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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Aug 27. 2023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던데

스누트 5-6월 · 2회 │ 지금 가장 좋아하는 신발

  서른여섯 켤레. 핑계 많은 욕심의 무덤이 신발장 층층이 쌓여 있다. 먼저 ‘실용’적 이유의 버켄스탁, 컨버스, 나이키 슈즈가 열둘. ‘생업’이란 명분의 하이힐 일곱과 플랫 슈즈 셋, 그리고 블랙 로퍼 하나. ‘방한’을 빙자한 앵클부츠 다섯과 롱부츠 둘. 마지막으로 ‘기록과 안전’이란 구실의 러닝화 셋과 테니스화, 등산화 각 하나, 심지어 아쿠아슈즈까지. 이 중 자주 신는 건 겨우 두 세 켤레. 나머지는 말 그대로 신발장에 안치되어 있다. 그렇다고 자주 신는 신발이 애정템이냐? 그건 아니다.


  나도 한때 애착 신발이 있었다. 중 2 중간고사 점수가 평균 90점을 넘어 엄마가 사 주셨던 MLB 운동화. 생지 데님 몸통에 베이지색 스웨이드가 앞코와 뒤축, 끈고리와 라이닝을 포인트로 감싸고 코르크 미드솔로 마감한, 당시 나의 H·O·T오빠들이 신을 법한 스타일이었다. 소풍날 그 신을 개시했다. 젖은 흙을 밟을까, 뒤에 선 친구의 걸음에 밟힐까 어찌나 노심초사했는지 어디로 소풍 갔는지는 오리무중이지만 자갈 박힌 시멘트 바닥을 내딛던 걸음은 8K 아이돌 직캠 영상처럼 아직도 오린 듯 선명하다. 그 신발이 유독 편했나? 한정판이었나? 그보단 처음 갖게 된 비싼 브랜드 운동화라는 사실이 집착의 근원이었다.


  “회사용 누드톤 구두 하나 사야겠네.”

  막 올라탄 에스컬레이터 홈에 껴 빠져버린 살구색 구두 굽을 손으로 빼내며 나도 모르게 방백했다. 옆에 있던 동료가 휙 돌아보더니 나더러 의외로 실리형 쇼퍼란다. 하긴, 여름이면 반팔 체크 셔츠를 입거나 네이비 폴로 칼라티에 베이지 슬랙스 콤비를 최선의 멋으로 여기는 남자 동료들 사이에서 월요일엔 핫핑크 코듀로이 팬츠, 화요일엔 코발트블루 벌룬 소매 원피스, 수요일엔 바이커 팬츠에 아빠 양복 같은 재킷을 입고 출근하니 신발도 당연히 요상한 걸 고르리라 지레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신발엔 오히려 철저히 보수적이다. 회사에서 신기 무난한 디자인에 색상은 블랙 혹은 누드, 높이는 최대 7센티미터.


  신발 욕심 그다지 없다고 하면 신발장에 누워있는 서른여섯 켤레가 벌떡 일어나 궐기하겠지만 (특히 지난 12월, 평소 눈여겨보던 브랜드의 샘플 세일에서 쓸어 온 부츠 세 켤레와 패션회사에 다니는 친구네 직원 행사에서 털어 온 두 켤레가 선봉에 설 것이다.) 딱히 수집하는 브랜드도 없고 골라 봤자 기본템이니 신발욕 없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선지 애정템도 없지만.   


  물론 한번씩 고개를 불쑥 내미는 패션 나르시시즘으로 물욕의 파도에 휩쓸리곤 하지만 (작년 12월이 그때였다. 브라운 롱부츠만 있으면 3년 간 묵혀 있던 블루 셔츠와 얼마 전 자라에서 산 로우라이즈 플리츠 미니스커트로 내가 바로 미우미우걸이 될 줄 알았다.) 대체적으론 브랜드나 아이템보다 어떻게 걸치는가를 중요시한다. 가령, 옷은 실밥이며 보풀을 떼고 잘 다려 입고, 신발은 구겨 신지 않는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단정한 걸음걸이 같은 태도까지. 사실 아무리 비싼 신발도 딱 벌어진 어깨와 곧은 척추로 명쾌하게 뻗는 걸음걸이가 아니라면 무슨 수를 써도 세련돼 보일리 없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29CM 앱 좀 그만 끄고 내일도 요가나 가야겠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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