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에세이_초고를 쓰는 일
2023년 3월.
나는 부푼 꿈을 안고 호텔 프린스에 입주하게 되었다. 호텔 프린스는 명동역 근처에 있었다. 그 복닥거리는 명동에 관광객이 아닌 작가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온몸을 들뜨게 했다. 내가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호텔에서 6주나 먹여주고 재워준다니.
‘소설가의 방’은 호텔 프린스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집필 공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내가 이 호텔에 들어오게 된 것은 구상 중인 소설의 배경이 ‘명동’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10년 차 소설가로 줄곧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다녀와서 소설을 썼다. 내돈내산. 그런데 이번에는 지원을 받아서 온 것이었으니 어떻게든 글을 써야지. 초고는 써서 나가야지. 마음먹으면서 김밥천국에 앉아서 김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내 앞에는 인도에서 온 관광객이 김밥을 먹고 있었고, 그 옆에는 노란 머리의 외국인이 돈가스를 먹고 있었다. 그래, 이게 명동이지. 코로나가 발을 빼고 있던 시절이라 명동에는 적극적으로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호텔로 돌아와서 양치를 하고, 창밖에 있는 다이소 간판을 보았다. 호텔 프린스 옆에는 12층짜리 다이소가 있어서 층마다 관광객들이 쇼핑하는 모습이 보였다. 명동은 옛날에도 외국인들이 몰려왔고, 장사치들은 신나게 장사를 하던 도시였다.
매일 명동을 걸으면서 내 소설 속 주인공이 돼 보기로 했다.
내 소설의 초고는 그냥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에 척척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ChatGPT에게 구조를 짜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현장으로 가서 몸으로 겪어본다. 주인공이 걸었을 길을 걸으며 바람을 얼굴에 맞고, 햇빛을 쏘이고, 그가 봤을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그래서 뭘 쓸 건데?
이쯤에서 궁금할 것 같다.
나는 1947년 명동의 걸인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문제는 내가 걸인이 아니니 걸인의 마음을 모를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소설가는 원래 돈이 없다. 특히 문학 소설을 쓰는 작가는, 만약 원고료로만 먹고살라면 1947년 걸인 못지않았을 것이다.
초고를 쓰기 이전에 이 이야기를 왜 쓰려고 하는지, 그것부터 작가는 찾아내야 한다. 작가가 뭔가를 조사하고 체화한 후 작품으로 3년 정도가 걸린다. 그렇다면 작가는 잠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잡아서 장편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작가의 마음을 잡는 소재를 찾는 것이 먼저이다.
나는 이 소재를 논문을 읽다가 발견했다. 정유선이라는 연구원이 서발턴적 시선으로 ‘한하운 사건’을 다루는 논문이었다. 한하운은 1953년 자신이 시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한하운은 나병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하운 시초』를 재발간하면서, 문화 빨치산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그 논문에는 1947년 한하운이 월남하고 난 후, 명동에서 걸인으로 생활하면서 시를 주고 구걸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 부분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한하운이 구걸을 하던 시기를 다루기로 마음먹었다. 문둥이라 사회에서 버림받았던 자. 미소 냉전이 시작되고, 남과 북이 갈리기 시작하면서 이념의 문제가 나라 전체를 지배하던 시기에 그 모든 것에서 버림받았던 자. 그래서 자유로운 거리 예술가로 살 수 있었던 시간이 그에게 있었던 것. 그것을 그리고 싶었다.
한하운이 한 편의 시를 쓰고 느꼈을 순수한 행복감은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문학 작가는 먹고살기 위해 이 길에 있지 않다. 책이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충만함을 놓지 않기 위해서 이 길에 있다. 지금의 우리는 ‘이념’보다 치열한 A.I란 전자 기술에 의해 ‘문장’으로 구현되던 세상을 잃어가고 있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예술가가 되어버렸다.
나는 초고를 쓰기 위해 『한하운 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한하운 전집’에 있는 ‘한하운 평전’을 읽어보니, 한하운이 명동에서 생활할 때, 명동성당 지하 방공굴에서 머물던 기록이 있었다. 한하운이 머문 시기에 여자처럼 옷을 입고 다니던 동성애 성향의 남자도 같이 있었고, 돌망이라고 불리던 사람도 있었다. 돌망이는 흔한 이름이라 돌망이1,2,3처럼 여럿이었다.
초고를 쓰기 위해 나는 낮에는 명동의 거리를 걸어 다녔고, 저녁에는 『한하운 전집』을 읽었다. 한하운이 북에서 어떻게 살았고,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애인 R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파악했다. 그때 한하운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한하운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가 손수 써놓은 평전과 에세이는 한하운에 관해 소상히 알려준다. 이 경우 잘못하면 한 사람의 전기가 돼버릴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이다. 자료를 충분히 습득하되 그 인물 자체를 재현하기보다 나만의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한하운의 버려진 마음을 알기 위해서 그의 시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그는 영리한 인물이다. 자신의 병 때문에 사회에서 버려졌으나 그 사실을 유용하게 활용한 사람이다. 그는 시인으로 주목받고 나서 국가와 협상을 해서 나병 환자들이 거주할 시설을 만들었다. 구걸에 길들어져 일하지 않던 그들이 할 일을 구상했고 실행했다.
