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에세이_초고를 쓰는 일
호텔 프린스에는 나보다 어린 낙타 한 마리가 먼저 와 있었다. 하필이면 대학 모교 지척에 있는 이곳이 봉인된 혹의 기억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이봐, 93학번! 여긴 사막이 아니야.
푹신한 침대, 바스락거리는 하얀 침구, 은은한 조명이 켜진 책상, 증명이라도 하듯 모든 게 정갈하고 평온했다. 이런 환상적인 공간에서 동화를 쓸 수 있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지나온 시간이 주는 치유의 힘에 기대 짐을 풀었다. 오랜 세월이 조금은 나를 무디게 해 주었으리라 믿으며. 되도록 남산 쪽을 등지고 잠을 청했고, 아침이 되면 반사적으로 커튼부터 닫아버렸다. 그럼에도 혹이 채 자라지 않은 어린 낙타는 기어이 내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초고를 뭉개고 다시 시작하기를 여러 번.
나는 그만 침대 위로 뻗어버렸다.
탕!
누추한 기억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리.
어린 낙타를 피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좀비처럼 명동 거리를 헤매는 것뿐이었다. 혼자서 마늘 향이 진한 명동칼국수를 후루룩 먹어대고 딱히 살 것도 없는데 여기저기 상점들을 기웃거리던 좀비는 금세 지쳐 버렸다.
문예창작과를 다니던 90년대 명동은 지금보다 훨씬 왁자지껄했다. 거리마다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길모퉁이에서는 붕어빵과 호떡을 굽는 냄새, 군밤 냄새가 한데 섞여 올라왔고, 음반 가게 앞에는 CD를 사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밤이 되어도 네온사인은 꺼지지 않았고 어린 낙타는 늘 그 화려한 불빛 속을 서둘러 지나갔다. 나팔바지에 통굽 구두를 신고 손에는 학교 로고가 박힌 파일을 들고서.
하지만 더는 그때의 청춘이 아니지 않은가. 오롯이 혼자 있고 싶어진 내가 흐느적대며 도피처를 찾은 곳은 끝끝내 남산밖에는 없었다.
복잡한 도시의 소음이 점차 뒤로 물러나면서 익숙한 공기가 코끝에 닿자, 죽어가던 감각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불행히도 남산 자락 아래 묵혀둔 통증도 함께.
그 시절 나는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등록금은 물론, 자취방 월세까지 벌어야 했다. 손이 느린 탓에 경리로 일하다 계산을 맞추지 못해 한 달 만에 잘렸고, 호프집에서는 잔을 들지 못해 하루 만에 그만두었다. (유달리 작은 손에 머리만 크다고 ‘도라에몽’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나. 그런 도라에몽한테 오천cc 잔들을 한꺼번에 서빙하라니!)
2학년 때는 야간 B반으로 옮겨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낮에는 전단지를 돌렸다. 대부분은 받지 않았다. 바닥에 버려진 전단지들을 주워 다시 나눠주곤 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전에는 수입 가구 매장에서도 일했다.
어떤 고객들은 망설임 없이 현금다발을 꺼내 값비싼 수입 가구를 구매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주문서를 작성하고 지폐를 세야만 했다. 백만 원이 넘는 지폐를 두 번, 세 번 다시 세다가 셈이 느리다고 혼이 난 적도 있다. 쉬는 시간이면 계단에 앉아 퉁퉁 부은 다리를 두드렸다. 백화점 밖 아파트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실컷 놀다가 해가 지면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부럽기만 했다.
어느 날은 같이 일하던 동료가 손님에게 한바탕 욕을 먹고 돌아왔다. 계단에 털썩 주저앉더니 하소연하듯 말했다.
“야, 여기 안 무너지냐?”
얼마 뒤, 글짓기 학원 강사로 자리를 옮겼을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뉴스 속보가 떴다. 화면 속에서 내가 잠시 머물렀던 공간이 형체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훗날 심리상담사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꺼냈을 때, 상담사는 내게 유독 공간에 예민한 이유를 물었다. 왜 출입문이나 출구 쪽에만 앉으려고 하는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그토록 긴장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탈진하는 건지…. 상담사는 그 원인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구구절절 낙타 시절 핑계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그렇게 낮에는 알바를 뛰고,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깜깜한 밤이었다.
어떤 날은 돈이 없어서 명동에서 자양동까지 몇 시간을 걸어간 적도 있다.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동기들에게 천 원을 빌리지 못하고 걸어가던 길.
