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그녀

by 유호현 작가

어린 시절에 손꼽아 기다리던 날은 단연 설날이었다. 물론 세뱃돈 때문이다. 더 수익을 올리고 싶었던 나는 살아있는 할머니에게 세배를 두 번하려다 사촌들에게 제지당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만 원 이하로 받았다. 그리고 그 돈은 고스란히 계모의 지갑으로 들어갔다. 훗날 내 교육비를 위해 저축한다는 명분이었다. 학원 하나 보내주지 않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책 한 권 사준 적 없으면서 무슨 교육 타령일까? 어린 나이에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당연히 본인 용돈으로 쓰겠거니 생각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드디어 아버지는 계모와 이혼했다. 화장대에는 내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가 있었다. 입금된 금액을 보니 내 세뱃돈일 가능성이 높았다. 약 오만 원쯤 되었다. '왜'라는 의문이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았다. 정말 모아주고 있었다니 완전 속은 느낌이었다.

계모는 어린 내 눈에도 굉장히 예뻤다. 그런 대단한 미인이 왜 애 둘 딸린 배불뚝이 이혼남과 결혼을 했을까?

노년의 아버지는 멋진 사람이었지만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돌아보면 그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은 9할이 불쾌한 기억들이다. 하지만 그때도 우리 집은 사람 사는 곳이었다. 어찌 나쁜 일만 있었을까?


나한테 한글을 처음 가르쳐 준 사람은 그녀다. 참 인내심 있게 잘 가르쳐 주었다.

요리 솜씨는 가히 최고였다. 좀 잔인한 말이지만 나한테 엄마의 손맛이란 그녀의 음식 솜씨를 의미한다. 그 볶음밥과 잔치 국수를 능가하는 곳을 찾으려 한때 부지런히도 다녔지만 늘 그리움의 발길을 돌리는데 실패했다.

늘 달리기 꼴찌를 하는 내가 부끄럽다며 아침마다 1킬로미터를 뛰게 했다. 덕분에 만년 꼴찌였던 나는 중학생 무렵 100미터 13초를 찍었다.


최근 보일러가 고장 나서 새것으로 교체했다. 에러코드가 가끔씩 뜨더니 이번에 완전히 고장 난 것이다. 성능이 떨어진 보일러였지만 힘겹게나마 돌아가고 있었다. 추울 때도 있었지만 따뜻할 때가 더 많았다. 우린 10년 사용한 보일러 하나에도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처음 우리가 만났던 날, 그 빵빵하게 돌아가던 때의 온도를 기억하면서 웃으며 보내주었다.


언젠가는 용서할 날이 올 것 같다. 아주 가끔 보고 싶을 때도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버지 과실이 훨씬 더 많았고 그녀는 지금의 나보다 10년 이상 어렸다. 아마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그 화풀이를 나한테 한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처음의 그 따뜻함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지금도 이 정도는 말할 수 있다.


폭싹 속았수다.(제주 방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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