그는 정치에 능했던 사업가였다.
그런 그가 걸인으로 살았던 시절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매일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인공의 마음을 짚어내 기존의 작품 속 그와 전혀 다른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초고에서는 중요한 일이다. 나는 그 인물이 되어서 생각하고 먹고 잠이 들면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한하운과 같이 이야기를 끌고 갈 인물들도 어디선가 버림받은 인물이면 어떨까.
나는 한하운의 평전이나 에세이에 나오지 않는 그의 친구들을 상상해 보았다.
호텔 프린스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나의 소설 속 인물을 만드는 재료가 되어주었다. 호텔 방 앞에는 내 이름 ‘박지음’이 적혀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화장대 앞에 거울과 의자가 있어서 그곳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썼다.
초고 쓰기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초고를 쓰기 위해서 두 번째로 내가 하는 일은 스토리 트리와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일이었다. 스토리 트리를 만든 것은 토지 문학관에 입주해 첫 번째 장편소설 『우주로 간 고래』의 초고를 쓸 때부터였다. 그때 큰 창이 있었는데, 그곳에 포스트잇으로 스토리 트리를 붙였다. 윌리엄 포크너가 했듯이, 전체 서사를 시간 별로, 인물 별로 정리하는 작업이다. 먼저 정리되는 것은 주인공이다. 스토리 트리는 매일 메모와 함께 늘어난다. 정말, 트리처럼 내 키만 한 나무 모양이 된다.
호텔 프린스에서도 이 작업이 시작되었다.
‘명동왕자’의 주인공 한하운의 개인 역사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에세이를 참고하고, 포털의 기록과 대조했다. 그의 기록에는 ‘1947년 8월 나는 원산 형무소를 파옥하고 원산에서 38선 동두천까지 걸었다.’ *라고 월남 시기가 적혀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월남 기록은 1948년이었다. 나는 1947년을 선택했다. 그 시기에 세계적으로 이슈가 될만한 사건들을 메모해서 붙여 둔다. 한하운이 태어난 시기, 다녔던 학교, 만났던 애인 R, 나병의 발병시기 등을 정리한 후 메모해서 그의 트리를 완성한다.
다음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이다. 그는 일본, 중국, 러시아로 공간을 이동하면서 만나는 인물이 달라진다. 명동에서는 대시인 정지용과 이용악을 만난다. 그의 시인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이 모든 정보는 스토리 트리로 정리가 되고, 개인 파일에 저장해 둔다. 이러한 정리가 끝난 다음, 내 소설에서 한하운과 동행할 주요 인물들에 관한 정보도 설정한다.
‘무래’와 ‘돌망’이다.
무래는 『초당』을 쓴 강용흘 작가의 개인사를 참고했다. 강용흘은 1919년 3.1독립운동 후 일본 순사의 괴롭힘을 당한다. 그는 어린 나이에 선교사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옮겨갔다가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공부하게 된 그는 그 시대에 하버드대학에 다닌다. 『대지』를 쓰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과 겨룰 만큼 글을 잘 쓰던, 나라 잃은 강용흘. 그는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에서 요청한 한국 정치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를 잡아서 고문하던 일본 순사가 경찰이 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강용흘은 대한민국은 경찰국가라고 보고했고, 매카시즘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교수도 작가도 할 수 없어서 가난하고 불행하게 살다가 죽는다. 그 시대 이념의 희생양, 불운한 천재였다.
내가 설정한 무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파리와 유럽을 돌아다닌다. 그는 동성애 성향이며 가끔 여성처럼 꾸미고 다닌다. 그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보고, 나치에 의해 홀로코스트에 갇혔다가 연합군에 간신히 구출된다. 그는 미국 군인으로 2차대전에 참전한 후, 전역해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이 세계의 전쟁과 폭력에 혐오감을 느끼고 치마를 입고 걸인이 된다. 그런 그가 명동성당 앞에서 한하운을 처음 만난다.
또 한 명의 설정인 돌망이는 『딕테』를 쓴 차학경과 나혜석을 합쳐 놓은 인물이다. 제1세대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자유로운 성격은 그가 이혼을 당하고 거리로 나오게 되는 이유이다. 차학경의 『딕테』에는 나라를 잃고 독립운동하던 유관순과 프랑스의 여전사 잔 다르크,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서 교사로 일하던 자신의 어머니를 등장시킨다. 차학경은 미국에서 한국계 여자 예술가로 성장했으나 건물 경비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죽게 된다. 영리하고 독립적이고 멋진 페미니스트 여성. 이 모델에서 돌망이는 탄생했다.
