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이던 1991년, 짜장면과 치토스에 이은 맛의 충격을 또 경험했다. 생크림 빵이었다.
당시 대구 동성로에는 아주 유명한 베이커리가 있었는데 귤과 빨간 체리가 박혀 있는 길쭉한 생크림 빵 하나에 1,500원이었다. 그 빵을 나는 매주 한 번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자주 오던 사촌 지현 누나가 사준 덕분이다.
나는 누나를 코흘리개 시절부터 봐왔기 때문에 외모와 관련해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놀러 오던 친구들이 소문을 많이 냈다. 누나가 키도 크고 늘씬한 미인이라며. 친척들도 입을 모았다. 우리 집안에서 최고로 인물이 좋다고. 유독 나만 누나가 예쁘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만나 본 사람 중에 지현 누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착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영어를 참 좋아하지만, 중학생 때의 나는 아니었다. 당시 단어 시험 점수를 평균 이하로 맞았던 나는 깜지 일명 빽빽이라는 체벌을 받게 되었다. 영어 선생님은 연습장 열 장에 틀린 단어들을 빽빽하게 채워오면 된다며 쉽게 말했지만,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짝은 어깨를 두드려주며 ‘너 오늘 잠은 다 잤다’며 저녁 챙겨 먹고 힘내서 쓰라고 따뜻한 격려를 해주었다. 같이 하는 주제에 말이다. 자신은 필살기가 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루 종일 빽빽이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까? 집에 오자마자 몸이 몸살이라도 난 것처럼 아팠다. 마침 우리 집에 와 있던 지현 누나는 내 얘기를 듣고, 아플 때는 일찍 자야 한다며 자신이 조금 도와준다고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나머지는 나보고 하라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잠든 나는 빽빽이 열 장 체벌을 받은 학생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푹 잤다. 다음 날 오전 6시, 눈을 뜨자 누나가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빽빽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연습장이 아니라 커다란 도화지 한 장을 앞뒤로 빽빽하게 적고 있었다. 글자 크기는 1cm도 되지 않았고 하나하나 정성이 들어 있었다. 그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별보다 더 조밀했다. 뒷부분은 약 70% 채워져 있었다.
처음 빽빽이의 실체를 영접한 나로선 경악했고, 밤을 새운 누나에게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누나는 뒷면은 다 못 채웠지만 이걸 가져가면 절대 맞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 아팠으니 택시 타고 가라며 거금 만 원을 쥐어주고, 아침까지 차려주었다.
학교에 가니 짝은 자신이 해온 빽빽이를 친구들에게 펼쳐 보이고 있었다. 이미 열 장을 채워왔음에도 또 한 장을 자랑삼아 더 하고 있는 녀석에겐 비밀 병기가 있었다. 볼펜심 세 개를 고무줄로 묶어온 것이었다. 형이 알려준 방법이라며 빽빽이의 일인전승이라도 받은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 압도적인 효율에 놀라 내 빽빽이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어 시간이 마침내 다가왔다.
의기양양한 녀석은 무슨 금메달이라도 받으러 가는 것처럼 씩씩하게 나갔다가 선생님에게 싸대기를 맞았다. 어린 노무 자식이 어디서 못된 걸 쳐배워왔냐며.
극도로 긴장한 내가 도화지를 내밀자 선생님의 눈이 커졌다. 그러면서 몇 시간 걸렸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누나가 해줬는데요라고 했다간 싸대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던 나는 밤새도록 했다며 거짓말을 했다. 선생님은 느닷없이 짝에게 싸대기를 날렸던 그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빽빽이는 처음 본다며. 다음 단어 시험을 기대하겠다는 기대 어린 눈빛까지 덤으로 받았다. 그리고 다음 시험도 망친 나는 괘씸죄로 빽빽이 20장을 해와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생님은 내 빽빽이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나는 어느새 빽고로 통했다. 빽빽이 고수의 줄임말이다.
어린 나이에도 누나는, 누나인 티를 꼭 내려했다. 용돈을 자주 주었고 쫄면도 많이 사주었다. 가끔 칭찬과 함께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아늑함이 참 좋았다. 때문인지 지금도 잠이 안 올 때면 아내는 내 니즈를 파악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이제 2026년이다. 누나를 유방암으로 사별한 지 스무 해가 다 되어 간다. 누나가 힘들게 투병할 당시 우리 집도 매우 어려웠다. 내 인생에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는, 그럼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나에게 어떤 힘도 되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다.
생크림 빵집이 있었던 동성로를 가면 누나 생각이 난다. 쫄면을 먹을 때와 새로운 영어 단어를 볼 때와 같은 일상적인 순간에도 생각난다.
그럴 때면 못난 동생은 미안함과 그리움을 듬뿍 담아 어린 누나의 이름을 마음속 빽빽이로 채워 간다.
미완성의 빽빽이는 끝내 채워질 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