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소란 속에 핀 안정감

식지 않는 불판, 가장 다정한 방해꾼

by 아를밤

펜션의 테라스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숯불은 무심히 타오르고, 고기는 지직거리며 익어갔지만 네 아이의 요구는 숯불보다 뜨겁게 사방으로 튀었다.

"아빠! 고기 아직이야? 나 배고파서 현기증 난단 말이야!"

"삼촌! 다은이 언니한테만 왜 더 줘요! 나도 조개 많이 잡았는데!"

일곱 살 막내 도윤이의 아우성에 열 살 다은이의 질투 섞인 투정까지 겹치자 도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집게를 휘둘렀다. 이수는 상을 차리고 소스를 챙기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갯벌에서 호미 하나로 평정했던 그 위엄은 온데간데없었다.

아홉 살 서윤이는 그 와중에도 다연의 옆에 찰싹 붙어 수다를 쏟아냈다. 이수는 그 소란 속에서도 다연을 보았다. 서윤의 말을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듣는 얼굴, 그리고 틈틈이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과 도진을 살피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주변의 공기를 따뜻하게 유지하려는 그 사려 깊은 시선은, 꼭 이수를 닮아 있었다.


아이들의 식사만 겨우 마치고, 이수는 아이들과 테라스에서 들어와, 거실에 영화를 틀어주고 산더미 같은 과자를 풀었다. 이제야 도진과 맥주 한 캔을 따며 숨을 돌릴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 펜션 안은 아이들의 환호성과 영화 속 폭발음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누구는 팝콘으로 장난을 치고, 누구는 소파를 점령하겠다며 몸싸움을 벌였다. 도윤은 세 누나 사이에 솜인형처럼 파묻혀 있었고, 다은은 대장 노릇을 하며 팝콘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테라스로 나선 두 사람. 테라스 테이블 위에는 도진이 끝까지 따뜻하게 구워낸 삼겹살과 소시지, 그리고 시원한 맥주 두 캔이 놓여 있었다. 땀을 닦아낸 도진이 이수를 보며 장난스럽게 맥주 캔을 부딪혔다.

"진짜 전쟁터가 따로 없네. 조개 잡을 때보다 지금이 더 진 빠지는 것 같아."

"그러게. 그래도 애들 잘 노는 거 보니까 배부르다. 자, 일단 한잔하자."


꿀꺽 소리를 내며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찰나, 조용히 열린 베란다 틈으로 익숙하고 뽀얀 얼굴이 쑥 삐져나왔다. 영화에 집중하고 있을 줄 알았던 다연이였다. 다연은 코를 킁킁거리며 자연스럽게 이수와 도진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 삼촌. 뭐해요? 아까 고기 진짜 맛있었는데, 여기 남은 것도 다 삼촌이 구운 거야?"

다연의 입술에는 팝콘 가루가 묻어 있었지만, 눈은 이미 불판 위에 남은 소시지를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

"삼촌은 역시 고기 굽기 천재야!"

칭찬은 달콤했고, 의도는 투명했다.

결국 맥주 안주로 남겨두었던 소시지 한 점이 다연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다연은 오물오물 씹으며 엄마의 팔에 머리를 기댔다. 도진과 이수가 오늘 하루의 깊은 대화를 나누려 할 때마다, 다연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데 엄마, 아까 삼촌이 나 장화 신겨줄 때 진짜 든든했다? 삼촌 손 진짜 커!"

다연은 칭찬을 무기 삼아 두 사람의 틈을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엄마가 행복해 보이는지, 도진 삼촌이 엄마를 소중하게 대하는지, 그 작은 눈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눈앞의 안주 접시는 성실하게 비워나갔다.

다연은 소시지를 오물거리며,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올려다봤다.

이수는 제 옆에 앉아 도진이 건네주는 소시지를 넙죽넙죽 받아먹는 딸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야, 우리 오늘 진지한 대화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아."

