. 보통 초저녁이면 호텔 프린스를 나와, 외국인 관광객들이 붐비는 명동 거리를 달렸다. 버스들과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을 견디며 다이소, 청계천, 신세계백화점 본점, 영양센터 본점, 만화의 집을 지나 다시 호텔 프린스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달리다 지치면 걸었고 걷다가 지루하면 뛰었다.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그룹 넬의 음악을 들으며 인터벌 러닝을 했다. 〈Go〉를 자주 들었다.

“On your mark. Get set and go. On your mark. Get set and go. Just go.”

조깅을 마치면 땀에 흠뻑 젖었다. 숨을 몰아쉬며 ‘소설가의 방’으로 돌아왔다. 비니 모자와 두꺼운 겨울 패딩과 털장갑을 바닥에 벗어던지고 침대에 쓰러졌다. 마치 우주 유영을 마친 뒤 우주복을 벗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복귀한 우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소설가의 방은 나에게 본부, 작업실, 피난처이자 보금자리였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방이 되살아난다.

객실 문에 걸린 ‘소설가의 방’ 문패, 소설가의 방을 거쳐 간 선배 작가들의 책 표지 액자들, 순백의 침대보, 폭신한 베개, 제법 넓었던 붙박이장, 옆 건물 벽이 보였던 넓은 통창, 통창 아래의 긴 소파, 작고 둥근 1인 테이블, 전기 포트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두었던 자료 도서들, 폭이 좁고 길이가 길었던 책상, 그리고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네 글자 ‘허즈번즈’.

그 방에서 나는 첫 장편소설 『허즈번즈』의 초고를 썼다.



2.

호텔 프린스 ‘소설가의 방’ 입주 작가로 선정되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남편을 어떻게 설득하지?’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쓸데없이 용감했다. 전업주부 엄마 작가가 호기롭게 입주 작가 프로그램에 지원했지만 정말 합격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서 선정 결과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명단을 훑어보며 정말 내 이름인지 거듭 확인했을 정도였다. 장편 소설 한 권 낸 적 없는 신인 작가가 선정된 데에는 멀리 제주에 사는 작가라는 지정학적 특징이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소설가의 방 프로그램은 지방 거주 작가를 배려해주기로 유명했으니까.

“여보, 할 말이 있어.”

퇴근한 남편에게 어렵게 입을 뗐다.

“뭐? 6주나 서울에?”

“그렇게 됐어.”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 삼형제 엄마가 6주 동안 자기만의 작업실을 얻는다는 건 로또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도 말했다.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1)

나는 아직 돈도 자기만의 방도 없는 신인작가였다.

입주 작가가 된다면 단 6주 동안만이라도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유명 작가들이 두루 거쳐 간 호텔 프린스 ‘소설가의 방’이 내 작업실이 되고 세 끼 식사도 제공한다니. 그동안 나는 작업실이 없어서 세 아이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글 쓸 곳을 찾아 이 카페 저 카페를 전전하고 있었다. 작업이 제일 잘 되는 단골 카페는 집에서 먼 한림읍에 있어서 매일 가기가 어려웠다. 눈 돌리는 곳마다 살림할 거리가 보이고 막내가 가지고 노는 레고 블록이 바닥에 뒹구는 집에서 작업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불꽃 튀는 협상 끝에 6주라는 입주 기간을 확보했다. 마침 겨울방학 기간이라 평일에는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주말에는 내가 제주로 돌아가서 아이들과 지내는 조건으로 남편의 양보를 얻어냈다.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할 텐데 주말에는 집에 와야지.”

남편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주 5일 입주 작가 생활이 시작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소설가의 방에서 글 작업을 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제주행 비행기를 탔고, 토요일 하루는 아이들과 온전히 보내고 일요일 오후엔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왔다.

목표는 하나였다.

첫 장편소설 『허즈번즈』의 트리트먼트 완성.

그리고 트리트먼트를 무사히 끝내고 여력이 된다면 초고를 단 한 페이지라도 쓰고 제주로 돌아오고 싶었다. 6주는 초고를 완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기에 첫 삽이라도 뜨자고 생각했다.



3.

나는 목표를 달성했을까?

했다.

입주 초기에는 트리트먼트 작업에 몰두했다. 입주 기간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 출판사의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고치고 고친 끝에 세 번째 트리트먼트로 겨우 통과했다.

기뻤다.

갈 길이 구만리였지만 한 가지만큼은 안심이 됐다.

바로 『허즈번즈』의 첫 문장을 썼다는 것.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썼다기보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박제되어 있었지만.

“해방은 남자의 것이었다.”

이 첫 문장은 소설을 쓰는 4년 내내 살아남았다.

결국, 장편소설 『허즈번즈』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다.

