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애매한 자리에서
시간은 어느덧 흐름을 바꾸어 3월의 초입에 닿아 있었다. 창밖의 바람에는 더 이상 날카로운 칼날 대신, 미지근한 흙 내음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겨울 내내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며 단단해진 우리에게, 도진의 부모님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비행기 표는 아빠가 예매 할께. 펜션은 네가 알아보고. 제주 가서 경비 부담은 엄마가 다 한다고 하니까. 이수 씨랑 애기들 둘은 그냥오라고해. 같이 가자.”
도진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한참을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 입에서 먼저 나온 제안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여행은 늘 아버지의 방식이 있었다는 것을. 도진은 조심스럽게 이수에게 말했다.
“자기야, 우리 부모님이 제주도 같이 가자고 하시네. 다연이랑 다은이까지. 괜찮아?”
도진은 내심 기쁘면서도 이수가 느낄 무게를 걱정했다. 하지만 이수의 걱정보다 앞선 것은 설렘이었다. 제주도는 이수가 가장 사랑하는 섬이었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도진과 함께 그 땅을 밟는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이미 비행기 위에 태워 보냈다.
“가자.”
짧은 대답이었지만, 마음은 이미 바다를 향해 있었다.
이수는 자타공인 '대문자 J'였다. 변수에 변수를 계산하며 완벽한 동선을 짜는 그녀였지만, 이번 여행은 결이 달랐다.
그녀의 집에서는 언제나 그랬다. 여행지는 이수가 정했고, 숙소도, 식당도, 동선도 모두 그녀의 선택이었다. 부모님은 늘 “그래, 네가 정한 대로 하자.”라고 말하며 뒤를 따랐다. 계획은 늘 그녀의 것이었고, 어른들은 조용히 그 계획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도진의 부모님은 달랐다. 아버지는 언제나 기준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이수는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감성 카페와 아기자기한 소품샵을 과감히 일정표에서 지워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스스로를 조금 내려놓는 일이 억울하지 않았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어른들이 편안해하실 펜션을 찾고, 동선을 최대한 여유롭게 짰다. 하지만 도진은 알고 있었다. 평생을 깐깐하고 엄격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기준을 맞추는 건, 세상 그 어떤 완벽한 일정표로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둘이 함께 세운 첫 계획을 도진은 아버지께 설명했다. 전화기 너머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만으로도 아버지의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완전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닌 듯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도진 아버지의 짧은 수긍. 도진은 전화를 끊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완벽한 승낙은 아니었지만, 거절도 아니었다.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닌 ‘지켜보겠다’는 무거운 수용. 그래도,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수의 아버지는 늘 “그래, 그렇게 하자.”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계획이 누구의 것이든, 딸의 선택을 먼저 믿어주던 사람.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의 기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이수에게 낯선 종류의 배움이었다. 여행 가방을 싸는 일보다 훨씬 고단한 작업.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조금 내려놓고, 타인의 기호에 맞추어 걷는 과정.
그럼에도 이수는 그것을 도진과 함께라면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행복한 고행’이라 여겼다.
시간은 흘러 여행 당일이 되었다. 주차장에서 마주한 여덟 명의 모습은 그 자체로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아이들은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고, 부모님은 짐을 점검했다. 이수는 잠깐 망설였다.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지, ‘어머님’이 나을지. 아이들 호칭은 어떻게 해야 할지. 수많은 고민 끝에 정했다. 어머니는 어머니로. 아이들은 평소처럼. 꾸며진 모습보다 솔직한 모습이 낫다고 생각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도진의 손이 이수의 손을 잠깐 스쳤다. 말은 없었지만 긴장은 공유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들의 해맑음이 그 긴장의 온도를 낮췄다. 활주로를 차고 오르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보며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도진의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리셨지만 입가에는 아주 미세한 경련 같은 미소가 머물렀다.
제주 공항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건 노란 유채꽃 향기를 머금은 거센 바람이었다. 3월의 제주는 봄이 시작되었다고 속삭이면서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만큼은 여전히 매서웠다.
짧았지만 비행기의 멀미를 해소하기위해 협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모래 위를 뛰어다녔고, 도진의 아버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진의 어머니는 아이들 모자를 바로 씌워주며 뒤를 따랐다.
사실 도진의 부모님은 아들의 지난 상처로 인해 세상과 사람에 대해 깊은 빗장을 걸어 잠근 사람들이었다. 특히 같은 여자인 어머니의 상처는 밖으로 표출될 만큼 날카롭고 깊었다. 자식이 받은 배신은 곧 부모의 배신이었기에, 도진의 어머니는 이번 여행에서 이수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이 섬에 발을 내디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신경도 쓰지 못하는 이수를 보며 어머니의 견고한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비로소 사람답게 환하게 웃는 아들 도진의 얼굴은, 어머니의 모든 경계심을 녹여내기에 충분했다.
그때, 바람에 이수의 외투가 흩날렸다. 도진의 어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외투를 다시 여며주었다.
“바람이 아직 차다. 감기 걸리겠어."
짧은 한마디였다. 그 안에 특별한 감정 표현은 없었다. 하지만 손길은 차갑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없이 바다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완전한 수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한 걸음만큼은 내딛어보기로 했다.
"애들은 내가 챙기면 되니까, 도진이랑 바람 좀 쐬렴."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던 도진이 다가왔다.
아들이 선택한 사람과, 그 사람이 데려온 아이들을 같은 풍경 안에 세워두겠다는 조용한 합의였다. 이수의 가슴속으로 3월의 따스한 햇살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제주는 유채꽃으로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거셌지만 그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도진의 아버지는 여전히 무뚝뚝한 숨소리를 냈지만, 그 숨소리 안에는 이수가 짜온 일정표를 따라 묵묵히 걸어주는 존중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지금, 늦게 만난 만큼 더 깊게, 서로의 계절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3월의 제주에서 맞이한 첫날 밤, 펜션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귤을 까먹는 여덟 명의 그림자가 창문에 비쳤다.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아도, 서로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 애쓰는 그 모습이 이수에게는 그 어떤 제주의 절경보다 눈부셨다.
늦게 도착한 봄이었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찬란한 봄이었다.
나의 색을 고집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타인의 색을 지우지 않는 일입니다.
완벽한 허락을 기다리기보다, 완전하지 않은 수용 앞에서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배웁니다. 누군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나의 결을 조금 낮추어 서로의 바다를 같은 높이로 맞추는 일입니다. 늦게 닿은 마음일수록 더 깊이 스며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