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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mel Nov 23. 2021

5년 만에 100억 달러 가치
노션은 어떻게 탄생했나

노션의 창업 스토리? No, 프로덕트 스토리!

  요즘 핫한 생산성 툴인 노션은 아마도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일 거다. 그리고 내게 있어 이 앱이 개인적으로 더 각별한 이유는 내가 노션의 오랜 유저이기 때문이다(사실 2016년에 처음 출시된 걸 감안하면 초창기 유저는 아니지만 내가 사용할 당시에는 페이스북 커뮤니티도 없었다).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수업 때 노트 필기를 할만한 적당한 툴이 없어 MS워드를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노션에 관한 후기를 보게 되었고 (그때 노션이 무려 2.0 버전이었다) 처음 노션을 사용해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노션에 어떤 점이 특별하냐라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심플하고 예쁜 '디자인'을 꼽을 것이다. 나 역시도 처음 봤을 때 이 심플함과 기능성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으니. 이후 EO에서 주관한 노션의 공동 창업자인 이반 자오(Ivan Zhao)와의 라이브 인터뷰에서 노션과 자오는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디자인에 반영해 테크와 접목시킨다는 철학을 알게 되었다. 나는 리버럴 아츠 컬리지에서 사회학과 더불어 여러 자연 학문을 공부했다.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에 접목했던 융합처럼 리버럴 아츠를 여러 분야에 접목시켜 잠재력을 일깨우는 데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였을까? 노션의 창업 스토리를 들었을 때 내가 믿는 리버럴 아츠의 가능성에 관한 비슷한 맥락에서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한 자오와 노션이라는 브랜드에 더 끌릴 수밖에 없었다.


  PMB 2일 차 과제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덕트'의 라이프 사이클을 분석하라는 주제가 나왔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션을 분석해 보려 한다. 특히 이를 영문으로밖에 공개되지 않은 노션이 성공할 수 있었던, 초창기 노션만의 프로덕트 스토리를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이반 자오가 발견한 기회... (사실은)라고 했던 착각


  노션의 공동 창업자인 이반 자오는 대학교를 다닐 때 노션에 대한 영감을 처음 얻었다. 자오는 인지과학을 전공하며 철학과 컴퓨터에 관해 공부를 했고, 미술과 사진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주변에 예술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자오의 친구들은 코딩을 할 줄 아는 자오에게 점심을 사는 대신 웹사이트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그렇게 웹사이트를 서너 개 만들 때쯤 예술을 하는 창의적인 친구들이니 ‘방법만 알면 스스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기술과 근접하게 일상을 살아가지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웹사이트 같은 자신만의 툴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에 봉착한 자오는 노코드(no-code) 웹사이트 툴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오는 회사를 세우거나 사업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비즈니스는 이를 위해 효과적인 도구였을 뿐이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도구. 


  결국 자오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실리콘 밸리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최소한의 경력을 갖춘 뒤 사이먼 라스트와 노션 개발에 착수한다. 그러나 노션의 초기 모델이 2015년 처음 론칭되었을 무렵 생산성 협업 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였고, 극초기의 노션은 ‘노 코드’의 트렌드 안에서 에어테이블(Airtable)이나 다른 툴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자오가 현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실 그가 매진하고 있던 대상은 '그가 생각하기에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 '세상이 실제로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노션의 초기 모델은 실패로 접어든다.



진짜 문제를 발견하


  자오는 포기하지 않았다. 투자금이 줄어 자금난에 휘말렸고 결국 4명의 팀원을 해고해야 했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실리콘 밸리를 떠나야 했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만두지 않았다. 둘은 일본의 교토로 이사해 부엌 테이블에 앉아 속옷바람으로 개발을 다시 시작했다. 


  자오는 첫 제품으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프로그래밍 개발에 집중했다. 유저는 자신의 주관이나 세계관을 반영할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쓰기에는 부족했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고, 신경 써야 할 문제는 많은데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자오는 실패하면서 깨달았다. 생각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앱을 직접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걸,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새로운 툴을 처음부터 배우기보다 익숙한 특징과 기능을 합친 툴을 사용하길 원한다는 사실을. 


자오가 피그마를 이용해 작업하던 노션 1.0. 출처: Figma


  자오와 라스트는 노션의 오리지널 제품을 만들면서 협업/디자인/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툴인 피그마(Figma)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자오와 라스트는 피그마를 이용해 디자인하고, 코딩하고, 협업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여러 개의 툴에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업무를 해낼 수 있었다. 자오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만약 하나의 툴로 사람들이 일할 때 필요로 하는 모든 걸
실용적으로 해낼 수 있다면 어떨까?



사용자에 대한 극도의 집착이 문제를 해결하다


  자오와 사이먼은 전과 같은 미션을 유지하며 노션 개발에 다시 착수했다. "비 기술자들에게 코드를 쓰지 않고 자기만의 툴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주자." 둘은 사람들이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커스터마이즈 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나 변한 것도 있었다. 단순하게 문제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사용자에 집중하는 것. 두 사람은 개발에서 제품의 디자인을 하나의 원동력 삼아 몰두했다. 그리고 주된 유저 인터페이스의 구성부터 작디작은 디테일까지, 노션이 가지는 모든 외관과 디자인은 극도의 반복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거쳤다. 


