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시각 오후 2시 6분(홍콩 시각 1시 6분, 이후 홍콩 시각) 홍콩에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우리 전자 항공권에는 비행시간이 4시간 쯤 걸릴 것이라고 되어 있었으나, 이륙한 후 안내 방송에서는 3시간 25분쯤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에서 10시 50분에 출발했으니 3시간 25쯤 만에 착륙하는 셈이다.
(그 사이에 나는 와인을 석 잔, 커피를 두 잔을 마시고 양치질을 했다.)
다음에 갈아탈 비행기는 저녁 8시 30분에 타는 에어 뉴질랜드(Air New Zealadn, 항공사 코드 NZ)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거의 7시간 이상인데 아이들이 잘 견뎌줄지 걱정스러웠다.
7시간이어서 홍콩 시내에 나갔다 올까 생각도 했었지만 공항이 시내와 너무 멀어서 왔다 갔다 하다가 시간을 다 버릴 것 같아 공항 안에 있기로 했다.
우리의 비장의 무기는 내가 짊어지고 있는 배낭 속에 있는 노트북 컴퓨터와 외장 하드 디스크 속의 각종 영상들이다.
영상물을 보여주지 않고 놀 수 있는 데까지 놀다가 보여줄 셈이었다.
나는 여느 남자들과 달리 쇼핑을 싫어하기는커녕 좋아하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홍콩 첵랍콕 공항의 면세점도 좀 둘러볼 심산이었다.
2시 26분 경 비행기가 공항 위를 선회하는 듯하더니 28분경에 바다를 낀 활주로에 착륙했다.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 중에 언제나 착륙할 때가 가장 긴장된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군대에서 탔던 헬리콥터도 착륙할 때 가장 위험하여 긴장하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갈아타는 승객이고 홍콩 시내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입국신고서도 받지 않았다.
내리면서 든 생각은, 이코노미 석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2008년에 호주 여행을 할 때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을 해서 이번 여행을 이코노미 석으로 하면서 꽤나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첵랍콕 공항 대기실.
2006년, 두 살짜리 큰아이를 데리고 짧은 여행을 하느라 들렀던 공항이다.
20개월의 아기였던 큰아이는 사방을 휘젓고 다니는 일곱 살, 곧 여덟 살이 되어 학교에 들어가는 나이가 되어 다시 첵랍콕 공항에 왔고,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작은아이가 그때의 큰아이보다 더 큰 채 이곳에 와 있다.
이렇게 시간을 빠르게 되새겨 보는 것은 언제나 시간이 매우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좋을 일이 계기가 되었을 때는 감개무량하기도 한 법이다.
첵랍콕에서 대기하는 동안 두 아들에게 일단 만화 바쿠간 20회와 22회를 틀어 주었다.
아이들이 비행기에서 점심을 거의 먹지 않아서 혹시 아이들이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아내가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먹을 만한 것은 마땅치 않았고 결국 아내는 사과와 바나나를 사서 들고 돌아왔다.
사과와 바나나가 각각 7HKD인데 홍콩 환율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탓에 아내는 그것이 우리 돈으로 얼마쯤 되는지 몰라서,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 판단이 안 되어 당황했다고 한다.
환전소에 있는 교환 비율로 추측컨대 1:0.007의 비율로 교환되는 것 같았고, 그렇다면 1HKD는 약 140원쯤 되는 것이었다. 사과 한 알을 1,000원쯤에 산 셈이었다.
아이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자세가 안 나와서 벤치에 노트북을 놓고, 짐을 옮기는 트롤리(trolley)에 아이들을 앉히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도 두 아이는 마냥 좋았다.
홍콩은 서울보다 위도가 낮은 탓에 기온이 더 높았고, 습도도 높았다.
공항 내에 설치된 측정기를 보니 온도는 18도, 습도는 67%였다.
불과 네 시간 전에 머물렀던, 춥고 건조한 서울과는 차이가 컸다.
이런 온도와 습도는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게 만들었고, 여름인 남반구로 간다는 설렘이 더 진하게 다가왔다.
아내가 과일을 사 온 뒤에는 내가 공항 구경에 나섰다.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을 하다 보니 ‘Free WIFI(#HK Airport Free WIFI)’라고 씌어 있는 광고막이 보였다.
내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없었던 탓에 아내의 아이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것저것 정보를 알아보았다.
나중에 보니 뉴질랜드는 오클랜드 공항과 크라이스트처치 공항뿐만 아니라 무료 와이파이 자체가 거의 없었다. 정말 우리나라가 무료 와이파이의 천국임을 절감했다.
이때 핸드폰을 켜는 바람에 양가 부모님께 우리가 홍콩에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가 전송되기도 했다.
오후 4시 10분경에는 내가 공항 구경을 하는 사이에 작은아이가 소변이 마렵다고 했다고 하여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졌단다.
작은아이가 소변을 보려면 아내나 내가 화장실에 데리고 갔다 와야 한다.
그런데 핸드폰을 켜지도 않은 나는 어디론가 가서 연락이 안 되고, 아이는 쉬 마렵다고 하고, 카메라와 캠코더, 노트북 등 두고 갈 수 없는 짐들은 많이 놓여 있고 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내가 구경을 가고 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더라도 매우 당황스러웠을 터이다.
결국 아내는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도록 했다.
우리 부부가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면 나서서 어른스럽게 작은아이를 돌보기도 했던 큰아이의 실력이 또 다시 발휘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큰아이는 작은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서 일을 잘 보게 했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반대 방향으로 나가버렸단다.
당황한 아내는 그 공항에서 큰 소리로 큰아이를 불러댔고, 그 소리를 들은 큰아이가 아내 쪽으로 돌아오면서 일이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별일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연락도 원활하지 않은 상태의 외국의 공항에서 큰일 날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나서 우리는 돌아다니며 공항 내부를 좀 구경하기로 했다.
제2청사(Terminal 2) 건물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던 중 5시 10분쯤에 공항에서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역시 이런 시설이 없을 리가 없는데 왜 우리가 이런 시설을 안 찾았는지.
바쿠간 동영상을 보다가 노트북 컴퓨터의 배터리가 다 되어 무언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여줄 수도 없었다.
공항 어딘가에 전원을 연결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배낭에 전원선까지 넣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전원을 꽂을 곳은 없었다.
이런 탓에 아이들이 다시 심심하다고 되뇌이며 몸을 비틀 무렵이었는데 놀이터가 나타나서 천만다행이었다.
두 아이는 그 놀이터에 들어가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
아내가 준비한 사탕을 하나씩 물고는 신나게 뒹굴며 놀았다.
아이들의 놀이가 어느 정도 끝나고 원래 가려던 제2청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제2청사는 생각보다 가기가 쉽지 않았고 굳이 어렵게 찾아가볼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제1청사 끝에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엘리베이터를 타며 구경을 했다.
구경을 하던 도중에 작은아이가 트랜스포머 장난감을 사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행을 다니면서 장난감을 조금 사주려고 했으나, 우리 부부의 생각은 뉴질랜드에 가서 사줄 계획이었다.
그러나 38개월짜리의 무한 반복 칭얼댐에 시달리다 못해서 뉴질랜드에 가서는 장난감을 안 사기로 약속하고 사주었다.
마침 2개를 사면 10% 할인 행사를 하고 있어서 두 아이에게 각각 하나씩 사주었다.
이러다 보니 이제 탑승 수속을 시작할 때가 다가와서 우리가 오클랜드행 비행기를 탈 탑승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