"다연이가 우리에게 관심이 많은가봐. 이렇게 맛있게 먹으면서 우리 곁을 지켜주네."

도진이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며 다연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깊고 고요한 고백은 나누지 못했지만, 4월의 밤공기 속에서 두 사람은 느꼈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음과 맥주 안주를 탐내는 다연의 다정한 참견. 그 소란함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세상 그 어떤 침묵보다 더 단단한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에 녹아들어, 펜션의 밤은 조용할 틈 없이 따뜻하게 깊어갔다.

이상하게, 이런 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펜션 안은 어제 직접 잡아 온 조개들이 내뿜는 진한 바다 내음으로 가득 찼다. 도진은 커다란 냄비에 칼국수를 한가득 끓여냈다. 들지도 못할 만큼 가득 잡았던 조개들이 냄비 안에서 뽀얀 국물을 내뿜고 있었다.

"와! 우리가 잡은 조개 진짜 많다! 진짜 맛있어!"

아이들은 제 손으로 직접 잡은 조개를 하나씩 까먹으며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아침 식사를 마쳤다. 짐을 정리하고 펜션을 나서는 길에 사장님이 손을 흔들었다.

"또 놀러 와요, 대가족!"

아이들은 이제 어색해하지 안았다.

헤어지기엔 햇살이 너무 눈부셔, 여섯 사람은 인근 수목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둣빛 생명력이 갯벌의 회색을 대신했고, 아이들은 수목원 산책로를 제각각 뛰어다녔다. 어느덧 서윤이와 다연이는 친자매처럼 팔짱을 꼈고, 도윤이는 다은이 누나의 뒤를 졸졸 따랐다.

이수와 도진은 그 뒤를 천천히 걸으며, 어제 나누지 못한 고요를 잠시 누렸다. 말은 없었지만, 맞닿은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도가 어제의 소란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수목원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차에 올랐을 때, 차 안은 기분 좋은 피로감으로 가득 찼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하나둘 잦아들었고, 이내 고요한 숨소리만이 차 안을 채웠다.

도진은 룸미러를 통해 곤히 잠든 네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 곁에 계속 서 있어도 되는 걸까.' 생각은 잠깐이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수는 그 시선을 느낀 듯 조용히 미소 지었다. 차 안을 채운 이 무거운 평온이, 오래전부터 정해진 자리처럼 느껴졌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아쉬운 듯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차 문이 열리고 짐을 나누어 들며 이제는 진짜 헤어져야 할 시간임을 실감했다.

"오늘 진짜 가기 싫다. 애들도 벌써 정이 많이 들었나 봐."

"그러게. 그래도 우리 금방 또 볼 거잖아. 자기야, 운전하느라 고생 많았어."

도진은 이수의 짐을 아파트 입구까지 옮겨다 주며, 잠이 덜 깬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더 쓰다듬어 주었다. "도윤아, 누나가 다음에 또 놀아줄게!"

"다연이 언니, 집에 가서 전화해도 돼?"

마지막 인사가 주차장에 길게 울려 퍼졌다. 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이수는 다연과 다은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돌아온 집은 어제보다 조금 더 넓게 느껴졌지만, 가슴속엔 갯벌의 짠 내와 수목원의 흙 내음, 그리고 도진이 건네준 온기가 꽉 들어차 있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작된 하루가, 아무 일 없이 잘 흘러갔다. 그리고 그 평범함이, 이상하리만큼 고마웠다. 어쩌면 그들은 이제, 이 평범함을 선택하려 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오는 다정한 참견들이 텅 비어있던 자리를 왁자지껄하게 메운다. 고요한 침묵만이 최선이라 믿었던 날들을 지나, 이제는 함께 부대끼며 만드는 소음 속에서 가장 깊은 안도감을 배운다. 북적이는 공기 속에 가만히 고마운 숨을 섞어본다.

“내가 선택한 평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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