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소설가] 이치현과 사우너들

소설가의 에세이_나의 미발표작

by ARKOMUNHAK
김경희_배너.jpg


# 영혼을 담은 증기, 사우나

코끝에 닿는 공기가 알싸해질 이맘때, 내가 즐겨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사우나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만성피로를 달고 산다지만, 푹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은데다 수시로 발생하는 군발성 두통으로 일상이 무너진 어느 날, 지인의 손에 이끌려 방문한 한의원에서 내게 이런 처방을 내렸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래요.

체온을 좀 높이면 좋은데… 이를테면 사우나 같은 거라도 하세요.”


쉬어도 통 돌아오지 않는 컨디션과 몸의 붓기, 넉넉한 뱃살은 그렇다 치고 뒷목으로 전해지는 뻐근함과 짙어진 무력감까지… 40대 후반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 건강에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면역력을 끌어올릴 방안이 있다면 뭐든 시작할 수밖에. 그리하여 사십 대 끝자락에 입문한 것이 슬로우 러닝, 그리고 사우나다.


참 희한한 곳이다. 처음엔 몸을 씻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우나는 경험할수록 마음을 씻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유리문을 밀고 사우나에 들어가는 순간, 온몸을 휘감는 하얗고 따뜻한 습기를 마주하면 마음이 녹아내릴 것처럼 기분이 나긋나긋해진다. 핀란드 사람들(사우나를 즐기는)은 목욕할 때 발생하는 그 수증기를 ‘뢰윌뤼’라고 부른다. 이 단어에는 ‘정신, 숨, 영혼’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어쩐지 사우나에 조용히 앉아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공간에 떠다니는 수증기들이 마치 영혼을 담은 증기처럼 느껴진다. 어디 그뿐인가. 수도꼭지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조용히 때를 미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은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지만 때를 밀 때의 사람이란 마음의 속도를 줄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종아리나 허벅지, 혹은 팔꿈치의 때를 벗겨내느라 여념 없는 모습. 그것은 무념무상과 무아지경, 그리고 완전 몰입의 상태다.


사우나인이 된 후 나는 틈나는 대로 이태리타월과 몇 가지 목욕 용품을 챙겨 들고 그곳으로 향한다. 그날도 온탕에 앉아 회심의 미소를 짓던 나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 여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깨에서 등까지 부황 자국이 가득한 그녀는 나처럼 입문자가 아닌 프로의 냄새가 났다. 사우나에선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어쩌다 보니 그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 순간, 오래전 알고 지낸 한 여성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 15년 전, 삼십 대 초반의 나를 사우나의 세계로 이끌었던, 말하자면 사우나의 스승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가끔 이런 농담을 했다. 우린 이치현과 벗님들이 아닌 이치현과 사우너들(Sauners) 이라고. 사우나 예찬을 하다가 왜 갑자기 옛날 가수 이야기로 넘어가는지 이해가 안 되실 거다. 그렇다면 15년 전으로 시간을 리플레이(Replay) 해보자.


# 이치현과 벗님들, 아니 이치현과 사우너들

15년 전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 왔을 때, 그 동네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연식이 제법 된 아파트라 도배 가격이나 알아볼 겸 단지 내 상가에 들렀는데, 작은 인테리어 가게가 눈에 띄었다. 도배나 싱크대 수리 등을 주업으로 하는 소소한 가게였다. 몇 번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기에 나는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 평 남짓한 공간, 여기저기 흩어진 도배지 샘플과 서류 뭉치 사이에 한 중년 여성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녀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에 심취한 상태였다. 굳이 심취라고 표현한 이유는 눈을 반쯤 감은 그녀가 나른하게 몸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십대 중반 언저리의 상당히 준수한 외모. 그녀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잡일이나 하기엔 차림새조차도 지나치게 화려하고 좀 튀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 그녀는 남편이 운영하는 이 가게에 주 3회 정도 출근해서 샘플을 주문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런 지루한 일이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며 푸념을 했다.


“자기랑 맞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난 대화 상대가 필요해.

“아저씨 있잖아요.”

“우리 남편? 그이는 돈 벌어서 모으는 것밖에 몰라.”


하기야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빵 말고 때론 장미도 필요한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 다섯 평 남짓한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도 음악이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멜로디, 그러나 내 취향은 아닌 흘러간 대중가요 같은 것들, 나는 그녀에게 지금 나오는 노래 제목을 물었다. 호기심으로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노래 몰라? 당신만이.”

“당신…만이? 아… 들어본 것 같긴 해요.”

“들어본 것 같다니… 이치현 오빠를 정말 몰라? 이치현과 벗님들!”


