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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Jan 27. 2024

첫 연애

스누트 5-6월 · 4회 │ 내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은 경험에 대하여

  “선배, 자요?” 


  휴대전화 문자 알림 불빛이 자정의 어둠을 밀어내며 막 감긴 눈두덩을 두드렸다. 저녁 내내 그의 미니홈피 대문에 적힌 암호 같은 문장과 어제와 달라진 BGM,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OST 의미 해석으로 골머리 앓던 마음을 겨우 다독인 참이었다. 알림음도 없었는데 잠결에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휴대전화 슬라이드를 밀어 올렸다. 꼼질 뜬 실눈 사이로 130만 화소 싸이언 액정 불빛에 발신자 이름 또렷이 맺혀 있었다. 미니홈피 주인, 그 사람이었다. 기대, 단념, 불안의 미로에서 도피처로 삼았던 잠이 번쩍 달아났다. 몸이 해적 룰렛 인형 마냥 튀어 오르고 이불은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이제 자려고…’하고 쓰려다, ‘이제 자려고 ㅎㅎ 왜?’라 고쳐 썼다가, ‘아니~ 아직 ㅋㅋ 넌 안 자고 뭐해?’라고 보냈다. 흉곽에 차오른 숨을 뱉고는 일어나 형광등 스위치를 켰다. 침대에 다시 눕지도, 걸터앉지도 못한 채 휴대폰만 꼭 쥐고 방 중앙에 망연히 서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선배도 아직 안 잤구나. 내일 뭐해요? 영화 보러 갈래요?”


  올해 3월 두 번째 토요일 밤. 서울 필동에서 인천 송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나는 지금 이 감정의 원본을 찾고 싶었다. 낯설지만 언젠가 분명 느꼈던 기분. 뼈마디가 튀어나올 듯 핸들을 부여잡은 손, 쇄골까지 차올랐다 내려가는 숨. 신호에 걸릴 때마다 보조석에 펼쳐 둔 첨삭지를 흘낏거렸다. 그때 기억이 났다. 스물한 살 그 밤이. 자꾸 의식되던 일 년 후배가 첫 데이트 신청을 했던 그 밤의 마음이.


  필동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글을 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왔지만 뭘 써야 할지 몰랐다. 아니, 뭘 써야 할지는 알았다.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 옆으로 펼쳐 놓을 용기가 안 났다. 내 이야기가 읽힐 만 한 걸까, 이런 표현이 날 오해받게 하지 않을까? 에잇, 몰라! 일단 썼다. 첫 수업은 일주일 뒤 토요일이었다. 매일 내가 써보낸 글을 읽어봤다. 하루는 썩 나쁘지 않았고, 어느 날은 평가가 걱정됐다. 매일의 감정이 목구멍에 철사 뭉치처럼 엉켰다.


  드디어 토요일. 교실 책상엔 행간과 좌우 여백 빽빽이 선생님의 첨삭이 휘몰아치는 학생들의 작문 출력본이 놓여있었다. 첫 수업답게 자기소개를 하고 내 첨삭지를 찾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름 학생. 글을 잘 쓰셔서 어떤 분일지 궁금했어요.”  


  그제야 목젖을 누르던 만감의 알사탕이 꿀떡 넘어갔다. 그저 계속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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