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에세이_초고를 쓰는 일
2018년 봄, 벚꽃 흐드러진 4월과 아카시아 향기가 퍼지던 5월 사이 6주간 프린스호텔에 머물렀다. 명동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곳. 캐리어를 끈 여행객들에 끼어 계단을 오르자 챙모자에 정복을 입은 60대 할아버지가 입구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안내 카운터에서 이번 입주 작가로 선정된 사람이라고 하고 ‘소설가의 방’ 관련 부장을 호출했으나 외출 중이라고 했다. 종이에 내 이름을 한자로 남겼다. 방 앞에 ‘이곳은 ○○○ 소설가가 머무르며 집필 중인 방입니다’라는 문구를 영어, 일어, 중국어, 한국어로 써 붙여야 한다고 했다.
소설가의 방은 12층이었다. 문을 열고 커튼을 젖히자 넓은 창으로 퇴계로와 남산골로 오르는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 이십 대 낮과 밤의 발자국이 가장 많이 찍힌 곳이었다. 대학 본관엔 강의실이 모자라 남산골에 흩어져 있던 연구관과 예술관으로 옮겨 다니며 강의를 들어야 했던 곳. 대학이 작은 게 아니라 남산골 전체가 캠퍼스라고 떠들고 웃던 그 시절. 날이 좋으면 충헌탑에 모여 소설 합평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곳에서 쓰게 될 소설은 그 시절의 내가 아닐까, 하는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예감은 매일 산책을 하며 내가 찾는 것이 뭘까 고민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
‘재미로’라고 이름이 바뀐 명륜길을 산책했다. 외교구락부가 있던 자리는 다른 대학이 사들였고, 그 길에 있던 숭의서점이나 가스등도 보이지 않았다. 숭의서점에서 시집을 사던 날은 외교구락부 앞 계단에 앉아 시를 읽곤 했는데 그때 그늘을 만들어주던 커다란 오동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가 콜록거리며 지나가고 남산타워가 미세먼지에 싸여 희뿌연 날이었다. 내려오면서 본 풍경의 절반은 밤에 더 잘 보이는 흰꽃나무들이었고, 또 절반은 건물들이 대부분 게스트하우스로 바뀐 풍경이었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도 중국인, 아랍인, 대만 여행자들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이 재밌는 걸 보았는데 장롱 양쪽을 뜯어 만든 대문이었다. ‘장롱’이라는 발음을 입에서 굴리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호텔에 있는 동안 쓴 일기장을 들춰본다. 어느 날의 일기에는 ‘비 온 뒤 맑음’이라고만 적혀 있고, 또 어느 날에는 ‘코끼리의 방’과 ‘코끼리가 있는 방’에 대한 단상이 적혀 있다. ‘코끼리가 있는 방’은 코끼리가 주격이고 ‘코끼리의 방’은 공간이 주인공이다. 방이 주인이 되는 셈이다. 당시 나는 첫 소설집에 들어갈 ‘작가의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끙끙대고 있었다. 호텔에서 받아본 마지막 교정지를 앞에 두고 차례를 훑어봤다. 그림자들의 강, 저녁의 목소리, 눈의 집, 늙은 물의 사랑은……. 강, 목소리, 집, 사랑, 이것들이 내 소설의 주인공들이었을까.
새벽에 비가 오는 걸 봤다. 자다 깨어 고개만 옆으로 돌리니 남산 끝자락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평평하게 펴져 하늘을 한 층 들어 올리고 있었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창을 때리는 요란한 소리에 깼다. 무섭게 창을 때리는 것은 우박이었다. 도대체 몇 시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12층에서 비가 오고 우박이 떨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건 낯설어서 더 몽롱했던 것 같다.
점심을 먹으러 13층으로 갔다. 주방 아주머니가 작가님이라고 소개하자 흰 티를 입은 작은 키의 중년 남자가 내게 많이 드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오후에 남산을 한 바퀴 돌 거라고 앞에 있는 남자에게 얘기하다가 내게 뭐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었다. 물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복을 입은 직원들을 향해 “작가님 방에 물을 여유 있게 가져다 드려요”라고 했다. 그가 호텔 사장님이라는 걸 직원의 대답으로 알게 되었다. 사장님이 직원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 모습도, 주방 아주머니가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직원 식당에서는 자신이 대빵인 듯 주방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가장 컸고 당당했다. 그날의 인상을 적어놓은 일기에는 “내 방에서도 내가 대빵이 되어야지”라는 다짐이 쓰여 있다.
