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해산! 오늘 야간 훈련은 없다

by 만나는 주머니

“스트라이크! 타자 아웃!”

경기는 6회 초반을 지나고 있었고 풍향 고등학교는 광남 고등학교를 7대 1의 점수로 앞선 상태에서 공격을 마무리했다. 민찬은 심판의 카운트 소리를 듣고 가볍게 뛰어서 마운드를 내려가 더그아웃 앞에서 수비 선수들을 기다렸다.

“최민찬 오늘 공 뭐냐. 미쳤네.”

“야, 난 무슨 공이 자연산 활어회인 줄. 겁나 신선해.”

“이덕화 선생님도 울고 가시지 울고 가셔.”

민찬은 선수들과 차례대로 하이 파이브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키가 작은 이루수 호철이 다가오자 하이 파이브를 하던 오른손을 높이 뻗었다. 호철은 있는 힘껏 점프하는 시늉과 함께 민찬의 손에 자신의 손을 부딪쳤다.

“나이스 수비.”

민찬은 장난스럽게 힘을 줘 부릅뜬 눈으로 호철을 바라봤다. 호철은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는 척하다가 손가락을 빼내 민찬을 향해 브이 자를 그려 보였다. 민찬은 살짝 웃으며 호철의 왼편에서 호철의 오른쪽 어깨를 감싸며 걸었다.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키의 민찬과 본인이 주정하기로 170센티미터의 키인 호철이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걷는 모양은 균형 잡혀 보이지는 않지만 있는 그대로 애틋한 느낌이 들었다.

민찬은 더그아웃 입구에 놓여있는 아이스박스의 주황색 뚜껑을 열고 글러브를 왼쪽 겨드랑이에 낀 후 음료 두 개를 꺼내고는 나무 벤치 끝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포수 영은의 옆에 앉았다.

“마지막에 좀 빠졌지?”

민찬이 음료 두 개를 영은 앞에 내밀며 물었다.

“프레이밍이 죽인 거지.”

영은이 파란색과 노란색의 이온 음료 중 파란색을 골라 뚜껑을 열며 말했다.

“나이스 파란 피.”

민찬이 노란색 이온 음료의 뚜껑을 열었다. 더그아웃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하늘빛이 겨울답게 맑고 파랬다. 전광판 한가운데의 태극기는 바람이 불지 않아 힘을 빼고 한가롭게 늘어져 있었다. 연습 경기라 대부분 비어 있는 관중석을 바라보며 민찬은 무언가를 찾는 듯 좌우를 둘러봤다.

“왜? 엄마 찾아?”

“무슨. 연습 게임인데도 관중이 좀 있구나 싶어서.”

민찬은 고개를 멈추고 음료를 마셨다.

“엄마 찾으면서 뭘. 어디 계시겠지. 안 오신 적은 없잖아. 오셔서 특별히 하시는 일은 없지만.”

영은이 장난스레 웃으며 벤치에서 일어나 좌석을 훑다가 민찬을 돌아봤다.

“저기 계시네, 풀밭 위의 무당벌레 스타일. 화장실 다녀오시나 보다. 맥주 또 엄청나게 드셨나 보네.”

민찬은 영은을 바라보며 고개를 왼쪽 옆으로 까딱였다. 그리고 3루 쪽에만 마련된 아담한 관중석 출입구로 진한 초록색 의자와 대비되는 새빨간 소매의 검은색 유광점퍼를 입은 남자가 걸어 들어와 자연스럽게 두 번째 줄에 앉는 모습을 확인했다. 남성의 까무잡잡하고 거친 손에 들려있는 불투명한 하얀색 비닐봉지 속엔 아마도 구겨진 맥주 캔 두 개와 아직 비워지지 않은 맥주 캔 두 개가 들어있을 것이었다. 남자의 눈은 검은 레이밴 선글라스에 가려져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곧이어 공수가 바뀌며 심판의 경기 재개 신호가 났고, 영은은 벤치 옆에 세워둔 배트를 들고 연습 타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관중석 남자의 맥주 캔 뚜껑은 따져 있었다. 해는 중천을 지나 서쪽을 향해 있었지만 저물기에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아 보였다.

경기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 유니폼 위에 회색 후드티를 덧입고 더그아웃을 정리하는 야구부원들의 동작에 무거움이 없었다. 유니폼 하의에 흙이 잔뜩 묻어있었지만, 흙이 묻어있지 않은 채 끝나는 경기는 이겨도 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더그아웃 멀리서 경쾌하게 뛰는 발소리와 함께 방울이 달랑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두 소리는 한데 잘 어울려 완벽하게 하나의 소리처럼 들렸다. 소리가 더그아웃에 점점 가까워졌다. 입구를 등지고 야구공을 바구니에 넣고 있던 민찬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지막 야구공 두 개를 오른손으로 들어 올리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하늘이 왔나 보네.”

