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홍콩, 홍콩에서 뉴질랜드로 이동하는 과정에 쌓인 피로 탓인지 우리 가족 모두 늦잠을 잤다.
뉴질랜드 같은 나라는 사람들이 아침 일찍 활동을 시작해서 오후 5~6시면 거의 모든 곳이 문을 닫기 때문에, 여행할 때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
게다가 5시가 넘으면 숙소에 자리가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늦잠을 자서 늦게 활동을 시작하면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셈이 된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에 마음이 좀 급해졌다.
8시경에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그 시각에 일어나다니.
불과 네 시간 차이이긴 하지만 아직 신체 리듬은 한국 시간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그래서 8시면 한국은 새벽 4시니까 늦게 일어난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기념하며 시끌벅적한 축제를 벌인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새해 아침이 되니 홀리데이파크의 분위기는 어제와는 딴판으로 차분했다.
땅은 이미 태양의 열기를 머금어 따뜻했고, 코로 느껴지는 흙 내음, 공기 내음, 바람 내음은 우리의 시골만큼 상쾌했다.
새해 첫날 아침이라 그런지 다들 늦게 아침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폐에 한껏 이 내음들과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하루를 시작했다.
늦게 일어나서 씻고 씻기고, 간단히 딸기잼을 크루아상에 발라 아침으로 해 먹는 등 준비를 하는데 10시가 넘었다.
체크아웃 시각을 넘어서자 마음은 더 급해졌다.
하지만 오늘은 캠퍼밴 여행 둘째 날!
어제는 2011년의 마지막 날이었고, 우리는 어제 늦게 잠들었으며, 게다가 지금이 한국 시간으로 아침 6시라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것이 용서되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짧은 시간에 이 많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리하다니......
누가 그랬을까? 어떤 일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오늘은 왕가레이(Whangarei)로 가기로 했다.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오레와 홀리데이파크를 벗어나서 어제 슈퍼마켓에 가면서 보아둔 해변 놀이터에 들렀다.
그 놀이터는 찻길과 바닷가 사이의 넓은 잔디밭에 있었다.
놀이 기구도 두 군데 있었고, 바닷가의 모래사장과 맞붙어 있었으며, 푸르른 잔디에 우거진 나무들이 있는 놀이터였다.
흐린 날씨였지만 간간이 비치는 따가운 햇살 속에 탁 트인 남태평양을 배경으로 서핑(surfing)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과, 놀이터 가득 재잘거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냥 발길을 돌릴 수 없게 했다.
우리도 그 무리 중 하나가 되는 모습을 기대하고 우리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놨건만 우리 아이들은 이런 분위기가 싫은가보다.
아니면 생김새도 말도 전부 다른 외국인들이라 겁이 난 걸까.
결국 두 아이는 어제저녁처럼 바닷가로 향했다.
흔히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두 아이도 파도에 밀려오는 바닷물과 놀이를 했다.
바닷물이 밀려가면 쫓아나갔다가, 밀려오면 도망쳐 오면서 좋다고 까르르거리는 놀이에 열중했다.
그 사이 우리 부부는 모처럼 한껏 여유를 부리며 아름드리나무와 남태평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내는 햇살의 방향과 강도 때문에 원하는 대로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며 사진을 찍고 또 찍고 했다.
그러는 사이 바닷가에서 잘 놀던 작은아이가 모래사장에서 넘어져 옷을 버린 채 울면서 왔다.
역시 아직은 어린 탓에 넘어지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한다.
아직 어려서 몸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작은아이에게, 바다는 신나게 달리고 싶지만 울며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곳인가 보다.
이내 큰아이도 바닷물을 약 올리며 놀더니 결국 바닷물에 져서 옷을 버린 채 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씻길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대충 씻기고 차로 돌아왔다.
차로 돌아오는 도중에 멋진 나무를 배경으로 가족사진도 한 장 찍었다.
차에 돌아온 아내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옷을 빨리 버린다며 빨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애들을 신나게 놀게 하고, 세탁비와 건조비 좀 들이자고 했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옷은 버리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