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빈 소설가] 작가–알이 깨지는 순간

소설가의 에세이_미발표작

by ARKO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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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화면 너머의 빈 공간을 채울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여러 번 다시 쓴 소설 초고와 서로 연결된 단편들을 완성해놓았고, 그의 문학 에이전트를 통해 세 달 전에 출판사 편집자들에게 보내진 두 권의 책은 아직 읽히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네 권이나 썼으니(공식적으로 출판되지 않아 ‘책’이라고 부르기 부끄럽긴 했지만), 그는 기뻐해야 마땅했다.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책을 쓰는 일은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이었다. 하지만 첫 책을 완성한 뒤 그는 그것이 전통적 방식으로 출판되길 원했다. 이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독자로 삼아 글을 쓰려 했던 초기 목적과는 다소 모순되는 지점이었다.


그는 출판되는 방법을 온라인에서 검색했다. 작가가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기 위해서는 문학 에이전시의 에이전트에게 대표돼야 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는 다시 어떻게 에이전트를 얻는지를 조사했다. 그렇게 ‘에이전트를 얻는 것’이 새로운 꿈이 되었다.


그가 처음 검색창에 쓴 문장은 ‘문학 에이전트를 얻을 확률’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숫자는 1/6000이었다. 물론 곳곳에서 다른 숫자들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 본 그 숫자가 평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름 있는 대형 에이전시에 들어가려 하면 그 확률은 훨씬 더 낮아졌다. 그는 또한 자신이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백인이 지배하는 출판계에서 에이전트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깨달았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동시에 출판사의 ‘문지기’들에게 승인을 받아야 출판될 수 있는 책의 첫 장에서 이를 깊게 파고드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일 년 동안 수많은 에이전트에게 원고를 제출했지만 답장은 한 통도 오지 않았다. 그는 거의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러나 그의 글을 믿어준 몇몇 사람들 덕분에, 그해 말 마침내 그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문학 에이전시 중 한 곳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 계약서를 손에 쥔 상태에서, 그는 출간 이력이 없었음에도 한국의 거의 모든 문학 레지던시에 합격했다. 이는 전년도에 지원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떨어졌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책이 출간된 것은 아니었지만, 영국 에이전시와 연결된 그 한 장의 계약서가 모든 것을 바꿨다.


이제 다시 책상 앞의 작가로 돌아가자. 그는 광주에서 진행 중인 레지던시의 절반쯤을 지나고 있다. 이미 올해 쓰고 싶었던 것들은 모두 썼다. 세계의 부조리를 다룬 연작 단편, 한국에서의 21개월 강제노동 경험을 현대판 단테의 『지옥』으로 재해석한 반(半)자전적 장편, 똥과 토끼를 둘러싼 억압의 구조를 다룬 연작 단편, 그리고 1996년 서울과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장편. 앞의 두 작품은 이 도시로 오기 전에 끝냈고, 뒤의 두 작품은 이곳에서 썼다. 이 작품들이 앞으로 출간될지, 아니면 출판계 문지기들에게 가로막혀 평생 빛을 보지 못할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 탓할 대상을 찾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문지기’와 ‘체제적 억압’을 쓰고 있으면서, 이 도시가 40년 전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곳임을 생각한다.


광주에 도착한 뒤 그의 글쓰기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라졌다. 네다섯 배쯤은 되는 듯했다. 글쓰기는 그에게 있어 불안의 바다에서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산소였다; 언제 에이전트가 “출판 계약이 성사됐다”는 메일을 보낼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방금 세미콜론을 쓴 것을 보며 작가는 커트 보니것의 말을 떠올렸다. “세미콜론을 쓰지 말라. 아무 의미도 없다. 단지 대학 나온 티를 낼 뿐이다.” 정말 멋진 작가라고 그는 생각했다. 담배 연기 속에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킬고어 트라우트와 일리엇 로즈워터 같은 인물들이 떠다니는 보니것의 얼굴이 그려졌다. 글쓰기가 그를 이 세계—불안과 이메일이 없는 세계—로부터 잠시나마 탈출시켜 준다는 사실에, 그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두 권을 더 썼음에도 에이전트에게서 출판 계약 소식은 없다. 그는 ‘아무 소식 없음’이 오히려 낫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다. 왜냐하면 거절 메일은 관심 메일보다 훨씬 빨리 도착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이 공백의 시간 동안 그는 이미 쓴 책들을 다시 편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고쳐서, 다시 보면 책 자체를 싫어하게 될 것 같았다. 그는 스스로를 갉아먹고 싶지 않았다.


