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맛집 코 란타

인디언 바에서 마시는 맥주는 덤

by 박희


- 꼬란타요?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섬인가봐요?

- 한번 가보세요. 란타의 일몰과 사랑에 빠지면 아마 떠나기 힘들테니까.


더위를 피해 찾아든 끄라비타운의 쇼핑몰에서 우연히 만난 영국인 S가 웃으며 말했다. 꼬 란타라니..꼬 피피 꼬 사무이 꼬 팡안 꼬 리뻬...내가 가진 태국 남부의 유명한 섬들 목록에는 없던 곳이라 일단 호기심이 동했다. S는 꼬 란타에서 한달 가량을 머물렀는데 떠나와서도 자신에겐 가장 그리운 장소가 되었다고했다. 그말을 하는 S의 눈빛에는 당장에라도 란타섬에 가야할것처럼 진한 그리움이 깃들여 있었다. 슬슬 끄라비의 일상이 지루해지고 있던 차라 며칠 뒤 바로 란타로 가기로 했다. 일정을 정해두지 않은 여행의 자유로움이라니!


그러나 란타로 가는길은 쉽지 않았다. 태국의 다른 섬들과 달리 란타는 계속 차로만 이동해야해서 몇시간을 좁은 밴안에 갇혀있어야 했다. 본토와 란타 섬을 있는 훼리에서는 내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야 해서 답답함을 이로 말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 훼리에서 내려서는 교통사고로 차가 정체되는 바람에 아침 나절 끄라비를 출발한 밴이 란타 섬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늬엿늬였 기울어 있었다.


아..그 유명한 일몰을 못보다니


실망한 마음에 본 란타의 거리풍경은 또 어찌나 스산한지. 차도 없고 가게도 없고 사람도 없고 이 깡시골에 뭐하러 왔나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기어올라왔다.


그러나.... 태국의 바다는 다음날 아침에 보라고 누가 그랬던가. 새소리에 잠이 깨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바다를 보니 지난 밤 란타에 옹절했던 마음에 절로 미안해졌다. 태국 남부 바다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있겠냐마는 꼬 란타는 시골 바다가 가지고 있는 수수함과 한적함이 있었다.




조용히 밀려왔다 사라져가 가는 파도를 보니 간밤의 피곤함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것 같았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편의시설이 낙후되긴했지만 독일인 주인이 직접 구워주는 맛있는 빵집도 있고 저렴한 식당들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란타섬의 백미는 해질녘이다. 란타의 일몰은 다른 어느 바다의 일몰보다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일 일몰 시간이 되면 바다가 보이는 인디언바에 앉아 일몰을 기다렸다. 푸르던 바다는 붉은 염료를 부은듯 천천히 물들어갔다. 오늘의 일몰이 어제의 일몰과 다르고 내일의 일몰은 어떨지 궁금한 마음에 며칠만 있어야지 하던 마음은 점점 오늘하루만 더로 바뀌어 갔다.


온전한 휴식.

란타가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주는 선물같았다.


하루는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비치에 가보자는 생각으로 걸음을 나섰다. 숙소앞 바다만 보고 란타섬의 사이즈를 얕본 것이 실수였을까 란타는 생각보다 매우 매우 큰 섬이었다. 해변이 아름답다고 해서 걸어간 klong nin beach는 가도가도 보이지 않았다. 란타에서는 꼭꼭 오토바이를 타야한다. 대중교통이 없는터라 뚝뚝이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 가격이 오마이갓이다. 다시 한번 태국 섬여행에서는 오토바이 필수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도착한 klong nin beach에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오늘 운이 지지리도 없구나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내리던 비가 뚝 그치더니 선명한 무지개가 나타났다. 기다렸다는 듯 해변 카페에서 밥말리의 노래 No woman no cry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비록 옷은 흠뻑 젖었지만 란타의 밀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어쩔 수 없이 뚝뚝이를 탔다. 잠깐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뚝뚝이 운전사는 용인대학 체육관이라는 한국말이 쓰여진 조끼를 입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비싼 뚝뚝이 값을 부르며 바가지를 씌우려 했던 터라 할아버지가 그리 곱게 보이지 않은 차였다. 거센 비바람을 뚫고 달리는 뚝뚝이 사이로 할아버지가 시야확보를 위해 뚫어놓은 조그마한 비닐 구멍이 보였다. 그 작은 구멍사이로 들어치는 비바람에 할아버지 옷이 흠뻑 젖어갔다. 뚝뚝이 값이 너무 비싸 얄미웠던 할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곳은 태국이고 란타섬이고 나는 엄연히 여행객이다. 조금 비싸더라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룰에 따라야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삶이니까. 란타가 내개 준 행복에 비하면 까짓 바가지 쯤이야 쿨하게 지불해도 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