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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May 26. 2023

네일아트를 하는 이유

스누트 3-4월 · 1회 │ 내 생애 최초의 기억

  “여기 그런 거 없다.”


  불 꺼진 외할머니 방이었다. 외할머니는 내 발밑에 가로누워 계셨다. “에엥”, 내가 칭얼거리자 할머니의 엄한 꾸중이 돌아왔다. 옆에 누워 있던 막내 이모가 나를 끌어안아줬다. 여기 그게 없다는 것도 서러운데 할머니까지 무서워 이모 품에 파묻혔다. 눈물이 흘렀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막내 이모가 놀러 온 날이었다. 엄마와 이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날이 떠올라 

  “아 맞다, 이모. 그날이 언제야? 엄마는 그때 왜 없었지?” 

  나는 그날 ‘내가 본 것’을 설명했다. 이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메, 야 봐라. 니 젖 뗄라꼬 외갓집에 데려가 잔 날이잖아. 그걸 기억한다꼬?”


  나도 믿지 못하겠다. 줄리언 반스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말하지 않았나.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뭐, 역사랄 것까진 아니지만. 어쩌면 언젠가 이모가 스치듯 했던 이야기에 내가 쏙 들어가 기억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증인이 한 사람뿐이라는 점이 신뢰이자 불신의 함정이지만. 어쨌든 그날의 충격이 꽤 컸다는 건 확실하다. 오롯이 새긴 기억이든, 새로 기운 이야기든 내게 장면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갓난쟁이에게 엄마 젖 없는 낯선 곳에서의 밤만큼 공포스러운 시간이 있을까. 연년생에 준 우량아로 태어난 둘째(나)까지 모유 수유를 하느라 젖몸살이 심했던 엄마에겐 어쩔 수 없는 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젖을 딱 끊었다고 한다. 거 봐라. 정말 충격과 공포였다니까.


  대신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도 손톱을 물어뜯는다. 젤 네일이 갑옷처럼 지켜줘서 망정이지 생각에 잠겨있다 보면 어느새 손톱이 입에 가 있다. 애인과 손도 잡고 거래처와 명함도 주고받는 어른이 돼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한 살 즈음의 구강기를 급제동당한 탓에 아직도 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건가. 최초의 기억이 삼십 N년 넘게 숙주의 습관에 배여 매달 새는 네일숍 비용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다니, 다만 놀랍다. 아니 어쩌면 그 불분명한 기억의 밤에 못난 습관의 핑계를 대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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