그때 문득,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한 인물이 떠올랐다. 이름은 탁삼보였다. 이 인물을 처음 들은 사연은 중요하지도 않았고, 그 이야기를 건넨 사람의 태도도 그랬다. 작가는 글쓰기 전업을 하기 전, 다른 도시의 특수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했다. 교실마다 학생은 여섯, 교사는 거의 없고, 중년의 보조 교사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한 사회복무요원 둘이 대부분의 일을 떠맡았다. 그 보조 교사는 작가가 미국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고, 작가에게 한국 문화 적응에 도움이 된다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은근히 좋아했다. 봄볕이 가을볕보다 피부에 더 해롭다는 이야기라든가, 그래서 옛날에는 며느리를 봄볕 아래로 내보내고 딸은 가을볕 아래로 내보냈다는 이야기라든가. 정확히 어느 쪽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수천 개의 이야기 중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은 ‘탁삼보’라는 이름 하나였다.


어느 날 학생들에게 점심을 먹이고 나서 보조 교사가 말했다. “광주에서 학교 다닐 때였어.” 작가는 그녀가 광주 출신임을 다시 떠올렸다. 그녀는 과거 정부의 왜곡 선전 때문인지, 다른 한국인들 앞에서 자신의 출신지를 말하기를 꺼렸다. 보조 교사는 계속 말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명찰에 탁삼보라고 적힌 남자아이가 있더라고. 처음 보는 이상한 이름이었지. 그날 한 번 보고 다시 본 적은 없어. 그런데 왜인지 몰라도, 그 이름이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떠올라.”


작가는 그 이야기를 곧 잊었다. 그런데 글을 쓰던 어느 날, 편집 과정에서 원고 속에 ‘탁삼보’라는 이름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이름을 쓴 기억이 없었다. 그는 당황하며 그 이름을 지워버렸다.


몇 달 뒤, 또 다른 원고에서 그 이름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쉽게 지울 수 없었다. 한 번이면 우연이지만 두 번이면 뭔가 의미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작품에는 어울리지 않아 결국 또 지웠다. 그는 탁삼보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소설 속 모든 인물은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때부터 산책을 하거나 요리를 할 때면 탁삼보라는 이름이 그의 머릿속에서 끝없이 번져갔다. 이름 자체가 스스로 생명을 얻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는 자신도 또 다른 이야기를 써야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탁삼보 역시 아는지 궁금했다. 어쨌든 탁삼보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이름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작가가 이름 하나만 가진 인물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상황이나 감정이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 인물과 세계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탁삼보에게는 단서가 너무 적었다. 한국적인 이름이지만 굳이 한국 국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의 세계가 제한될 것 같았다. 그는 어떻게 생겼을까… 생각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다.


기름진 긴 머리를 긁적이며 작가는 컴퓨터를 탁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은 별빛 하나 없는 새까만 어둠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이 막 해가 떠오르던 때였음을 떠올렸다. 전업 작가가 된 뒤, 그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자주 경험했다. 어쩌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글을 쓸 때에만, 그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시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종종 이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경계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렇다, 작가는 생각했다. 그는 탁삼보 역시 그 경계에서 자유롭기를 바랐다. 아무 기대도 없이 모든 것을 의심하며, 그렇게 해서 결국 삶의 의미를 찾게 되길 바랐다. 맹인 시인으로 만들까? 잠시 고민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호메로스 전기를 베낄 생각은 없었다.


동기만 찾으면 탁삼보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으며, 작가는 이 인물의 영혼이 조금씩 형체를 만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작가는 침대이자 거실이자 작업실인 방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방금 전 본 하늘만큼 어두웠다. 부엌 불을 켜고 카운터에 놓인 달걀을 바라보았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그는 이 저렴하고 든든한 식재료에 의존하고 있었다. 출간되지 않은 전업 작가로 사는 데 영양실조는 흔한 부작용이었다. 달걀 하나를 집어 들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구죠?”


“너는 탁삼보야.”


“여긴 어디죠?”


“너는 지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려는 중이야.”


“왜요?”


“책을 쓰기 위해서지.”


“제가 원래 그 세계 출신인가요?”


“아니.”


“그럼 저는 어디서 왔죠?”


“너는… 쇼윈도에서 왔다.”


이것은 최근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또 하나의 이름이었다.


“그게 뭐죠?”


“네가 태어난 섬이야. 네가 새로운 세계로 가는 목적은 네 삶의 의미를 찾는 것. 찾고 나면 다시 그 섬으로 돌아갈 거야.”


“잠깐만요. 왜—”


작가는 달걀을 프라이팬에 깨뜨렸다. 그와 동시에 탁삼보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탁삼보가 방금 새로운 세계에 들어갔다고 느낀 작가는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생각했다. “나를 탁삼보라 부르시오?” 아니다, 아무도 끝까지 읽지 못하는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쓰고 싶진 않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그것도 너무 허무맹랑했다. “재산이 있는 총각은 아내를 원한다는 사실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진리다.” 오, 이건 지금의 정치적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볼까—


“이것은 탁삼보의 이야기다.”


그래, 이거면 된다. 왠지 울림이 있었다.

이것은 탁삼보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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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빈

Curtis Brown(영국/세계)과 Duran Kim Agency(한국)에 소속된 소설가이자 예술가로, 문학과 시각예술을 넘나들며 다양한 매체를 실험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현재 《리얼리티 샌드위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작업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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