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경험 이후였던 것 같아요.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 6학년 때는 학급 임원도 하고 전교 회장 선거에도 나갔어요. 중1 때 경남 창원에서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다시 2년 정도 언어를 잃을 때가 있었지만 고등학생 때 부반장, 반장을 하면서 말을 할 일이 많았어요.
고3 때는 전교 회장이 되었는데 그때 저는 앞에 서서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재미있어 죽을 지경이었어요. 앞에 서서 말을 하고 그 말이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는 동안 여러 번의 연애를 했어요. 기세 등등하던 저는 파도를 타듯이 살아났다, 죽었다를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말이 많아지기도, 적어지기도 했어요.
출판사 편집자, 환경운동가, 학원 강사, 대안학교 교사. 말을 점점 더 많이 하는 직업으로 이동했어요. 말을 하는 것이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았지만 언어를 속에 담아놓고 입을 열지 못하는 아이가 내 안에 여전히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솔직한 감정, 솔직한 생각을 말하는 것은 변함없이 어려웠거든요.
그러다가 춤을 만났어요. 처음엔 재즈였고 그다음은 현대무용이었는데 나중에는 틀이 없는 춤이었어요. 춤으로 내 안의 터질 것 같은 마음들을 정말 터뜨렸어요. 마구마구 터뜨렸어요. 춤은 말이 필요 없고 심지어 그 어떤 말로도 할 수 없는 표현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어요. 내 모든 감정을 밖으로 꺼내 주었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마음이 너무 힘들어 숨을 쉬기 힘들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먹은 약은 춤이었어요. 춤을 추고 나면 숨이 쉬어져서 울면서 춤을 췄어요.
둘째 아이를 낳고 관절이 아파왔어요. 손가락 하나가 아프더니 손가락 열개가 아프고 손목까지 아프고 발바닥 가운데가 찌르듯이 아팠어요. 병원에 가니 류마티스 관절염이래요. 춤을 춰야 하는데, 표현예술치료사가 되어 나처럼 춤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공부 중인데... 몸이 필요한데...
4년 동안 꼼짝을 못 하고 병치례를 했어요. 손가락과 손목이 너무 아파 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었지만 다행히 몸은 나아졌어요. 손이 회복되면서는 글을 썼어요. 아직 발목이 아파 춤을 못 추니까 글을 쓴 건데, 어라? 글이 또 되게 재미있어요. 환상과 현실을 오갈 수가 있고 아주 멀고 깊은 세계를 표현할 수가 있어요. 춤은 사라지지만 글은 오래오래 간직할 수가 있어요.
몸이 아픈 덕에 글 표현을 만났어요. 몸이 많이 나아진 지금, 나에게는 춤과 글이 남았어요. 아, 그림도 있어요. 그림은 디테일을 표현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점, 선, 면과 색깔에 아주 섬세한 결을 담을 수가 있어요. 그림을 그리고 나면 늘 마음속의 부채가 샤라라락 펼쳐지는 기분이 들어요. 마술 같아요.
춤과 글과 그림. 저는 이것들 안에 저를 담는 것이 좋아요. 더 새로운 것, 더 솔직한 것을 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