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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하리 Aug 29. 2019

제3일 ③ : 홀팍에서 즐거운 아이들, 폰 개통 실패

두 아이는 트램펄린에서 뛰다가 내려와 푸른 잔디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큰아이만 있을 때 했던 2008년의 호주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 중의 하나이다. 

형제 둘이 친구가 되어 재미있게 놀기도 했다가, 싸우기도 했다가, 다시 화해하고 놀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우리 부부에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만족감과 뿌듯함을 선사했다. 

아마 자식을 둔 부모 모두가 자신의 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 녀석들은 이내 잔디밭만이 아니라 홀리데이파크 전체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자동차 걱정에, 바닥이 온통 시멘트에 아스팔트 따위라 넘어질 걱정에 뛰지 말라는 말을 하곤 했건만 이곳은 그럴 걱정이 없었다. 

홀리데이파크 안의 제한 속도는 5km이고 모든 차들은 사람을 조심하며 살살 다녔으며, 바닥은 넘어져도 아프지 않은 잔디였으니까. 


캠핑카들이 주차되어 있는 모습. 찻길은 아스팔트이지만 아이들은 잔디만 뛰어 다녔다.


두 아이는 이따금씩 화장실과 세탁실, 부엌까지 뛰어 들어가 엄마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놀다가 엄마가 어디로인가 가는 것 같으면 따라가서 놀라게 하고는 해맑은 웃음으로 값을 치르고 나오곤 하는 것이었다.


공용 시설 앞의 분리 수거를 하는 곳


오늘부터 요리는 아내가, 설거지는 내가 주로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요리에는 워낙 솜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속도가 느려 답답하다고 아내가 기회조차 주지를 않았었다. 

설거지 또한 정말 속도가 느려서 자신에게는 참을 인(忍) 세 번이 필요한 정도라며 자기가 하고 말던 아내였는데, 내게 이런 기회(!)를 주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벅찼나 보다. 


공용 부엌 안의 냉장고. 보증금을 맡기고 열쇠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었다.
서양권 여행 중 처음으로 본 커피 자판기!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는 하는 등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아내는 다시 저녁거리를 고민해야 했다. 

여행을 와서도 벗어날 수 없는 고민이라며 투덜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을 하게 한, 푸른 잔디를 마냥 뛰어다니고 있는 녀석 둘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 아내이다.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밖에 다닐 수 없을 만큼의 양은 아니지만 안경을 쓴 내 입장에서는 좀 불편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쓰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 신기했다. 

우리는 비가 오면 산성비네 어쩌네 하면서 우산을 꼭 쓰는 데 비해, 이 사람들은 웬만하면 그냥 맞고 돌아다녔다. 


비가 와서 우리 가족은 모두 우리의 모터 홈에 들어앉았다. 

아내는 저녁 메뉴를 카레로 정했다. 

그런데 냉장고에는 당근과 감자밖에 없단다. 

할 수 없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는 카운트다운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부산스러운 머슴애들을 데리고 슈퍼마켓을 가는 것은 성가신 일일 수 있었고, 슈퍼마켓이 가깝다고도 해서 아내 혼자 걸어갔다 오겠다고 했다. 

두 아이는 간간이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차 안에서 DVD로 ‘미래소년 코난’을 시청하도록 하고, 그 사이 나는 카레에 넣을 야채를 썰어 놓기로 했다.



야채를 모두 썰어 놓고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스마트폰 개통을 다시 시도했다. 

이상한 점은 유심을 꽂고 스마트폰을 켜면 유심을 꽂으라는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었다. 

분명히 유심을 꽂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공항에서 받은 유심과 함께 있는 안내문대로 전화를 걸어 개통을 시도했다. 

원래 영어 듣기에 약한 데다가 뉴질랜드 발음은 더 낯설어서 ARS로 나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등록을 하기 위한 전화는 무료이니 전화를 해서 스마트폰에 나오는 말을 들어 녹음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들어보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씩 다음 단계로 나갔다. 



‘Top up’을 ‘토팝’이라고 발음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도 한참 걸렸다. 

결국은 ARS로 해결이 안 되어서 직원과 연결을 시도했다. 

휴일인데도 전화를 받는 직원이 있었다. 

후발 통신사라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문의를 했다. 

방문객용 유심을 받아서 꽂았는데 유심을 꽂으라는 메시지가 나온다고 했더니 그런 경우는 자신도 잘 모르겠단다.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인근 투디그리스 대리점에 들러 보라고 했다. 

알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나서 다시 곰곰이 휴대폰과 유심을 들여다보았다. 

아, 그랬더니 이럴 수가! 

유심카드를 거꾸로 꽂았던 것 아닌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차분하게 했어야 했는데 낯선 일들의 연속이다 보니 경황이 없어서 저지른 어이없는 실수였다. 



드디어 유심을 바로 꽂으니 유심을 꽂으라는 메시지가 사라졌다. 

그러나 해결된 문제는 없었다. 

ARS에 나오는 뉴질랜드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여전히 내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었다. 

사무실에 가서 혹시 와이파이(WIFI)가 무료인가 하여 알아보았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한국에서 전해 듣기로는 홀리데이파크에서 와이파이가 무료라고 했는데 아니란다. 

역시 잘못된 정보였던 게다. 



홀리데이파크 와이파이 이용료는 1시간에 5달러, 하루에 10달러, 3시간에 15달러, 일주일에 30달러, 30일에 50달러였다. 

사무실을 통해서 IAC(Internet Access Company)라는 회사에 가입하면 IAC 망이 깔린 곳에서는 돈을 낸 만큼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어서 가입하지는 않았다. 

이 금액들은 모두 음성 통화료를 제외한 인터넷 사용료였기에 결코 싸다고 할 수 없었다. 

당장은 내가 1시간 내내 와이파이를 즐길 만큼 여행에서 여유롭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 홀리데이파크가 IAC 망이 깔린 곳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유선 인터넷이 빠르다고 생각했고 싸기 때문에 와이파이를 등록하지 않고 유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내가 한국에서 쓰는 통신사의 데이터 로밍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금방 10분이 지났다.


유료 와이파이 서비스인 iac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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