어느 날은 남산길을 걸었다. 그해 처음 본 진달래가 반가웠다. 은은하게 바람 타고 흔들리는 연분홍을 오래 바라보았다. 케이블카 옆에는 긴 줄이 있었는데 중국인들이 아침부터 줄을 선 모양이었다. 중국대사관인 것 같았는데 여권 연장, 그런 걸까 싶었다. 남산타워에서 서울을 한눈에 담았다. 날이 맑아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안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멀리 강화의 물길까지 확 트였다. 이상하게 그날 내게 남산과 한강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다가왔다. 여행객들이 왜 남산을 그렇게 오르는지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수도 한가운데를 흐르는 큰 강과 그 뒤로 펼쳐진 산의 굴곡, 강줄기가 뻗은 바다까지. 감탄이 나오는 풍경이었다.
또 어느 날은 명동 쪽을 걷다가 골목에서 덴마크 청년을 만나기도 했다. 주위에 일행은 없어 보였는데, 그는 내게 불쑥 메모지를 내밀었다. 무언가 물어보기 위해 내민 건가 싶어 메모지를 살펴보니 그림으로 그린 듯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 말 NO. 덴마크 왔어.’
그날을, 그를 어떻게든 소설 속에 그리고 싶은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메모를 보여준 후 그는 손말을 사용했다. 낫(not)이 아니라 노(no)라고 한 건 장애가 있다는 걸 알려준 거였다.
딸이 어릴 때 가톨릭농아선교회에서 같이 수어를 배운 적이 있었다. 일본의 어느 작은 마을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모두 수어를 배운다고 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식당에 농인이 들어오자 그곳에 있던 손님들이 입으로 하던 대화를 멈추고 수어를 사용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순간 말들이 사라지고 분주한 손놀림들,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다정한 정적이 화면에 가득했다. 감독은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언어를 쓰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추적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오면 나도 손말을 쓰고 싶어서 배운 언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우연히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와 구성도 인물도 고민 없이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밤을 새워 그날의 잔상을 쓰긴 썼는데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읽어보니 그건 소설이라기보단 긴 일기였다. 소설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언제나 첫 문장을 시작하려면 이런 대책 없는 질문이 따라온다. 왜 이 일기는 소설이 아닐까. 아니라고 내가 느끼는 걸까. 있는 걸 그대로 써서 그런가. 쓸 때는 뭔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아 밤을 새워 적어나갔는데, 다음 날 보니 이건 아니라고 덮어버리고 싶은 이게 도대체 뭘까. 소설 쓰는 선배들이 이야기하길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하던데, 이걸 고쳐보면 소설이 될까. 며칠 끙끙거리다 다시 산책에 나섰다.
*
마감일이 다가오니 이제는 정말 소설을 시작해야 하는데, 국회 앞에서 18세 선거권을 요구하며 참정권이 없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달라는 송이의 말이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송이와 길고양이가 만나면 어떤 소설이 나올까. 소설을 구상하는 동안 나는 남산과 명동을 걷는 것으로 쓰기를 대신하며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가난한 대학생들의 밥집이었던 실비집은 사라졌고, 계성초등학교 아래쪽에 있던 라이브 카페였던 ‘섬’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연구관은 애니매이션 관련 건물로 바뀌었다. 본관에서 그곳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골목을 거꾸로 올라갔다. 계단 끝에 있던 ‘언덕집’에는 고양이 모양 센서 등이 달려 있었다. 그 아래로 삼색고양이가 지나가자 불이 켜졌다. 삼색고양이를 따라 골목을 걷는데 길에서 자꾸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르는 사람도 없는데 초인종 소리는 일정하게 계속 울렸다. 소리가 나는 집 앞에 서니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시각장애인의 집’
그제야 소리의 정체를 알았다. 집이 소리를 내어 길을 알려주는구나. 참정권이 없는 송이와 삼색고양이, 소리로 장소를 알려주는 시각장애인의 집이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길이 바뀌지는 않았으나 길변은 바뀌었고, ‘가스등’이나 ‘숭의서점’처럼 오래된 추억의 공간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남산길은 낯선 길이 되어버렸구나. 이제 진짜 글을 쓰자”고 일기장에 적었다.
4월의 눈이 온 어느 날은 아침이 오는 걸 창을 통해 오롯이 맞이했다. 나중에 살 집을 선택하게 된다면 잠자는 방으로 아침이 들어오는 넓은 창이 있으면 좋겠다고 느꼈으니까. 아침이 내 얼굴을 눌렀고 눈을 뜨자 바깥에는 조용히 눈이 오는 풍경이 펼쳐졌다. 4월의 눈이라니. 이 아침은 어디서 온 걸까. 이런 감각은 여행자들이 찾아 나서는, 한곳에 멈추기 싫은, 여행으로만 충족되는 낯선 감각이었다. 그날 일기장에는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든 첫 문장을 써야겠는데 자꾸 화장실만 가게 된다. 나중에는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글을 써야겠다. 왜 글만 쓰려고 하면 오줌이 마려운지 모를 일이야”라고 적혀 있다.