  자오는 그중에서도 "순열(permutations)"에 집착했다. 두 사람은 블록의 이동(flow) 하나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며 수정했다. 그리고 이 반복 작업은 제품의 특성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됐다. 일본에서 약 1년 동안의 이러한 노고를 거친 끝에, 자오와 라스트는 제품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렇게 2016년 3월, 노션 1.0이 론칭됐다. 


노션 1.0의 구동 영상. 출처: Product Hunt


  위 노션 1.0의 영상만 봐도 핵심인 심플한 UX가 현재의 노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유튜브 채널 EO와의 인터뷰에서 자오는 노션을 만들 때 직관에 집중했기 때문에 UI의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고 올바른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우리끼리는 보는 것 자체로 끝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익숙해지거나 사용하기 위해 신경 쓸 게 별로 없을" 만큼 극도로 단순하게 만든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사용자의 경험과 편의성에 극도로 집착한 결과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노션을 사용하는 고객에게 집중하고자 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학생이든 상관없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사용했으면 좋겠다.


  자오와 라스트는 프로덕트 헌트에 노션 1.0을 처음 공개했다. 아쉽게도 투자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래 프로덕트 헌트(Product Hunt) 웹사이트에 달린 댓글만 보더라도 초기 유저들의 반응은 굉장히 긍정적이었던 점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집착했던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디자인과 플로우는 생산성 툴 유저들이 그간 불만이었던 부분을 정확히 찌른 셈이다. 많은 댓글에서 노션의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고 말했던 것이 실현이라도 되듯, 이후 2018년에 출시된 노션 2.0은 프로덕트 헌트 2018년 3월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한다. 그리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데이비드 피어스(David Pierce)의 기사에 실리면서 사용자의 유입이 급등하게 되었다. 당시 노션의 팀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면 팬이 커뮤니티를 만든다

  

  이렇게 노션은 이례적으로 성장해 현재 100조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올인원 협업 소프트웨어로 자리 잡았다. 노션은 초반부터 수많은 팬을 확보해 입소문만으로 수백만 명이 매일 사용한다(그중 대다수는 한국인이다). 노션의 프로덕트 스토리를 보면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것을 알 수 있지만 별다른 마케팅 없이 성장했다는 점 또한 이례적이다. 더불어, B2C SaaS(Software as a Service)로 시작해 현재는 B2B 또한 빠른 속도로 점령 중인데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노션의 성장 배경에는 팬의 기여가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노션 팀 - 제품 - 팬(& 앰배세더) - 온라인 커뮤니티(개인) - 온라인 커뮤니티(회사)가 된다. 노션은 B2C(비즈니스 to 고객) 관점에서 심플하지만 세련되고, 동시에 일관된 톤&매너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브랜드를 갖추고 있다. 이것이 노션을 사용하는 개인 유저들을 일차적으로 끌어모은 비결이다. 


  노션 팀은 노션의 유저층, 그중에서도 열성팬을 노션 앰배서더로 임명해 팀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이너 서클(inner circle)"을 구성한다. 이들은 각국의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이름을 기억하고 자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밀하다. 영어권 외부 국가에 거주하는 앰베서더들은 제품의 UX 라이팅 번역을 기꺼이 돕기도 한다. 


  앰배세더들은 이너 서클의 바깥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들은 페이스북부터 시작해 카카오톡, 레딧, 디스코드 등의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에서 노션을 홍보한다. 노션을 활용한 온갖 이용 사례를 개발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커뮤니티에 공유하며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다른 유저들과 문제점에 관해 논의하기도 하고 개선점을 제안하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재밌는 점 한 가지는 노션 팀은 이들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조력자로 커뮤니티 활동에만 기여 한다. 그러면 커뮤니티의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이끌어 간다. 


필자가 속해 있는 노션 디스코드 커뮤니티

  마지막으로, 노션은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바깥의 유저들을 직접 관리한다. 자오는 노션의 고객지원팀이라고 쓰고 커뮤니티 지원팀이라고 읽는 "Community Support" 기능을 통해 노션의 유저들과 직접 대화하면서 피드백을 받는다. 또한 노션에 가입한 유저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노션의 업데이트 소식이나 채용 소식 또는 개선점 수집 같은 유저와의 커뮤니케이션 메일은 자오가 직접 발송한다. 



  이렇게 동시 다발적이고 각각 독립적으로 불어나는 유저들은 어떤 회사의 직원이기도 하고 어느 집단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추가적으로 유입되는 유저들이 노션의 가치를 알게 되는 순간, B2C는 B2B(비즈니스 to 비즈니스)로도 확대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노션의 행보를 두고 "B2C2B" 비즈니스라고도 부른다. 그야말로 찐 팬이 키워주는 셈이다.





참고자료


Nira Blog, "How Notion Is Going After Atlassian and Why It Just Might Win"

Figma, "Design on a deadline: How Notion pulled itself back from the brink of failure"

Relate 블로그, "노션(Notion)이 B2B에서도 커뮤니티를 통해 성장한 방법"

Product Hunt, "Notion 1.0 Web + Mac App"

Youtube EO채널, "20명이 만든 실리콘밸리 1조 기업, 노션 이야기"


*상단 이미지 출처: © N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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