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에세이_초고를 쓰는 일
초고는 더럽고, 조잡하고, 오류투성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 초고의 유일한 독자인 나는, 창작자인 나를 향해 냉소적으로 말한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이니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고. 한편, 창작자 편에 선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내일은 조금 더 멋진 이야기가 될 테니 조금만 기다려줄 수 없겠냐고. 작업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안에 독자와 창작자는 그렇게 실랑이를 계속한다. 그리고 잠이 들기 전에야 두 존재의 목소리가 잦아들며 비로소 잠깐의 평화가 찾아온다.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번민을 겪을 것이다. 작업에 파묻혀 살다 보면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 내가 어떻게 늙어가는지 잊을 때도 많다. 작업에 쏟아부을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고, 노력과 재능은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느낀다. 그런 와중에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내면의 평론가가 끊임없이 독설을 쏟아낸다. 창작자인 나는 점점 위축되고, 때로는 내 존재가 투명해지기도 한다. 초고를 쓰는 일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가벼운 산책을 하듯, 즐거운 상상을 하듯 그렇게 초고를 쓰는 작가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겪는 초고의 산통이다.
초고는 세 단계를 거쳐 완고로 나아간다. 처음에는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이미지의 경험으로, 두 번째는 그 경험을 글이라는 물성, 즉 하나의 글 덩어리로 만든다. 아직 이 이야기의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다. 밀가루 반죽에 불과한 글 덩어리는 과자가 될지, 빵이 될지, 칼국수가 될지 모르는 상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 가서야 주인공이 겪게 될 가시밭길을 짐작하게 된다. 이쯤 되면 벌써 뒷목이 뻣뻣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 이야기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 지니의 운명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나고자 하는 글은 반드시 태어나고야 만다.
나는 모든 글쓰기 과정을 통틀어 첫 번째 단계를 가장 좋아한다. 초고의 산통을 겪으면서도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가장 강렬한 힘의 원천이다. 비밀 한 가지를 말하자면, 나는 이야기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이야기가 언제나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처럼 들리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찾아온 이야기를 제대로 끝내기 전까지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개미지옥을 경험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한 예로, 어느 날 묘한 꿈을 꾼 적이 있다. 나는 하얀 실험실에 둥근 은쟁반 위에 놓인 뇌였다. 말갛게 씻긴 뇌(나)는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난민촌. 끔찍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꿈속에 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고, 피난을 떠나는 수많은 인파 속에 휘말려 친구의 손을 놓고 말았다. 나는 살아남았지만, 우리는 헤어졌다. 공습이 일단락되고, 백방으로 친구를 찾아 헤맸지만 어디에도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마을은 잿더미로 변했고,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꿈에서 깬 뇌(나)는 절망했다. 그건 꿈이 아니라 과거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몸이 없는 뇌였고, 뇌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뿐이었다. 그래, 생각을 하자. 궁리를 하자. 분명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내린 결론은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기억을 되돌려 그곳에 가면, 친구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으로 향하는 도중 잠에서 깼다. 나는 뇌가 아니라 나였다.
이 꿈은 7년이나 나를 쫓아다녔다. 꿈에서 깨고도 모든 장면들이 선명했다. 꿈속에서 느꼈던 감정이 장면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 살기 위해 친구의 손을 놓고 말았다는 죄책감, 폐허로 변해버린 마을에서 절절한 슬픔, 실험실의 뇌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카르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반드시 엉킨 실타래 같은 이야기를 풀고 넘어가야 했다. 이후, 이 이야기는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되었다. 꿈속에서의 경험은 모티브만 남았고, 내가 느꼈던 감정은 주인공이 느낀 감정으로 옮겨갔다. 가장 힘들었던 거은 이야기에 맞는 적절한 글의 형식을 찾는 것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 스릴러 『알렉산드리아 뇌』라는 작품으로 대중에 공개되며 오랜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다 쓰고나서 알게 되었다. 작가는 이야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우주를 한참 떠돌다가 송재영이라는 어느 무명 작가를 선택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긴 시간 연재를 마치고 나서야 이 이야기가 내게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해방될 수 있었다. 덕분에 오랜 시간 움켜쥐고 있던 슬픔을 두고, 다음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는 낯선 경험과 필연적 우연으로만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신(神)빨이 아무리 좋아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전달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큰 무당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치유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이야기의 선택을 받는다 해도, 그걸 풀어낼 능력이 부족해서 겪게 되는 일명 ‘글럼프’ 시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 주면에도 많은 작가들이 이런 슬럼프 시기를 겪으며 살아간다. 이때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방어기제가 발동한다.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고, 한없이 부족한 재능만 탓하게 된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 보지만, 그럴수록 깊은 수렁에 빠진다. 묘안은 없다. 그저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감당할 그릇이 아직 아니라는 것을.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면 이별이 찾아온다. 뜨겁게 사랑할 때는 한 걸음 물러서는 게 영원한 이별처럼 아프고 힘들다. 작가에게는 이야기가 그렇다. 내게는 1년이 넘도록 천착한 이야기가 있다. 실은 지금도 그 이야기가 송재영이라는 작가를 떠나 새로운 작가를 선택한다면, 무척 질투가 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쓰는 시간이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이다. 언젠가는 이 뜨거움이 가라앉아 온전히 그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에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동안 내가 다뤘던 이야기는 특정한 사건을 모티브로 시작됐다. 즉,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야기의 결말을 모른 채, 인물과 공간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바다에 배를 띄웠으나, 배는 바람에 흔들리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인물은 말을 하지 않았고, 공간은 평범하게 변해갔다. 어떤 작가는 인물의 즉흥적인 말과 행동에 따라 이야기를 펼쳐가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철저하게 계산된 영역 속에 인물을 배치해 쓰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제껏 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면 이야기를 끌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이야기 전부를 알고 나서야 초고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두 개의 세계에 중첩되어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현실에서의 감각이 무뎌지고, 나도 모르게 감정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긴다. 한때는 작가의 일이란 글을 쓰기 위해 희생하는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참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책상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스스로를 도구로 여기며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도구로 여기는 작가는 작품 속 주인공 또한 도구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현실에서 못난 나를 감추려고 작품 속에 완벽한 신을 만들려고도 했었다. 모두 자만이었고, 욕심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하루를 살아내는 것보다 대단한 일이 아니다. 때로는 내면에 너무 큰 에너지가 글쓰기를 방해하기도 하고, 물리적 환경이 허락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일단 책상에 앉아 시작해 보는 거다. 오늘 나의 최선이 비록 더럽고, 조잡하고, 오류투성이 글 반죽이면 어떤가. 태어나고자 하는 글은 반드시 태어나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다.
타라재이(송재영)
‘타라재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사라진 시간과 공간을 세상에 잇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1회 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 선정작 ‘시간을 짓는 건축가’(2018)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공연 ‘시간을 칠하는 사람’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2021년 제5회 추미스 공모전에서 ‘알렉산드리아 뇌’가 선정되어 드라마 분야로 카카오페이지에 101회 연재했습니다. 2022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를 통해 단편 ‘붉은공’을 발표하였고, 소설을 각색한 웹툰 시나리오 ‘볼셋!국용’을 집필했습니다. 현재 소설과 드라마 대본을 쓰며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