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남긴 채

by 만나는 주머니

민찬의 할머니 김애기 여사는 세신사였다. 사람들은 흔히 세신사가 돈벌이로 영 마땅치 않은 직업이라고 착각하기 일쑤였고 김 여사는 사람들의 착각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김 여사는 알부자였다. 알부자 중의 알부자였다. 10대 때 포항의 동네 목욕탕인 장수탕 카운터 직원으로 용돈벌이하다가 갑작스러운 세신사의 부재로 긴급 투입된 것이 김 여사의 세신사 역사 시작이었다. 당시 장수탕의 지박령이라고 불렸던 세신사 70대 임 할머니는 어느 벚꽃이 만발한 봄날 벚꽃 잎을 밟고 미끄러져 허리를 심하게 다쳐 죽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김 여사는 시간이 흐른 후, 김 여사가 세신 일을 시작하게 된 그 찬란한 봄날, 얼음판도 아니고 벚꽃 잎 위에서 넘어진 임 할머니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생각했다. 그때, 임 할머니는 넘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에 떠밀린 것이 분명하다고. 바로 그 손길은 애기라고 이름을 지어놓고 부모 노릇은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각자 살겠다고 떠나 각자의 이유로 죽어버린 부모가 자신을 위해 유일하게 해 준 일이 분명하다고.

김 여사는 어렸지만 어리숙하지 않았다. 눈치는 백 단이었다. 개미가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변화보다 더 미세한 손님들의 표정 변화도 놓치는 법이 없었다. 고객들이 시원해하는 곳은 압을 아주 조금 더 강하게 올리며 리드미컬하게 팍 파박 팍 파박, 아파하는 곳은 압을 내리고 미끄럽고도 부드럽게 사아알 사아알. 부끄러움이 많은 초짜 고객은 은근하면서도 멋들어지게 리드하고, 세신 꽤나 받아본 선수들에게는 온갖 화려한 기술들을 퍼부으며 정신을 쏙 빼놨다. 장수탕엔 목욕을 하러 오는 손님보다 세신을 받으러 오는 손님이 더 많아졌다. 김 여사는 장수탕 최초로 계약서를 쓰는 직원이 되었고 계약서의 임금 지불 규정은 월급제가 아니라 수당제, 세금 떼지 않고 현금으로 당일 지급, 지급 비율은 7 대 3이었다. 물론 7은 김 여사의 것이었다. 김 여사는 이제 프로였다.

김 여사가 30대에 접어들 무렵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 귀인을 만나게 되었다. 포항으로 지방 촬영을 온 영화배우 홍영애였다. 홍영애는 평소 백옥 같은 피부를 자랑하며 산소 같은 여자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피부의 비결은 다름 아닌 사우나였다. 장기간 지방 촬영으로 사우나를 하지 못해 몸이 찌뿌둥하던 홍영애는 촬영지 근처 사우나를 찾다가 장수탕을 발견하고 뜨끈한 물에 몸이나 잠깐 담그려 들어갔던 탕에서 김 여사를 만나게 됐다. 김 여사는 세신 베드에 물을 끼얹다가 산소 같은 여자이자 대 배우인 홍영애가 탕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봤다. 홍영애와 김 여사는 눈이 마주쳤다. 김 여사는 깔끔하고 트렌디한 검은색 속옷을 위아래 맞춰 입고 있었고 홍영애는 맨몸이었다. 백옥은 백옥이었다. 김 여사는 홍영애를 보고 우아하게 싱긋 웃어주었다. 김 여사는 프로였다.

홍영애는 목포에 머무는 삼 주 동안 장수탕에 여섯 번 방문했다. 김 여사의 손길은 거침없으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함과 동시에 묘하게 우아했다. 세신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치료를 받는 느낌도 들었다. 홍영애는 목포 촬영을 끝내고 돌아가는 날 장수탕에 들러 김 여사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종이에 적어주며 말했다. 자신과 함께 서울로 가지 않겠냐고. 한 달 후, 김 여사는 10년간의 장수탕 생활을 정리하고 홍영애가 살고 있는 서울 강남의 가장 좋은 Z 아파트 단지 내 사우나로 이직했다.

김 여사는 프로였다. 본인의 몸값을 올리는데 시간, 돈 그리고 노력을 투자하는 데 아끼지 않았다. 유명한 마사지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다양한 손기술들을 배웠다. 스포츠 마사지, 아로마 테라피, 지압, 경락, 바디 슬리밍에 디톡스 마사지까지. 김 여사는 강남 Z 아파트의 각종 여사들을 줄 세우는 사람이 되었다. 한 시간에 삼만 원이던 몸값이 오만 원으로, 십만 원으로, 십오만 원으로 올라도 예약이 늘 가득 찼다. 김 여사를 데리고 온 홍영애마저도 원하는 시간에 예약하기가 어려웠다. Z 아파트 집값을 올리는데 김 여사가 일부 일조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지경이었다.

김 여사는 연애나 결혼, 사랑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감정과 시간 낭비를 유발하는 불필요한 선택으로 자신처럼 합리적인 인간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사치였다. 하지만 김 여사는 늘 아이가 갖고 싶었다. 가족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되어보고 싶었다. 고아나 진배없이 자란 김 여사는 늘 부모와 자식 간의 허무맹랑함이 궁금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나오는 수많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허무맹랑한 사랑, 하다못해 동물 프로그램 속의 개도 원숭이도 갖고 있는 그 깊고 깊은 사랑, 그 사랑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만약 정말 존재하는 것이라면 김 여사 자신이 받지 못했던 그 사랑까지 다해 자식에게 주고 싶었다.