이 첫 문장은 2022년에 처음 『허즈번즈』를 구상하던 시절부터 기획서, 트리트먼트, 초고, 2고, 3고, 4고를 거치는 4년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허즈번즈』는 제주 소녀 수향이 조선의 해방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진정한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투쟁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수향의 해방과 성장을 촉구하는 이 첫 문장은 『허즈번즈』의 심장과도 같았다. 마음에 쏙 드는 첫 문장이었다.

첫 문장이 정해졌으니 초고를 술술 쓸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초고 첫 줄에 ‘해방은 남자의 것이었다.’라고 쓴 후부터 글이 써지지 않았다.

첫 문장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이것이 작가의 벽인가?

짧은 작가 경력에서 이렇게 글이 안 써지는 적은 처음이었다. 소설가의 방에서 방을 빼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는데…. 이 방을 거쳐 간 선배 작가님들에게 속으로 외쳤다. 윤고은 작가님, 김의경 작가님, 서진 작가님, 김초엽 작가님, 장강명 작가님. 저 좀 도와주세요!

머리를 쥐어뜯다가 그냥 포기했다. 차라리 놀자, 놀아. 며칠 놀다 보면 다시 글이 쓰고 싶어지겠지.

소설가의 방에 입주한 후 처음으로 뮤지컬을 보러 갔다. 친구를 만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보고 레스토랑에 갔다. 좋아하는 넬 콘서트도 다녀왔다.

마침 첫째와 둘째가 서울로 놀러 왔다. 엄마가 묵고 있는 소설가의 방을 방문한 두 아이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방문에 달린 문패를 보면서 신기하다고 했다.


소설가의 방 Writer’s Room

이곳은 소설가 박소해 작가께서 집필하는 객실입니다. 조용히 이동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왜 엄마 이름이 호텔 문에 적혀 있어?”

“응. 당분간은 엄마만 이 방을 쓸 수 있거든.”

“정말? 엄만 좋겠다!”

두 아이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침대가 정말 아늑한데? 나 여기서 살면 안 돼?”

큰애가 말했다.

아이들은 제주에서 올라오느라 피곤했는지 낮잠부터 잤다. 잠에서 깬 아이들을 데리고 만화의 집에 갔지만 채 30분도 만화를 보지 못하고 나왔다. 아이들은 관광을 하고 싶어 했다. 우린 화폐박물관에 가서 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했다.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동안 주말마다 엄마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다음 주말에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 서울타워에 갔다. 셋이서 돈가스 정식을 먹고 서울타워 전망대에서 서울 시가지를 구경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소인국의 도시 같았다. 모든 문제가 작게 느껴졌다. 해가 지자 버스를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한 권씩 사줬다. 서울 친정집에 아이들을 데려다준 다음, 혼자 소설가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놀러 다닌 덕분인지 굳어 있던 머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두 번째 문장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분은 그랬다.



4.

실제로 두 번째 문장을 적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해방은 남자의 것이었다.”

기획서와 트리트먼트에서 이 첫 문장은 언제나 당당해 보였지만, 막상 초고에 들어가서 원고 위로 옮기니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첫 문장 자체만 보면 좋았지만 그 뒤를 어떻게 이어갈지가 고민이었다.

‘단도직입에 지나치게 직설적이지 않나?’

이 첫 문장을 몇 번이나 지웠고, 몇 번이나 바꾸려 했다. 조금 더 완곡하게, 조금 더 안전하게 쓰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두 번째 문장으로 나아가지 못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고치지 못했다.

더 나은 첫 문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첫 문장은 곧 첫 문장이 아니게 됐다. 프롤로그가 더해지면서 ‘해방은 남자의 것이었다’는 1부의 첫 문장으로 위치를 옮겼다.

그럼에도 나에게 『허즈번즈』의 첫 문장은 여전히 ‘해방은 남자의 것이었다’였다.

소설의 첫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결단이고,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가 될지를 정하는 선언이다. 초고를 쓴다는 것은, 처음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아무리 서툴고 형편없어도 그 진심을 오롯이 감당하겠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 첫 문장을 책임지기로 했다. 지키기로 결정했다.

대신 나는 유연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1부의 첫 문장인 ‘해방은 남자의 것이었다’를 그대로 두고, 앞으로 가서 프롤로그부터 쓰기로 했다. 묘수였다. 프롤로그는 부담 없이 편하게 쓸 수 있었다. 남자 주인공인 마사키가 서울의 한 카페에서 홀로 수향을 기다리는 장면인데 의외로 수월하게 나왔다. 마침 한해 전에 ‘더 하우스 1932’라는 서울 만리동에 있는 적산가옥을 개조한 카페를 취재해두었고 그 자료 덕분에 그림을 그리듯이 카페 풍경을 묘사할 수 있었다. 큰 고민 없이 단박에 쓴 이 프롤로그는 다행히 편집자가 좋아해주었고 최종고까지 수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프롤로그를 마치고 나서야 1부의 두 번째 문장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마치 마법처럼 글이 풀리기 시작했다.

