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소설가] 빈 모래시계

소설가의 에세이_초고를 쓰는 일

by ARKO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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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를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다행히도 그동안 쓴 소설과 그 과정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 이를테면 누구와 무슨 얘기를 하다가 어떤 이야기를 떠올렸다던가, 뭘 읽다가 어떤 생각이 났다든가 하는 것들. 소설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 쓸 때의 습관, 쓰다가 막혔을 때 하는 일…. 사실 정답을 알고 있다. 아마 다른 작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확신한다.

-작품마다 다르다.

어떤 소설은 며칠 만에 막힘 없이 쭉 써서 완성하기도 하고, 어떤 소설은 두 달을 꼬박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어떤 소설은 전혀 고치지 않고 발표할 때도 있고, 어떤 소설은 삼십 번도 넘게 고쳐서 초고와 완성본이 전혀 다른 작품처럼 보일 때도 있다.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같은 요소는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제목, 나는 제목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나중에 바꾸더라도 가제라도 먼저 정한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제목부터 정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름을 쓴다. 내 이름으로 발표하는 글이니까 좋아도 나빠도 내 책임이라는 의미다. 그 두 가지를 빼면 작품마다 창작 과정이 다 다르다.

꽤 오래 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십 대에 소설가가 되었고, 지금은 사십 대니까. 이십 대의 나와 사십 대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십 대의 나는 원고지 80매짜리 소설을 써야 하면 150매쯤 쓴 후에 70매를 지웠다. 지금도 생각은 비슷한데, 글을 잘 쓰는 일은 불가능하고 글을 잘 지우는 일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요즘은 효율이나 능률 탓인지 지울 문장은 되도록 쓰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지울 뿐, 결국에는 쓰는 일보다 지우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문학관도 변하고 좋은 문장이나 소설에 대한 생각도 변한다. 조금이라도 더 새롭고 세련된 것을 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는데, 새로움이나 세련됨도 조금씩 달라진다. 내 생각이 달라질 때도 있고,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작품마다 쓰는 시기마다 창작 과정은 계속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초고를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초고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빈 모래시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초고를 쓴다는 건 빈 모래시계를 반복해서 뒤집는 일, 빈 모래시계를 채우는 일, 빈 모래시계를 바라보는 일과 같다. 최인호 선생님은 깜박이는 커서가 빨리 쓰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 원고지에 연필로 소설을 쓰셨다는데, 나는 노트북도 안 되고 반드시 PC가 있어야만 소설을 쓸 수 있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많다는데, 나는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신기할 뿐이다.

제목과 이름을 적고 첫 문장을 쓰려고 할 때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격언들.

-소설의 시작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 시작하지 말라는 말이다.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하듯 출발하는 좋은 소설도 많지만, 왜 그런 말이 있는지 이해는 한다. 수없이 많은 하루 중에 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수없이 많은 시간 중에 왜 지금 출발하는가. 그것은 오늘이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가 아니라, 어떤 날이기 때문이고, 늘 반복되는 시간이 아니라 인물(사건)의 변화와 관련된 어떤 시간이기 때문이다.

독자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독자는 내가 뭘 쓰든 페이지를 넘겨주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가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어야 한다. 독자의 마음가짐은 답답하고 심심해서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산책하기로 한 사람과 비슷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심심한데 책이나 읽을까 하고 보는 게 소설이다.

-산책자의 마음.

아파트 단지를 산책 하다가 5층에 서 있는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잠시 멈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멈춰 있지는 않는다. 소설로 돌아와 보면 문장이 정갈하고 표현이 좋으면 독자는 잠시 읽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계속 읽지는 않는다.

계속 산책을 이어가다가 7층에 서 있는 유명한 연예인을 발견하면 또 잠시 멈춘다. 하지만 곧 다시 산책을 이어간다. 원래 관심이 있는 소재,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나오면 독자는 잠시 읽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것만으로 계속 읽지는 않는다.

또다시 산책을 이어가다가 9층 베란다에 매달려 있는 다섯 살짜리 꼬마 아이를 발견하면 어떨까. 잠시 멈췄다가 지나가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 안에 개입하게 된다. 119에 신고를 하고, 경비 아저씨를 부르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어쩌면 바닥에 매트나 이불 같은 것을 깔 수도 있고, 능력이 된다면 도시가스관을 타고 올라가 아이를 구하려 할 수도 있다. 비극적으로 아이가 떨어져 죽든, 소방관들이 와서 아이들 구하든,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때까지는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예가 적절했는지 모르겠는데, 이러한 이유로 나는 산책하는 독자를 사로잡기 위해 되도록 어떤 사건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요즘은 이게 일종의 세대 감각이라는 생각도 든다.