4월 내내 걸어 다녔더니 다리가 아파서 반신욕을 하고 낮에는 소월길을 걸었다. 케이블카를 지나 남산으로 오를까 하다가 힘이 들어서 그냥 길을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회현으로 내려가는 길이었고 오래된 아파트가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봤던 회현시범아파트였다. 구름다리로 연결된 녹색 다리에는 ‘이곳에 빨래를 널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고, 입구에는 의자 두 개가 나와 있었다. 또 한쪽에는 전신거울이 다른 쪽에는 시계가 붙어 있고, 복도는 컴컴한 데다 파이프가 돌출되어 있어서 스산했다. 중앙동 건물 외벽은 금이 쩍쩍 가 있고, 그 옆으로 폐쇄된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네는 앉는 자리가 꼬여서 올라갔고, 평행봉은 녹이 슬었으며, 구름다리 옆으로 미끄럼틀이 두 개 있었다.
예전에 이곳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지금은 50대쯤 되지 않았을까. 건물 뒤쪽으로 가니 소각로가 있었고, 아파트에 덧붙여진 가건물이 있었다. 재밌는 건 가건물에도 대문이 있고 그 앞은 텃밭이었다. 아파트에 딸린 가건물이라니. 서울은 어디든 사람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파트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주차장에 ‘포니2’가 깨끗하게 세차된 채 서 있는 게 보였다. 영화 촬영을 위한 걸까, 아니면 진짜 저게 서울을 돌아다닐까 궁금했다. 경비실 앞 재활용품을 모아놓는 곳에는 누군가 이사하며 버리고 간 액자가 걸려 있었다. 액자에는 이런 단어가 붓글씨로 쓰여 있었다.
‘지금 시작, 정축년 가을’
정축년 가을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시작’이라는 단어는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 소설을 시작하라고.
*
6주는 금방 지나갔다. ‘소설가의 방’에서는 첫 단편집에 들어갈 ‘작가의 말’을 쓴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씁쓸했다. 이제 짐을 싸야지 하다가 도로 앉았다. 짐이랄 것도 없이 몸만 왔으니 몸만 나가면 되는데 몸이 안 가고 싶었다. 노트북을 다시 꺼내 그동안 좋았던 것들을 적어나갔다.
저녁 해 떨어지기 전의 시간이 좋았다. 집이었다면 딱 저녁밥 해야 할 시간인데, 내가 혼자 있다는 걸 가장 잘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오롯이 혼자일 수 있어서 다른 것들을 낯설게 보게 된 것이 특히 좋았다. 세상에 내딛는 첫발을 남산길 바닥에 찍던 아가와 둘둘치킨 냄새에 줄을 서서 야식을 사 가던 여행자들과 골목마다 키스하던 다 다른 사람들. 덴마크에서 왔다던 메모를 보여주던 청년은 언제든 소설로 쓸 거야. 또 뭐가 있었지.
남산 곳곳에 숨어 있던 명동의 리어카들과 언덕에 내리던 저녁들. 새벽길을 걱정 없이 걷는 것도 좋았다. 건물마다 제일 나이 든 분들이 나와 빗자루를 들던 모습. 명동성당은 가지 않았다. 새벽 종소리는 내가 있던 방으로 매일 스며들었으니. 비 오는 새벽 우산 없이 유모차를 미는 여행객에게 우산을 씌워주던 다른 여성의 뒷모습. 여성을 묶어주던 비의 순간들. 남겨두고 싶은 건 사라질까봐 사진 찍던 순간들이었다. 좋은 것들을 열거하다 보니 그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짧은 시간 내가 이곳에서 담아둔 순간들이 너무 많았구나. 그래서 글이 자꾸 흐트러졌던 거였구나.
그날의 일기에는 “프린스호텔에 머무른 6주 동안 눈이 왔고 비가 왔고 우박도 떨어졌다. 벚꽃 떨어지던 길엔 아카시아 향이 난다. 내일이면 집에 간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일기에 적지 않은 순간이 있다. 앞 못 보는 소녀가 삼색고양이를 기다리며 초인종이 울리는 그 집으로 오고 가던 어느 날로부터 풀려나온 이야기. ‘소설가의 방’에서 나가기 하루 전인 그날 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두 번째 소설집인 『고요는 어디 있나요』에 수록될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 집에서는 초인종 소리가 일정하게 계속 울렸다.’
하명희
2009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슬픈 구름』(『나무에게서 온 편지』 개정판), 소설집 『불편한 온도』 『고요는 어디 있나요』 『밤 그네』가 있다. 전태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 백신애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