나는 이 인물들을 스토리 트리로 만들고 나서, 이들이 잠들었을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거의 매일 명동성당에 갔다. 명동성당 지하 방공호에서 내 인물들을 매일 밤 재우기 위해서였다. 명동 지도는 1960년에 공무원이 손으로 그린 것이 남아 있다. 명동은 1950년 전쟁으로 다 파괴되어 지금의 도시 형태와 다르다. 나는 사라진 도시를 작품 안에 구현해야 한다.
명동에 있던 예술가들의 다방은 한하운이 구걸했을 공간이었다. 나는 그 위치를 파악했다. 명동 전문가가 쓴 책에서 초기의 명동성당 사진을 구했고, 거리의 사진도 찾았다. 명동공원의 초기 모습도 찾은 다음 스토리 트리 옆에 붙여 두었다. 미군 PX는 현재의 YWCA 자리였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기 전까지 추측이 되지 않았다. 명동은 1947년 리틀 아메리카였다.
스토리 트리를 만든 후에 스토리 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연대별로 정리돼 있는 인물사를 골라내고, 소설의 구성에 맞춰 공간을 배열하기 시작했다. 소설의 구성은 중심 사건으로 진행해 가기 위한 단계였다. 나는 커다란 비닐 칠판을 붙여서 목차를 짜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움직였을 동선을 배치했다. 이렇게 즐거운 작업을 할 때는 내가 창작해 내는 세상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고, 매일 설레고 즐겁다. 내가 작가로 사는 것이 고귀하고 벅찬 일이 된다.
주인공을 세울 공간을 현장취재를 통해 구축하기 시작했으니, 그 안에서 인물이 일으킬 중심 사건과 소설의 처음과 끝을 상상하고 써본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이 될까.
가장 감동적인 사건은? 그때 주인공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다음은 트리트먼트 단계로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써본다.
시작부터 중심 사건까지 나열된 사건과 중심 사건에서 끝까지 연결되는 사건을 구성한다.
전체 서사가 한눈에 보인다. 이야기에 생동감을 주기 위해 주인공과 돌망이와 무래가 입었던 옷과 썼던 모자까지 설정한다. 나는 인물들의 얼굴이 상상이 가지 않아서 벽에 하나씩 그려보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1947년 명동의 분위기였다.
명동은 1947년에 미군정청 기간이었고 리틀 아메리카라고 불렸다. 미국의 문물과 군인들이 밀려들었다. 나는 ChatGPT에게 그 시절 유행하던 노래를 물었다. ChatGPT는 재즈와 스윙과 블루스를 알려주었다. 그때 유행하던 곡을 목록으로 알려주자, 그 음악들을 들어보았다. 내 머릿속에서 명동성당의 종이 울리고 전차가 지나간다.
이제 첫 문장을 시작하면 된다.
어렵다. 다시 외롭고 초조해진다.
혼자인 것이 조금 지칠 때, 호텔 프린스에 같이 머물던 소설가 두 분과 을지로 노포 투어를 했다. 우리는 오십 년이나 된 집부터 노가리를 파는 집까지 차례로 돌았다. 그날 새벽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그날 새벽에 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완성되었는지 모른다. 새벽 3시쯤 되자 모든 술집이 문을 닫았고, 우리는 더는 갈 곳 없는 거리의 예술가가 되어버렸다. 그때 두 작가가 춤을 추면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 여기가 진고개야. 우린 락킹을 하고 있어.”
춤을 추면서 걷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시대를 뛰어넘어 1947년에도 자유롭게 이 거리를 춤추고 활보했을 나의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 예술을 하지. 소설을 쓰지. 그 모든 순간을 춤추며 담기 위해.
나의 소설 초고는 그날 밤 완성되었다.
나는 그 시절 명동에 흘렀을 노래, 재즈와 스윙을 들으면서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작가 대부분은 공감할 것이다. 초고를 써놓고 원고를 보며 작가는 외친다.
신이여! 내가 진정 이 소설을 썼단 말입니까?
나는 천재인가? 노벨문학상 준다고 하면 어쩌지? 거절도 못 하는데.
꿈 같은 공상에 젖어 들어 그날 밤은 행복하다. 그러나 다음날 제정신이 들어서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워서 버리고 싶어진다. 절망에 빠지며 내가 그 소설을 쓰기 위해 들인 공로와 시간이 아깝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왜 소설을 쓸 때마다 노안이 되는가.
후회와 자책의 시간이 지나가고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면, 초고를 뒤집어 다시 쓰게 된다. 괜찮다. 현장을 걷고 조사하며 내 몸에 체화된 이야기는 어디 도망 안 가니까.
그런데, 왜 제목이 ‘명동왕자’인가, 명동에 있는 호텔 프린스의 공간을 지원받아 썼기 때문인가? 묻는다면, 그건 내 소설을 다 읽어 보면 알게 될 거라고 답해주겠다.
몇 번의 퇴고 끝에 내 장편소설 『명동왕자』는 완성되었다.
* 한하운, 『한하운 전집』, 문학과지성사, 2010, 525쪽.
박지음(소설가)
현장 취재를 통한 생생한 소설을 쓰고 있으며, A.I 시대의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출간한 책으로는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 『관계의 온도』, 『우주로 간 고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