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우유 급식은 하루 중 가장 설레지 않는 시간이었다. 청소 당번이 되면 우유 팩을 치워야 하는데, 가끔 며칠 지난 것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 것들은 대개 부패한 우유가 흘렀다. 얼마나 구역질 나던지. 우유를 받는 순간마다 그 냄새가 떠올랐다.
차기라도 했다면 온도에 기대어 마셨을 것이다. 2교시가 끝난 후 주번이 들고 온 우유는 겨울을 제외하곤 늘 미지근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이유를 제쳐 두고, 흰 우유가 싫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초코 우유가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짝꿍이 한 모금 마시게 해 준 초코 우유의 맛은 신세계였다. 초코 우유는 왜 그렇게 맛있어서 그 시절 내 잠자리까지 뒤척이게 했을까?
왜 모든 우유는 초코가 아닌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맛없는 흰 우유는 사라져 버리라며 두 손 모아 기도한 적도 있었다.
20대 시절, 한 친구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취미도, 성향도 다른 우리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술을 적당히 좋아한다는 점과 한 사람을 유난히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쯤 만나 술을 마시며 그의 뒷담화를 했다. 그는 이기적이고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어서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곤란할 일을 겪곤 했다.
말솜씨가 나쁘지 않았던 우리는 그의 단점을 일주일 동안 발효시켰다가 각자의 입맛에 맞게 조리했다. 플레이팅은 화려하고 신중했다. 그런데 맛은 혀에서만 감돌았다. 죄책감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그래서 다음 만남에는 깊고 건강한 이야기도 하겠다고 마음으로 결심했지만, 대화의 물줄기는 늘 뒷담화로 향해갔다. 달콤한 뒷담화가 우리 우정을 키우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편치 않은 마음으로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본래 우리는 술과 뒷담화를 빼면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뒷담화에서는 단어 선택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는 나이스하지 않았다. 의도치 않은 말실수에 대해 소소한 복수들을 주고받았다. 은은하게 암시하려 했지만 신랄함이 송곳처럼 새어 나왔다. 젊어서 싱싱했던 나는 흉터가 될 말들을 감당하기 싫었다.
우린 결국 멀어졌다. 몇 달을 연락 안 하고 지내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어딘가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마 그 역시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을지도. 이후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모여야만 마주치는 사이가 되었다. 만나자마자 인사를 후딱 해치우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척하며 최대한 멀리 앉았다.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사에 흉터는 짙어갔다.
40대인 지금의 나는 흰 우유를 좋아한다. 그 고소한 풍미를 어린 시절엔 왜 몰랐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이다. 대화 내용도 많이 달라졌다. 도파민을 자극하거나 시간을 때우는 말들은 의식적으로 피하려 애쓰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관찰하는 시선을 가지려 노력했다. 뒷담화를 하지 않고도 즐거운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스리랑카 보석 광부처럼 남의 장점을 캐내려 한다. 칭찬과 격려란 이자를 달고 돌아오는 예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노력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아졌고 40대의 시간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뒷담화의 맛이 완전히 사라졌을까? 어쩌면 뒷담화는 50,60이 넘어서도 별미처럼 느껴질 수 있다. 흰 우유를 더 좋아하게 된 것이지 초코 우유를 아예 안 먹는 것은 아닌 것처럼.
며칠 전, 길에서 그를 우연히 마주쳤다. 20대의 젊음은 지나가고 흰머리 성성한 모습에 흰 우유 같은 대화의 가능성이 내비쳤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밥 한번 먹자는 인사는 접어두고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두 손을 맞잡았다. 뭉클함이 미지근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뭐라 말하고 싶은데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던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 흔한 부모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간단한 말에도 진심만 담으면 된다고 동시에 생각한 듯했다.
이제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행복해라. 건강하고.”
“잘 살아.”
다음에는 남이 아니라 서로를 알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는 바삐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