“빙고. 하늘님이 오늘은 늦게 오셨구먼.”

영은이 더그아웃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짧은 단발머리에 유난히 검은 눈동자를 가진 하늘이 야구공 모양 방울이 달린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힘껏 더그아웃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가방이 하늘의 뛰는 박자에 맞춰 통통 튀어 올랐다. 하늘은 멀리서부터 큰 소리로 외쳤다.

“선배님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야구부원들은 하늘이 헐레벌떡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슬쩍 쳐다보며 저마다 가볍게 알은체했다. 대부분 왜 이렇게 늦었냐는 타박 섞인 인사였지만 표정 속에 옅게 섞인 반가움은 숨길 수 없었다.

“여어, 매니저, 풍향고 야구부 하나밖에 없는 매니저, 얼굴 보기 힘들어 아주. 고2 됐다고 이제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 뭐 그런 거야?”

호철이 배트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며 하늘에게 헤살거리는 표정으로 핀잔을 줬다. 하늘은 콧잔등을 찌푸리며 입 모양으로 ‘미안해요, 미안해’라고 말하고는 두 손을 얼굴 앞으로 모아 보였다. 하늘은 더그아웃과 휴게실의 좁은 통로를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며 부원들에게 인사를 한 후 코치와 내일 훈련 일정을 살펴보는 영은 쪽을 조용히 지나쳤다. 가득 찬 야구공 바구니를 옮기고 있는 민찬의 등 뒤를 살며시 따라가던 하늘은 민찬의 왼쪽 귀에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아, 깜짝이야. 얀마, 선배한테.”

“호!”

하늘은 놀라는 민찬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추운 날씨에 뛰어오느라 붉어진 하늘의 볼에 볼우물이 함박 패었다.

“선배님 오늘 7대 1로 이기셨다며? 새 학기 시작하기 전 마지막 연습 경기라고 긴장 많이 하더니 엄살은. 역시, 리그 짱은 리그 짱, 네임 값하네. 근데 1실점은 왜 했냐? 그냥 1점도 주지 말지.”

“칭찬하든지 면박을 주든지 둘 중의 하나만 하지?”

민찬은 하늘의 가방에 달린 야구공 모양의 열쇠고리를 손가락 두 개로 튕겼다. 주먹만 한 열쇠고리가 흔들리며 달랑달랑 종소리를 냈다. 더그아웃 구석의 테이블에서 코치와 대화를 하던 영은이 선수들이 있는 더그아웃 입구 쪽으로 돌아선 후 큰소리로 주목을 외쳤다. 모든 선수가 즉시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양손을 허리 뒤로 모아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주목을 복창했다.

“해산! 오늘 야간 훈련은 없다. 다들 다른 데로 새지 말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한다. 내일 아침 훈련은 변함없이 여섯 시 삼십 분 집합이다. 알았나.”

양 코치의 말에 선수들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대답을 망설였다.

“이것들이 대답이 없어! 펑고 오백 개 받고 가고 싶어? 대답 똑바로들 해. 다시, 알았나?”

반쯤 생기다 만 것처럼 생긴 양 코치의 눈썹이 정수리 쪽으로 올라가며 이마의 주름을 만들었다. 주름이 두 개. 분노가 켜켜이 쌓이고 있단 뜻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선수들은 각자 맡은 바 책임감 있게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호철은 살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입술 끝을 앙다무는 데 집중했다. 양 코치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눈빛으로 선수들을 훑어보다가 열려 있던 야구점퍼의 지퍼를 올리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더그아웃 밖으로 향했다. 호철은 옆에 서 있던 영은에게 소리를 죽여 말했다.

“야 주장, 어떻게 양꼬치 배는 점점 더 볼록해지냐.”

“볼록은 좀 귀엽지 않냐. 저건 불룩이지. 저렇게 계속 부풀어 오르면 조만간 점퍼 주머니에 손도 못 넣을 듯. 끼어서.”

뒤뚱거리는 양 코치의 뒷모습을 보며 호철과 영은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호철만 한 아담한 키에 지방으로 부풀 대로 부푼 상체와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찾아볼 수 없는 하체를 가지고 있는 양 코치를 보면 한때 유망한 야구 선수였다는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끔 시합에 집중하는 양 코치에게는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긴 시절을 바쳤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매서운 눈빛이 새어 나왔으나 그 찰나를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양 코치가 시야에서 완벽하게 사라지자, 침묵이 해방된 선수들에게 먼저 터져 나온 것은 기쁨이 아닌 놀라움이었다. 고교야구 주말리그 결승전에서 우승했던 날에도 양 코치는 시합에서 발생했던 내야 실책을 벌하며 수비 훈련을 시켰던 악착같은 사람이었다. 선수들은 각자의 입에서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저마다의 놀라움을 표하다가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없었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느꼈는지 서둘러 개인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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