따뜻한 불빛 아래, 가게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나는 이런 고단한 삶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두렵고 또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했던 그때, 하지만 하늘마저 얼어붙은 듯 아무런 응답이 없던 그 시절.
널 마주하지 않고서는 평생 이 짐을 지고 가야 할지도 몰라.
나는 오르막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발걸음을 돌려 모교 쪽으로 향했다. 골목을 돌아서자, 육교가 보이고 최후의 경사길을 예고하듯 서 있는 정문과 커다란 음악당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육교 위로 올라서자, 여북한 바람이 불어왔다. 내 안의 오래된 그림자가 천천히 흔들렸다. 그리고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가파른 사막을 위태롭게 건너오는 네가 보였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수업에 늦을까 봐 허겁지겁 뛰던 모습 그대로. 보나 마나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네 몸은 축축이 젖어 있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을 테지. 늘 배가 고프고, 잠이 부족하고, 불안에 흔들리던 청춘, 그러면서도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했던 네가 계단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어린 낙타였던 나와 그 시절을 견뎌낸 내가 육교 위에서 마주친 순간, 둘 다 같은 나인데, 앳된 네 얼굴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무엇보다 나는 네 눈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비관적이면서도 슬픈 눈. 나는 그대로 숨을 참았고 너는 내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물끄러미 쳐다보지만 말고 어서 무슨 말이라도 해 봐!
향수도, 그리움도 없이 남아 있는 건 이질감뿐이었다. 그 삭막한 기억을 견디기 위해 대강의 미래라도 토해내야만 했다.
이 길엔 반드시 끝이 있어. 미래의 너는 지금의 시간을 토대로 글을 쓰게 될 거야. 2008년에 네 어린 시절 이야기로 5·18 문학상을 받고 응답처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도 낳게 돼. 가족은 축복이었어. 자꾸만 혼자 있으려는 널 세상 밖으로 꺼내준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러니 어린 낙타야, 죽겠다고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모으지 마. 죽어야 비로소 끝날 거라는 속삭임에 속으면 안 돼. 결단코.
네가 천천히 돌아섰다. 이번엔 피하지 않고 네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줌마, 근데 미모는 어디다 갖다 버린 거야? 뚱뚱해지고 등까지 굽었잖아!”
“(아줌마? 저 싸가지 같으니라고!) 뭐, 작가로 살아가는 삶도 절대 녹록하진 않았어. AI가 나오기 훨씬 전이라 노트북에 책까지 가방 안에 한데 넣고 다니던 시절이었지. 도서관에서 자료 책들을 산처럼 쌓아놓고 작업해야만 했거든. 그래도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뛰었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작업하느라 등이 조금씩 굽어가는 줄도 몰랐지만.”
“아줌마는 여전히 낙타의 삶을 살고 있네.”
“그래. 하지만 지금은 그 짐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걸 알아.”
어린 낙타가 희미하게 웃었다. 자세히 보니 그때의 너도 혼자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아프다는 이유로 밀어두었던 기억들. 그럼에도 벼랑 같은 스무 살의 나를 밀어내지 않던 그 자리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절엔 너만 힘든 게 아니었어. 함께 짐을 나눠 짊어진 가족이 있었고, 그래서 철없던 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잔뜩 움츠린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다정하게 네 이름을 불러주던 이들, 넌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학교로 올라가더니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졌다,
네가 견뎌내야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어. 네가 푹푹 빠지는 그 절망 속을 헤쳐나와야 날 만날 수 있어. 힘들 땐 그 힘든 얼굴들을 외면하지 말고 이왕이면 마주 보렴. 그들 곁에서 함께 울고 웃으면서 내게 오길 바랄게.
나는 뿌옇게 사라지는 네 뒷모습을 향해 속삭였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와 호텔 프린스로 향하는 길.
복도를 지나 내 방문 앞에 서니 그제야 작은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장지혜 작가께서 집필하는 객실입니다. 조용히 이동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왜곡된 기억이 걷힌 것과 동시에 비로소 발견한 타인의 마음.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는 익숙한 발걸음을 멈추고 작은 배려를 건네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남산에 어깨를 기댄 이곳이 도망치고 싶은 곳이 아니라 견뎌낸 시간의 표식으로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식당으로 내려가면 늘 그 자리에 단정한 양복 차림의 지배인이 서 있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 자리에서 조식을 먹고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래 머물러 있어도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넉넉히 누릴 수 있도록 적당한 시선으로 배려해주던 공간들.
