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의 나는 특정 책을 파고드는 경향이 있었다. 열 권으로 된 시리즈를 스무 번, 많게는 서른 번 넘게 읽기도 했다. 그런데 그중 최고는 슬램덩크라 할 수 있으니, 읽은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아내에게 얼른 정대만과 윤대협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신혼 첫날, 호텔 컴퓨터에서 슬램덩크 1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정대만이 등장하는 화까지 기다릴 생각을 하니 안달이 났다. 하지만 2분 만에 서늘한 기분을 느끼며 스스로 껐다. 인간의 생존 본능이란 이리도 절묘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신혼 첫날에 슬램덩크 보여준 남편’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가끔 아내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내 용기를 기린다.
하지만 호시탐탐 아내의 삶에 슬램덩크를 꽂아 넣을 기회를 노렸다. 만화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였기에 어느 순간 나는 포기하고 있었다. 하긴 만화책과 운동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취향은 거의 일치했으니, 크게 답답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슬램덩크를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산왕전에서 체력 방전이 된 정대만의 명대사.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그 불꽃 남자를 소개하려던 나였는데 어찌 포기를 하겠는가? 슬램덩크 극장판을 기점으로 해서 나는 또 아내의 삶에 슬램덩크를 들이밀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엔 아내가 흥미를 나타냈다. 정대만과 윤대협만 좋아하던 내가 책을 더 깊이, 오래 읽으면서 다양한 캐릭터들도 잘 소개했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그대로였지만 소개하는 내가 달라져 있었다. 내 최애 캐릭터가 정대만에서 능남 감독인 유명호로 변하기도 했다.
결국 작년에 슬램덩크 전권을 샀다. 내 바람대로 아내는 인생 최초의 만화책을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박장대소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아내를 보며 얼마나 뿌듯하던지.
생각해 보면 신혼 때부터 아내가 선크림, 핸드크림, 스킨, 로션의 중요함을 알려주었다. 아마 아내에겐 그것들이 정대만과 윤대협이었을 것이다. 30대 시절의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40대 중반이 넘어서야 옆에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이다. 피부가 많이 개선되어 아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개선되었다는 것이지 엄청 좋다는 말은 아니다. 지난주 토요일, 장모님도 ‘유서방은 총각 시절보다 지금이 더 젊네.’라며 셔츠 두 개를 선물로 사 주셨다.
그런데 아내가 마냥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화장품 다 훔쳐 쓴다며 잔소리도 한다.
결국 취향이란 설득이 아니라 숙성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취향이란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 건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