김 여사는 홍영애의 매니저 강필수를 목표로 잡고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적당히 안면이 있으면서도 적당히 김 여사에게 관심이 있지만 한번 이혼한 경험이 죄가 돼 선뜻 다가오지는 못하는, 착하고 어수룩하고, 귀 얇고, 배짱 없고, 욕심 없고, 용기 없는 강필수. 강필수가 딱이었다. 김 여사는 홍영애가 매니저 없이 보름 동안 해외로 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작전 실행에 돌입하기로 했다. 김 여사는 작전 실행 전에 목욕탕에서 타인이 아닌 자신 몸의 때를 정갈하게 밀고 장미향이 나는 코오롱을 발랐다. 실로 몇 년 만이었다. 그리고는 강필수에게 전화를 걸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여름이었고 모시 소재의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다. 방금 밀어 보송보송한 살결이 살며시 맞닿으며 기분 좋은 향기를 가까운 거리에서 풍길 수 있는 장소로 영화관이 최고였다. 둘은 영화관에서 가장 인기 없는 영화를 보며 손에 깍지를 끼었다. 낀 깍지를 풀지 않고 영화관에서 나와 산책을 했다. 산책길의 끝에는 김 여사가 살고 있는 빌라가 있었다. 김 여사는 손깍지를 풀고 강필수의 앞으로 가 강필수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라면, 먹을래요?”

그렇다. 김 여사는 프로였다.

김 여사는 딸을 가졌다. 강필수는 영문도 모른 채 이별을 통보받았다. 김 여사는 Z 아파트의 사우나를 그만두고 서울 외곽에 새로 오픈하는 4성급 비즈니스호텔 사우나에 새로 취직을 했다. 출산 전에 3일을 쉬고 출산 후에 3주를 쉬었다. 출산 전 3일은 딸의 이름을 짓는 데 몰두했지만 실패했다. 효리, 한결, 바다, 혜교, 연서, 지율 등 세상에는 예쁜 이름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17시간의 진통 끝에 딸을 처음 안아본 순간, 김 여사는 알게 되었다. 딸의 이름이 무엇이어야만 하는지. 그 단어 외의 다른 이름으로 딸을 부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김 여사의 딸 이름은 ‘사랑’. ‘김사랑’이었다.

사랑을 만나며 완벽하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김 여사가 주고자 했던 사랑을 오히려 김 여사가 사랑에게 더 많이 받았다. 허무맹랑한 사랑은 존재하는 것이었다. 김 여사는 사랑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이미 손맛 장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김 여사는 대한민국 3대 세신사로 티브이 프로그램에도 소개됐다. 고통 없이 묵은 때를 벗겨주며 몸매 관리에 심신 테라피까지 가능한 세신계의 사기캐. 김 여사는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때밀이 해서 포르셰 사고, 폐지 주워 건물주 되고, 편의점 알바로 이건희 되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라는 말은 김 여사에게만은 조롱이 아닌 실현 가능한 선택의 영역이었지만 김 여사는 포르셰를 사지 않았다. 사랑이의 교육에 쏟았다.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사립학교를 보내고, 예비 의대생들의 필수 코스라는 황소 학원에 보내고, 외국어 고등학교를 보내고, 옥스퍼드 대학교를 보내는 데 썼다.

사랑은 아름다웠다. 사랑은 빛이 났으며, 온유했으며, 다정했다. 그것이 김 여사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란 것이 문제였을까. 사랑이 학교 졸업 시험 준비로 바빠 1년 가까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서 김 여사는 돌아오는 가을에 사랑을 만나러 영국으로 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사랑이 매일 사진 찍어 보내주던 학교 캠퍼스를 실제로 걸을 생각에 신이 났다. 여행이 얼마 남지 않은 휴일, 해리포터 영화를 꼭 보고 와야 한다는 사랑의 주문이 있어서 며칠 동안 해리포터 시리즈를 정주행 하고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 속의 남자가 ‘민찬 초이’의 보호자가 되시느냐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하고 끊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김 여사는 수화기를 거칠게 집어 들고 내 딸은 김사랑이며 민찬 뭐시기가 아니라고 답하고 끊으려는 순간, 남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김사랑 씨는 민찬 초이의 엄마이며 며칠 전 사망했다고.

사유는 실족사였다. 이슬 내린 새벽녘 학교 근처 호숫가를 걷다가 젖은 고사리 밭을 밟고 미끄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물기를 머금은 고사리 잎은 ‘아주 아주’ 미끄러워서 잘못 밟으면 넘어지기 십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고사리를 밟고 미끄러져 죽었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라는 말을 뱉긴 했지만 김 여사는 알고 있었다. 살다 보면 그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만다는 사실을. 그 일이 누구한테 일어나는가, 그것이 핵심이란 것을. 삶은 심지가 타고 있는 폭탄을 돌리고 돌리며 부디 내 차례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의 연속임을. 다른 사람 차례에 터지는 폭탄에 쯧쯧쯧 혀를 차며 순간의 진심을 다해 가여워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전부임을.

김 애기 여사의 애기이자 사랑이었던 사랑은 한 여름밤의 꿈처럼 그렇게 가버렸다. 자신의 또 다른 사랑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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