그날 이후로 학교 가는 길도 피하지 않게 됐다. 청소 시간이면 호텔을 나와 초가을의 남산 둘레길을 걸었다. 여름을 완전히 놓아주지 못한 듯 한낮이 되면 햇살이 뜨거워졌지만, 나무 그늘은 선선해서 걸을 만했다.
아직 남아 있는 초록 사이로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잎들이 조용히 계절을 알리고 있었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을 보는 기쁨이 있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남산타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하늘의 색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하늘은 깊어졌고 구름은 높고 느리게 흘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이면서도 사실은 서서히 가을로 바뀌는 중이었다. 내 삶의 유랑처럼 눈에 띄지 않게, 그리고 소리 없이. 어린 낙타 시절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떤 모호한 구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할 것 같고, 아직은 조금 더 붙들고 싶기도 한, 그 애매한 계절을 닮은 구상들.
어떤 날은 식당에서 직원들과 가볍게 인사하고 함께 저녁을 먹기도 했고 낯이 익은 소설가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마음들이 나를 일으켜 다시 문장 앞으로 데려다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원시시대 ‘작달막이’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작지만 당차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아이. 땅딸막한 도라에몽 몸집에 굽은 등이 더해져 키가 더욱 작아진 아이, 그러니까 나를 꼭 닮은 아이였다.
“작달막이야, 대체 넌 언제 클래?”
“넌 모르지? 사실 작아서 좋은 점도 많아.”
“어떤 점이 좋은데?”
“일단 나무를 잘 탈 수 있어. 그리고 사냥할 때도 눈에 잘 띄지 않지. 며칠 전, 작은엄마가 아기를 또 낳아 아이들이 열둘이나 되었잖아? 가뜩이나 좁은 움집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몰라. 하지만 난 몸집이 작아서 어떤 자세로도 편하게 잘 수 있어. 가로로 누워도 되고, 세로로 누워도….” (중략)
―동화 『아주 먼 옛날 작달막이 이야기』 중에서
아이러니했다. 공간으로 인해 힘들어했던 내가 공간의 자유를 꿈꾸는 이야기를 쓰고 있었으니까. 현실의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질수록 오히려 아무것도 막히지 않은 원시의 들판을 상상했다. 공룡들이 뛰어다니고, 작달막이가 나무를 타고, 아이들이 마음껏 노는 세계. 공간 트리거를 지닌 작가가 쓰기 시작한 초고의 시작은 역설적이게도 경계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었을 때 나는 작가의 말을 쓰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면서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한 하늘과 땅이 그리워졌습니다. 원시의 공간처럼 푸르른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만 있다면! 이 동화는 아픈 지구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쓴 이야기입니다.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평화롭게 지내는 곳처럼, 어린이들이 공룡과 함께 노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면서 행복해졌거든요.
―동화 『아주 먼 옛날 작달막이 이야기』 ‘작가의 말’ 중에서
작달막이는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라지 않았다. 공룡과 공존하는 무시무시한 시대에서도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강해지려 애쓰지 않았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남다른 생각으로 끝까지 살아남았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고,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 길이 혼자만의 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살아보니 호텔 프린스 방이 그러했듯 말없이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들이 오아시스만큼, 꼭 그만큼만 곳곳에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지난 시간은 아직도 상흔으로 남아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때때로 트라우마에 잠식된 채 허우적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작달막이 같이 엉뚱하고 별난 캐릭터들을 빚어낸다. 자연스레 아픔까지 유머로 승화시켜 이야기 속에 숨겨둔다.
동화는 아이들의 언어로 말을 건네는 작업이지만 때로는 자라지 못한 어른들도 대상이 된다. 어른의 기억에 숨어 있는 아이를 향해, 아이의 미래 속에 자리한 어른을 향해서.
앞으로도 나는 아픈 청춘을 지나고 있을 세상의 모든 낙타에게, 그리고 호텔 프린스를 거쳐 갈, 무수한 낙타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넬 것이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우리는 마침내 각자의 사막을 건너 힘겹게 끝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자신만의 보폭으로 그곳에 부디 안전하게 당도하게 되기를.
장지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좋아해, 지금까지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아빠의 선물』로 5.18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MBC 창작 동화 장편 부문 대상 등을 받았습니다. 쓴 책으로는 『사자성어 폰의 비밀』 『고마워, 살아줘서』 『이상한 아이스크림 가게』 『아주 먼 옛날 작달막이 이야기』 『변신 문어 원더』 『껌딱지 코딱지』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