-소설은 시대와 세대의 산물이다.

매우 주관적인 분석이라 조심스럽지만, 나보다 선배 세대는 ‘인물’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다. 뭘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출퇴근하는지 어느 정도 주기로 미용실에 가는지, 식습관, 취미, 언어습관….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도 신경 써 입체적인 인물을 만든다. 내 또래의 작가들은 ‘상황’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설령 다른 인물로 바뀐다고 해도 같은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작동하도록 구조를 짠다. 지금의 젊은 작가들은 ‘기분’을 솔직하게 쓰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다. 학술적인 분석도 아니고 모두가 그렇다는 말도 아니다. 그냥 최근에 소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상황을 먼저 만든다. 물론 이것도 소설마다 다르다. 어떤 작품은 인물로 출발하고, 또 어떤 작품은 문장 하나가 시작이 되기도 한다.


건강 상태나 하는 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 년에 세 번 정도 소위 글이 잘 써지는 날이 찾아온다. 내 식대로 말하자면 우주에서 문장이 흘러들어오는 날이다. 문제는 이날이 언제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오늘이 소설이 잘 써지는 날인데, 쓰지 않고 지나가면 그냥 사라져버린다. 놓치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써야 한다. 나는 보통 자기 전에 삼십 분 정도 소설을 쓴다. 한 문단이라도 쓴다. 그리고 잘 써지는 날이면 다음날 일정을 취소하더라도 밤을 새운다.

-내가 오늘 명작을 쓰는 날이었는데.

쓰고 있는데 누가 불러내면 작가들끼리 하는 농담이다. 언젠가는 명작을 쓸 거라는 마음으로 계속 쓴다.


언제까지 마감을 해야 하는데, 그사이에 잘 써지는 날이 안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마감을 크게 어긴 적은 별로 없다. 안 써져도 어떻게든 쓴다. 소설을 쓰다가 막히면 산책을 한다. 지금까지 쓴 문장들을 중얼거리면서 걷는다. 멀리 갈 때도 있고, 집 근처를 뱅뱅 돌 때도 있다. 호텔 프린스에 있을 때는, 길을 건너 명동거리를 걷다가 명동성당을 찍고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산책을 하고 오면 몇 문장쯤 더 쓸 수 있다. 사실 조금 전에도 산책을 다녀왔다.

-초고는 쓰레기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써야 한다.

비슷한 말이 많다. 초고는 잘 쓰려고 하면 안 된다든가, 대충 써야 한다든가 하는 식의 말들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가내 수공업 하듯이 쓰는 소설도 있지만, 보통은 초고를 쓸 때는 뼈대만 잡는다. 문단이 연결이 안 되어도 일단 넘어가고, 필요한 자료나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어도 일단은 이야기를 진행 시킨다. 큰 줄기들이 어긋나지만 않으면 그렇게 끝까지 밀고 나간다.

아주 드물게 초고가 그 자체로 완성도가 있는 좋은 작품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초고는 고치기 위해 존재한다. 혹은 초고를 다 쓴 후에 다시 새 창을 열고 처음부터 다시 쓰는 소설도 있다. 그 경우에는 초고가 그대로 작품을 쓰기 위한 창작 노트가 된다.


마지막으로 초고를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초고를 다 끝내고 나서야 내가 이 작품을 왜 썼는지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이 무엇인지 작품이 가야 할 길과 방향이 다시 보인다. 초고를 완성한 후에는 며칠쯤 쉬었다가, 퇴고를 시작한다. 어떤 선배는 초고를 끝내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고 다 잊어버린 후에 고친다고 한다. 건강에는 안 좋을 것 같지만, 작품과의 거리를 벌리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나는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뇌를 비우기 위한 시간을 보낸다.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웹툰을 보면서 며칠을 보낸다. 그리고 남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초고를 읽는다. 순서를 바꾸고, 필요하다면 형식을 만들고, 지워야 하는 장면과 문장을 빼고, 새로 필요한 것들을 채우고….

빈 모래시계에 모래를 채우고 뒤집으면 비로소 시간이 흐른다. 백지 위에 문장을 채워 넣고 초고를 완성하면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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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201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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