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꺼두기

마음에도 휴식이 필요하니까

by 박희

며칠 전 함박눈이 내렸다.

일기예보에 이미 예고된 눈이었다.

눈은 꽤 많이 내려 순식간에 온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밖에 나갈 약속이 있던 차라 내린 눈이 아름답게 보이기 보다

눈을 뚫고 어떻게 약속 장소로 갈 것이냐가 머리속을 어지럽혔다.

차를 가져갈 것인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가

약속 장소는 차로 가면 10분, 버스를 타면 40분 이상은 걸리는 거리였다.

아이러니한 건 걸어가도 40분 거리가는 거다.

선택지에 차냐 버스냐만 두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걸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출발하기로 했다.

최대한 따뜻한 옷을 챙겨 입고 방한 부츠까지 신고 집을 나섰다.

방금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걸려 순백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걷기로 하길 잘했다고 셀프 칭찬을 날리는데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서 띠링 문자가 왔다.

갑자기 몸이 아파서 약속을 못지키겠다는 문자였다.

아직 출발 안했지? 라고 묻는 문자가 어쩐지 얄미웠다.

출발했다고 말할까 어쩔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동네 놀이터에서 눈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꼬마들이 보였다.

형제인듯 보이는 남자얘들 둘이 눈을 손으로 이리저리 뭉치더니 벽돌 찍듯이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낸다.

눈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조그마한 눈덩이의 정체가 궁금해져 꼬마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 중 한명이 다가오더니


" 한 마리 줄까요?" 한다.


꼬마가 내민 손에는 눈으로 만든 예쁜 오리가 놓여 있었다.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오리를 받고 고맙다고 하자

꼬마는 뭘요 하고는 쿨하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눈오리 만들기에 열중했다.

동생처럼 보이는 아이와 만든 눈오리들이 점점 수가 늘어 줄을 서서 꽥꽥거리고 있었다.


눈오리 생각에 잠시 전에 온 문자를 잊어버린 것이 생각났다.

어쩐지 얄미워졌던 사람도 그럴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 괜찮다며 몸조리 잘하라는 문자를 보내고 왔던 길을 다시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인간관계에 그리 똑똑한 편이 아니다.

다혈질에 충동적이고 욱하는 성질까지 있다. 손해 보는 것 부당하게 대우 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마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

잠시 마음의 스위치를 꺼두고 한번 더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상황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마음의 페이지를 넘기면 새로운 마음의 페이지가 시작되는 걸 아는 사람들 말이다.


눈오리 한마리를 손 위에 올리고 돌아오는 길

풍경이 유난히 아름다운 건 마음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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