“수향은 아직 해방되지 못했다.

1945년 10월. 서울에 살고 있는 열네 살 소녀 수향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해방의 좋은 점이 생각나지 않았다.”


5.

천신만고 끝에 초고가 풀리기 시작했는데 소설가의 방에서 나가는 날이 왔다.

마지막 날, 조식 뷔페를 먹고 짐을 싸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제야 소설가의 방에 적응했고 초고도 써지기 시작했는데 떠나야 한다니. 담당자의 다정한 배웅을 받고 캐리어를 끌며 제주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

세 아이는 자라 있었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엄마이자 아내이자 작가의 위치로 돌아가 바쁜 일과를 보냈다. 『허즈번즈』 초고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신인 작가가 첫 장편을 시대극으로 구상한 건 거대한 실수였다. 『허즈번즈』는 일제강점기와 6.25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자 고딕 호러, 미스터리, 그리고 로맨스였다. 시대극이자 복합장르물이다 보니 다양한 자료와의 투쟁이었다. 자료, 자료, 자료…. 매일 많은 문헌자료를 들여다봐야 했다.

작업실 없이 카페를 전전하며 20kg가 넘는 책가방을 메고 다녔고, 어느 날은 그 무게 때문에 어깨가 탈구되기도 했다.

또한 고딕 호러이자 하우스 호러이다 보니 한 공간에서 무시무시하고 공포스러운 사건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세부 장르로 로맨스도 들어가 있어서 수향과 남성 캐릭터들 사이의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게 중요했다. 로맨스 장면을 쓸 때 결혼 십여 년이 넘어가 연애 세포가 죽어버린 나로서는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작정 수향에게 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2024년 9월 문화예술위원회에서 후원하는 제주시 공용 오피스에 신세를 졌다. 오피스 시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집에서 좀 멀고 휴게 공간이나 개인 작업공간이 없는 게 아쉬웠다. 주변 식당 음식 가격이 비싸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작업했다. 정신없어서 도시락을 못 싸 온 날에는 한솥 도시락 김치볶음밥이나 떡볶이를 사다가 먹곤 했다.

소설가의 방이 그리웠다.

작업하다가 지치거나 졸리면 언제라도 낮잠을 잘 수 있었던 편안한 침대와 호텔 프린스가 장부를 달아 놓아서 하루 1회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던 분식집의 샐러드 김밥과 한우집의 된장찌개가 생각났다. 호텔 프린스 조식 뷔페, 영양센터 본점의 정식, 이삭 토스트, 명동 스트리트 푸드도.

소설가의 방에서 보냈던 시간은 지나갔지만, 탈구되었던 어깨의 통증만큼이나 선명한 문장들이 내 곁에 남았다. 공용 오피스에서 나는 『허즈번즈』를 계속 썼다.

2024년 연말, 공용 오피스 이용 기간마저 끝나자 작업실의 필요를 절감했다. 2025년 봄,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작업실을 얻었다. 그리고 그 작업실 덕분에 무사히 『허즈번즈』 3고와 4고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부엌 겸 거실에 방이 하나 딸린 작은 공간이고 화장실이 외부에 있는 점이 조금 불편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다.

나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생긴 것이다.



6.

소설가의 방에서 보낸 시간 동안 소설은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갔지만, 나는 스스로를 질책하지 않았다. 아무리 괴로워도 일단 책상 앞에 앉았다. 쓰는 날보다 쓰지 못한 날이 더 많았고,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소설인지 메모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순간도 잦았다. 그래도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았다. 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쓰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였다.

고통스럽게 나는 성장했다.

내가 소설가의 방에서 쓴 것은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내 이야기의 초고였다. 초고는 언제나 가장 서툰 진심이다. 그 진심을 잊지 않고 나아간다면 결국 이야기는 나온다.

소설가의 방으로부터 2년이 흘러 작년 겨울에 『허즈번즈』는 한권의 책이 되었다. 그 방에서 보냈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데려왔다.

나는 알고 있다. 그 방에 내가 남겨두고 온 것은 미완의 초고 몇 장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전의 나 자신임을.





1)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4. 박소해_프로필.jpg

박소해

이야기 세계 여행자이자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몽상가. 좋은 이야기는 구름 사이로 쏟아진 햇살 혹은 암흑 속에서 비로소 만나는 빛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언젠가는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는다. 2021년 계간 미스터리 가을호 「꽃산담」으로 신인상 수상. 2023년 「해녀의 아들」로 제17회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 고딕 호러 미스터리 장편 『허즈번즈』를 집필했고, 『고딕×호러 ×제주』를 기획하고 참여했다.

작가의 이전글[임성용 소설가] 변방 소설가의 영구동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