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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Aug 27. 2023

아버지의 손

스누트 5-6월 · 1회 │ 아버지(어머니)의 손이 내 마음에 남긴 것

  스물하나 영식이 손엔 채 지우지 못한 유성 페인트가 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동아극장 아기 간판장이였다. 국민학교 때부터 반에서, 전교에서, 시에서 열리는 사생대회란 대회는 다 휩쓸었던 그의 첫 돈벌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셋방에서 파란 지붕 주택으로, 빨간 벽돌 다세대 빌라를 거쳐 방 세 칸 아파트로, 수 없이 이사하면서도 8남매의 막둥이자 늦둥이 영식이의 종이 상장만은 먼저 챙겼다고 한다. 습자지를 상장 사이사이 끼워 돌돌 말아 넣은 화구통을 무사의 검마냥 가슴 앞에 빗겨 메고.


  서른다섯 영식이 손가락 마디엔 물감 밴 굳은살이 쌓여갔다고 한다. 곤색 토시를 낀 왼팔로 꾹 누른 ㄱ자 쇠자를 따라 루벤스 돈모 4호 붓을 쥔 오른손이 먹잇감을 향해 낙하하는 물총새처럼 스친다. 몇 번의 비행. 쇠자를 걷으니 천 세대 아파트 단지 조감도가 드러난다. 전역 후 서울에서 시작한 건축 디자이너 일. 그의 재능은 금세 소문이 나 종종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더 큰돈을 준다는 고향, 대구에 있는 한 건축회사로 온 지도 벌써 5년. 그 사이 어여쁜 아내도 얻고 과장 승진도 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둘째도 태어났다.


  마흔아홉 영식이 손엔 디스플러스 한 개비가 반쯤 타 들어가고 있었다. 몇 년 전, 그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건축사무소엔 일이 끊이지 않았다. 야근과 일요 근무는 다반사. 그는 성실했다. 그러나 다음 해는 1997년. 건축업계는 줄도산 했고 시대의 파고 속에서 건축 디자이너는 3D MAX니, CAD니 하는 컴퓨터로 도면을 쳐야 했다. 이백만 원을 주고 몇 주를 기다려야 받는 영식의 그림보다 이십만 원이면 며칠 새 뚝딱 전송받는 파일이 더 잘 팔렸다. 그도 노력은 했다. 프로그램을 배우러 가 진땀 빼며 선 두 어 개 긋고 옆을 보면 그의 첫 딸 또래들은 건물 하나를 올리고 창문까지 쳐냈다. 


  닫힌 안방 문 너머로 애 엄마와 둘째의 소리가 들렸다. 그를 닮아 그림을 곧잘 그리던 둘째에게 학교 미술 선생이 예고 입시를 준비해 보자 했단다. 딸애는 시큰둥한 척했지만 애 엄마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아는 체할 수도 없다. 예술로 성공하려면 비싼 레슨도 받고 유학도 가야 할 텐데 우리 형편엔 안돼. 아니면 너 스스로 지원 없이 성공할 만큼 재능있어? 아님 그렇게까지 노력할 수 있을 것 같아? 열네 살 애한테 하는 설득치곤 너무 현실적이다. 애 엄마답다. 


  “그치? 에이, 그냥 공부가 낫지” 


  제 방으로 들어가는 딸의 발소리에 서러움이 뚝뚝 묻어 있다. 초등학교 때 아빠 직업란에 ‘회사원’아닌 ‘건축 디자이너’라 굳이 쓰던 녀석이다.


  일흔 하나. 페인트 냄새도, 물감 조각 흔적도 없는 그저 주름진 빈손이다. 사춘기를 거치며 대화가 없어진 둘째도 서른이 넘어선 다가왔다. 그도 최근 들어 애 엄마와 산책 사진을 뜬금없이 카톡으로 보내곤 한다. 가장 닮았기에 서로를 향한 척력처럼 작용하던 원망과 부채감도 나이 드나 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서야 그가 물려준 것에 감사함을 배운 딸 아이 마음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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