이치현, 그가 누구인가? 이치현은 ‘벗님들’이라는 듀오로 데뷔해 활동하다가 후에 ‘이치현과 벗님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꽤 인기를 누렸던 대중가수이자 기타리스트라는 것 정도는 검색만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내게는 너무 거리가 먼 뮤지션이다. 왜냐하면 그가 1978년 〈해변가요제〉에 참가해 인기상을 받으며 데뷔한 해는 내가 태어난 지 고작 일 년밖에 안 된 시기이니까. 그제야 그녀의 나이가 짐작이 갔다.


“그러니까, 가수 이치현의 팬이시라는 거죠?”

“팬이라니? 오빠는 그저 내 인생의 빛이야.”

“빛…이요?”

“오빠 공연은 난 어디라도 전부 따라가거든.”

“아… 오빠… 역시… 아… 그렇구나….”


내가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은 정해져 있다. 가족인 친오빠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태지 오빠뿐. 하지만 친구가 되기로 한 이상, 그녀의 오빠면 나의 오빠도 되는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인테리어 가게에서 자주 만났고 그 오빠가 활동한 시절의 노래를 함께 들었다. 첫 곡은 늘 〈당신만이(1984)〉로 시작했고 마지막은 언제나 〈다 가기 전에(1989)〉로 끝냈다. 하루는 그녀가 내게 사우나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아직 뼛속에 바람 들 나이가 아닌지라 나는 그녀의 제안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나처럼 바쁘게 일하는 사람일수록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기에 사우나만 한 것이 없다며 그녀는 꽤 진지하게 설득했다. 그러면서 진짜 어른이라면 사우나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그녀는 쐐기를 박았다. 며칠 후 나는 진정한 어른들의 세계라는 사우나에 첫발을 내딛었다. 우리는 동네 사우나에서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나가 시골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자연 속 사우나까지,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 사우나 투어를 떠나곤 했다. 하루는 그녀에게 사우나가 왜 좋은지 물었다.


“여기선 무슨 이야기든 다 할 수 있잖아. 모두 알몸이니까.”


역시나 인생의 뜨거운 비밀 같은 건 중년은 되어야 알 수 있는 모양이다. 몸과 마음을 씻는 그 공간에서 그녀는 내게 꽤 많은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이치현의 공연에 가기 위해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외박을 했던 경험과 집안 속사정까지, 그곳에선 뜨거운 비밀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나는 볼 빨개질 리 없는 중년 여성도 볼이 붉어지는 날이 있다는 걸 사우나에서 알았다. 외우(外友)라는 말이 있다. 바깥 외,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친구를 의미하는데, 중년의 한복판에 먼저 도착한 그녀가 내게 그런 친구였다. 가끔 그녀는 이런 농담을 했다.

“우리도 밴드 하나 하자. 이치현과 벗님들이 아니라…

이치현과 사우너들, 어때?”


# 밴드 해체 후 남은 건 (발표할 수 없는) 소설뿐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이치현과 사우너들은 결국 해체 수순을 밟았다. 보컬 듀오 벗님들이 이치현과 벗님들이라는 록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다가 1991년 해체를 맞은 것처럼(이것 역시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렇다고 우리가 절교를 한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만나도 침묵이 잦아졌고 그러다 보니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밴드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그즈음 나는 또래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그녀도 새로운 멤버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이치현과 사우너들의 탈퇴 후 더 이상 사우나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 공간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서른 즈음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뜨거웠다.


그럼에도 가끔 그녀가 떠오를 때가 있다. 이치현에 대해 말할 때 그녀 특유의 표정과 제스처 같은 것들 말이다. 그건 남편 이야기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다. 그녀의 남편이 성실한 개미인 건 사실이다. 다만 베짱이는 개미가 가져다주는 빵 부스러기 외에 다른 것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일종의 허영 같은 것들. 아무리 허영이 알맹이 없는, 혹은 비어있는 영광이라 해도 허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대 빵만 먹고 살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늘 서로를 알아본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한 시놉시스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떠오른 이야기가 ‘이치현과 사우너들’이다. 대강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불행한 결혼 생활로 벼랑 끝에 내몰린 세 명의 (중년) 여성들이 우연히 가까워진다. 그들은 서로의 사정을 털어놓다가 소원을 한가지씩 들어주기로 한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인숙(59)은 며칠 후 목숨을 끊겠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빛이었던 가수 이치현을 만나는 것이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한다. 두 여성은 그게 무슨 소원까지나 되냐면서 그날 밤 바로 짐을 꾸려 떠나자고 제안한다. 마치 집을 나간 노라처럼. 그녀들이 정말 찾고 싶은 건 이치현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일까? 그리고 지긋지긋한 집을 벗어나기만 하면 그들은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소설은 약간의 독립 영화 필이 나는 B급 정서의 소설 정도라고 해두자. 주요 등장인물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1. 민정(44) - 남편의 사업 실패로 감당할 수 없는 카드빚만 잔뜩 짊어졌다.

마흔 중반인데 수중에 천만 원도 없음에 현타가 왔다.


