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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Feb 24. 2023

1. 내 인생 계획에 대기업직장인남편은 없었는데 망했네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우리 부모님의 사랑의 크기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아마 나는 브런치북 발행을 꿈꾸는 작가가 아닌 브런치를 소유하고 있는 플랫폼의 주인장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랐다. 문제는 사랑만 받았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을 누리는 기쁨은 경험하지 못하고 자라났다. 그리하여 나는, 세상은 사랑으로 충만하며,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고, 삶은 꿈결 같다고 여기는 낭만주의자로 성장했다.

-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이 진짜야!

라는 커다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의 나는 직장이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집안 사정은 넉넉지 못해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휴학 없이 4년을 마치자마자 적당한 곳에 입사를 했다. 전공은 경영학과였으나, 전공 공부를 했을리는 무방하였다.

- 나는 학점 따위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야. 학점이 인생에서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니. 소중한 인생을 허튼 것들로 낭비하다니. 으휴 저런 애송이들.

하며 으스댔었던 것도 같다. (지금의 나로서 저 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뒤통수를 때려줄 것이다. 정신차려 이 친구야.)



교양 학점으로 졸업 학점을 대강 때운 대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23살 여자사람이 할 수 있는 그럴듯한 직업은 몇 개 없었다.

항공사 인턴, 대학병원장 비서, 프랜차이즈기업 사장 비서로 직장을 전전했다. 한 직장의 근속 기간은 1년이나 채 되려나.


첫 번째 직장은 시시하여 그만두었고, 두 번째 직장은 빅토리아 공주와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을 보러 가느라 그만두었고, 세 번째 직장은 부모님에게 중고차 한 대를 뽑아드린다는 꿈을 이루자마자 그만두었다.



그 와중에 내가 부단히도 열심히 해왔던 일은, 인생의 낭만을 찾는 일.

꾸준히 홍대와 이태원을 전전하며 기타를 치고, 우쿠렐레를 만들고, 글을 짓고, 플룻을 불었다.

아, 이것이 진짜 인생이지. 라 돌체 비타. 라 비앙 로즈.




나는 시인과 결혼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인 중에서도 시집을 여러 편 내어 인세를 많이 받는 유명한 그런 시인이 아니라(그분들도 너 별로래)

가난하고 또 가난하지만 마음이 맑고 손이 여리고 다정한 시인.

그 시인과 산 혹은 바닷가의 작고 소박한 집에 살며 마당에 꼬리를 살랑이는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생 커피콩을 가마솥에 볶고, 곶감을 말리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삶이 내가 꿈꾸는 나의 미래이자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었다.


물질은 물리쳐야 되는 적 같은 것.

쫓아서는 안 되는 마귀 같은 것.

가져서는 안 되는 무화과 같은 것.


그러던 내가, 어쩌다 보니.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회사에 다니는 고액 연봉자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런 악의 근원 속으로 들어가다니!

내 인생 계획에 대기업 직장인 남편은 꿈에도 없었는데 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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