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름 May 26. 2023

11월의 식사

스누트 3-4월 · 2회 │ 사랑을 표현하는 오직 나만의 방법

  집에선 쌀을 잘 안 먹는다. 쌀밥은 온 가족 손때로 거북이 등껍질 마냥 반질반질 에이징 된 아카시아나무 식탁에 차려야 할 것 같아서. 허먼밀러 오마주라는 나의 미드 센츄리 모던 감성 식탁엔 그저 영문 레터링 오발 플레이트에 담은 배달요리의 온도, 에어프라이어로 막 조리한 냉동식품의 질량만이 적절하다. 그리고 반주 한 잔.


  오랜만에 저녁 뉴스를 보며 소파에 백과 코트를 벗어 둔다. 몇 주째 야근이었다. 50미터 수영장 반환벽을 나노의 속도로 터치 후 결승벽을 짚고 올라온 박태환도 이런 기분일까. 지금이라도 적당한 온기가 스민 두툼한 비치타월을 덮어주고 싶다. 빈자의 냉장고에 마늘은 있어 올리브 오일에 볶는다. 마지막에 루콜라 한 줌 올리니 꽤 그럴 듯한 파스타 한 접시가 완성된다. 배달도 조리도 아닌, 요리라니. 내게 다정해진다. 위에서 앞에서, 일반모드로 인물모드로 사진 몇 장 찍었으니, 자! 이제 먹어볼까?


  왼손으로 스토리를 올린다. #혼밥. 오른손으론 파스타를 휙휙 감거나 와인잔의 스템을 만지작대다 입으로 가져간다. 눈은 밥그릇보단 휴대폰이다. 사진만 봐도 레몬즙 한 바퀴 두른 물이 코 끝에 튄다. 화이트 비니거 소스볼 중심으로 얼음 위 손바닥 크기의 하프셀 석화 한 트레이. 액정을 스치는 손끝도 튕겨 낼 듯 탱글탱글 살이 오른 굴찜 한 솥. TV에선 언제 뉴스가 끝났는지, 전골냄비에 살이 꽉 찬 꽃게가 인서트로 잡힌다. 11월. 석화와 꽃게 철이구나.


  어느 해 3월부터 제철음식을 챙겨 먹는다. 대구 집에 갔더니 엄마는 청도에 가자셨다. 한재미나리가 한창이라고. 미나리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계절없이 먹을 건 먹으며 자란 세대라, 풀 하나 때문에 한 시간을 또 가야 하나 싶었다, 기름 쫙 뺀 삼겹살을 한재미나리로 감싸 입에 넣기 전까진. 고기의 잔열이 촉매한 미나리의 온화한 식감과 앙칼진 향에 어질했다. 엄마는 왼손엔 쌈을 든 채, 오른손으론 빈 소주잔을 내밀었다.

  “엄마 아빠 잔 비웠다, 딸~.”

  음식의 절대 덕목이 맛과 영양이라면 제철음식은 그 절정일테다. 연중 한순간, 엄마는 서울에 혼자 있는 딸에게 그 귀한 것을 입에 넣어주고 싶어 했다.


  인스타를 나와 미식가 친구와 카톡을 뒤진다. 찾았다! '통영해물세상'.

  아침이 되자마자 석화와 꽃게를 주문하고 엄마에겐 이번 주말에 꽃게탕 재료만 준비해두라 메시지를 보낸다. 대구 집은 이미 도착한 석화 두 망과 꽃게 한 박스로 부산하다. 아빠는 굴찜 한 다라이를 다리 사이에 두고 한창손질 중이시다.

  “아빠 일흔 다 돼서 적성 찾았어”

  언니는 낡은 교자상 다리를 편다. 엄마는 어서 와 간을 보라신다. 전기밥솥이 시끄럽게 김을 뺀다. 금세 상 중앙에 엄마의 꽃게탕이, 왼쪽엔 내가 싸들고 온 비니거 소스를 곁들인 석화가, 오른쪽엔 아빠가 깐 굴찜과 초장이 차려진다. 그 옆에는 네 개의 밥공기. 제철 밥상이 꿀보다 달큰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일아트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