2. 유미(44) - 한때 핸드볼 선수였으나, 공을 내려놓은 지 오래된 전업주부.

점차 심해지는 남편의 집착에 숨이 막힌다.


3. 인숙(59) - 십 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는 왕 짠돌이 남편,

지긋지긋하다 못해 정말이지 죽이고 싶다.

그러나 타인을 죽일 순 없으니… 내가 죽기로 한다.

죽기 전에 인생의 빛이었던 이치현을 만나고 싶다.


늘 모임을 갖는 카페에서 그녀들이 나눈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안 보면 죽을 것 같아서 결혼했는데, 이젠 얼굴만 쳐다봐도 죽을 것 같아.”

“나도 죽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

“말해 뭐 해. 생각으로는 백번도 더 죽였지.”

“죽이고 싶을 만큼 싫을 때 언닌 어떻게 견뎠어요?”

“…이치현”

“집시… 여인의 그 이치현?”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인숙은 자신이 이치현의 광팬이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그는 음악이나 영화 따위가 가장 쓸모없는 거라고 치부하는 무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TV 속 이치현 오빠는 여전히 젊고, 멋진 모습 그대로다. 도망칠 수 없는 현실과 닿을 수 없는 판타지 사이에서 인숙은 절망한다.


“오빠를 만나러 갈 거야. 그러고 난 죽을 거야.”

“아니 우리가 왜 죽어요?

우리를 죽고 싶게 만든 그들이 죽어야죠.”


고백하건대 이 소설을 쓰면서 무척 즐거웠다. 이전의 소설들은 쓰면서 몹시 괴로웠던 터라 나로서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와 내가 더 이상 사우나 동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치현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외에 그녀의 인생은 인숙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인숙이라는 캐릭터가 그녀에게서 영감받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여 이 소설은 미발표작을 모아 놓은 폴더에 넣어두기로 했다.


지리멸렬한 인생, 누구나 판타지가 필요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5년 전 TV 화면에서다. 물론 그녀는 모르고 있겠지만. 몇 년 전 막을 내렸지만, 배철수 아저씨가 진행하는 〈콘서트 7080〉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었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한 채널에서 나는 시선을 고정하고 말았다. 방금 무대에 오른 이치현 가수가 〈당신만이〉라는 곡을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그의 모습을 집중해서 보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그녀가 그토록 극찬할 때는 사실 좋은지도 몰랐던 노래인데 말이다.


눈부신 햇살이 비춰주어도

제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이토록 아름다운 당신만이

나에게 빛이 되는 걸


그때 메인 카메라가 무대가 아닌 객석으로 이동했다. 카메라가 천천히 훑으며 공개홀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의 반응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그녀가 거기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양손을 가슴께로 모으고 나른하게 몸을 흔들며 노래에 심취한 그녀는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황홀해 보였다. 카메라 감독도 그걸 알아챘는지, 수많은 방청객들 사이에서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모니터 화면에 그녀의 얼굴이 가득 찼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당신만이 나에게 빛이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나는 오빠가 가는 곳은 어디든 갈 거야.’


화면이 다시 무대로 바뀌었다. 오늘도 이치현은 끝내 검은색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여전히 젊고 멋이 흘렀으며 빛이 났다. 항간에는 도무지 늙지 않는 그를 두고 흡혈귀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소문이 돌 때도 있었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사랑에 빠질 대상이 필요하다.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하루를 지탱하게 할 판타지가 필요하니까.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 어느 날, 다시 사우나를 찾았다. 한기가 든 몸을 온탕에 담그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사우나에 진심인 핀란드에는 실제로 이런 말이 있다.


‘사우나는 목욕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이다.’


나는 모든 것이 벗겨진 평등한 그곳에서 나를 스쳐간 사람들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이치현과 그녀, 그리고 한때 가깝게 지냈으나 도리 없이 멀어진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는 더 이상 만나지 않지만,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사우나를 마치고 나가면 마음까지 녹여줄 뜨거운 국물 음식을 먹어야겠다. 이를테면 밥을 말거나 국물에 적셔 먹을 수 있는 것들.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맺히고 입안에 군침이 돈다. 사우나는 단순 목욕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이다. 살아보고자 하는, 생의 의지 같은 거.



인용 노래

〈당신만이〉, 이치현, 1984.




김경희_프로필.jpg

김경희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년 동안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고, 틈나는 대로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암컷들〉 〈생선의 종말〉 〈하나뿐인 지구〉 〈이것이 야생이다〉 등 인문과 자연, 환경 다큐멘터리를 다수 선보였다. 펴낸 책으로는 『제주에 살어리랏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공저 『호텔 프린스』 『소설 제주』 『소설 부산』 『소설 목포』, 청소년 소설 『몸스터』 등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채기성 소설가] 영원히 발표되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