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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경 Jul 12. 2020

나에겐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부족했다

강렬하고도 두려웠던 첫 실패, 수능. 그리고 이어진 탈락의 아픔들.

 때론 실패가 성공으로 이끄는 자양분이 되기도 하는데, 막상 실패를 겪으면 그렇게 좋게 생각하기 참 힘들다. 간절히 원했던 만큼 비례해 낙담과 좌절이 급습해 숨이 막힌다. 어느 정도 실패를 해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지금도 나는 실패가 너무 두렵다. 하지만 실패를 하나씩 극복하면서 실패가 참 두렵고 싫지만, 막상 실패했어도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덧붙여 열심히 달리다가 좌절하게 되었을 때, 때로는 다른 방향의 길도 보이고 지나온 길과 지나갈 길이 더 잘 보인다. 지금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실패로 인해 붙은 자격지심의 꼬리표는 끊어내기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날 괴롭혔던 실패는 바로 수능이었다.


 해마다 수능이 끝나면 부정적인 기사가 보인다. 바로 성적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런 기사를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감정이입이 된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그 마음을 품었고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해 좌절했을 때 나는 인생이 끝났다고만 생각했다.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내 기준으로 좋지 못한 대학을 나온 것이 나에게 큰 상처고 아픔이었다. 학벌이 뭐라고 자꾸 움츠러들었다.


 몇 년 전 공기업이나 대기업 등에서 학벌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도 보았는데 학창 시절 공부 안 하고 논 대가로 지방대에 갔으니 차별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글들이 꽤 보였다. 그 글들을 보면서 씁쓸했다.


 과거의 나는, 학벌에 대한 차별이 당연하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의 말과는 달리 열심히 놀지 않았다. 작은 시골 마을, 기초생활 수급자, 결손 가정이 내가 처한 환경이었다. 내가 처한 환경이 너무 싫었고 잘 살고 싶었던 나는 공부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학원, 과외는커녕 시골이라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막차가 끊겨 집에 갈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다들 위험하다고 만류해도 독서실에서 총무 일을 하며 공짜로 숙식했다. 잠도 못 자고 많이 힘들었지만 좋은 대학에 가서 전문직이 되면 고통이 사라져 행복할 것이다고 생각해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최악의 컨디션으로 본 수능은 그동안 본 모의고사들과 비교도 안 되게 최악의 성적을 받았다. 공부가 내 인생을 빛나게 할 것이다고 생각했던 나는 더는 희망이 없었고 죽고 싶었다. 매일 눈물로 울기만 했는데 죽을 용기가 없어 하루하루 살았다. 그러다 다시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지방대에서 장학금 받고 1년 조기 졸업을 했다. 비록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공부하며 살았다. 그런 나에게 딱 하루의 시험 성적으로 패배자의 낙인을 찍는 것이 정당할까?

 나와 달리 정말 학창 시절 공부 안 하고 놀아서 지방대에 온 친구들도 많다. 그 친구들은 처음엔 나처럼 학벌에 상처받지 않았다. 하지만 취업이 힘들고 학벌로 인해 차별을 받게 되면 상처받는다. 실제로 공부에 소질 없고 시험에 취약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다른 분야를 뛰어나게 잘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시험 성적은 등수가 있어서 모두 잘할 수 없는데 시험 성적으로만 사람을 평가한다면 패자는 나올 수밖에 없다. 다양한 분야에 소질 있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일렬로 줄 세워 패자를 만드는 것은 옳지 못하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학창 시절 부지런했다는 것과 공부에 소질 있음을 증명하는 것뿐이다. 좋은 대학에 가려고 오랜 기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로지 대학에만 목매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누구에게 좋을까?



 지금은 이렇게 내가 공부로 실패한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합당한 의문을 제시하지만,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 한 번의 실패로 생긴 학벌이라는 꼬리표가 늘 나를 따라다니며 패배자라는 생각을 키우고 다른 분야의 도전까지 주저하게 만들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다음이 보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수능뿐 아니라 공부로 겪은 각종 실패로 인해 주위를 더 돌아볼 수 있었고 타인을 더 돌볼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쌓여 나를 더 단단하게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경험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출간의 기쁨을 누리며 다른 인생을 설계하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렇게 한가지의 실패는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자만을 멀리하며 다양한 실력을 키울 수 있게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성공하는 사람보다는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기에 나는 당연한 일을 겪었을 뿐이다. 인생은 그네와 같다. 그네는 가만히 있으면 그 자리에만 있지만, 뒤로 쭉 가면 앞으로 멀리 갈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한다. 만약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면 한 번도 최선을 다해 뭔가를 이루고자 도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이다.

 나의 가장 강렬한 첫 실패, 수능. 그리고 이어진 탈락의 아픔들. 생각해보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부에 실패를 맛본다. 돌아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당시에 학생이었던 나는 공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되게 하지 말고 그 외에도 다른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면 덜 아파하고 좌절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내 인생을 한 가지로만 채우지 않기로 다짐했다. 안 그러면 그 한 가지가 부서졌을 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휘청 거릴테니까. 그리고 한 가지만 바라보면 그것에 대한 부담이 커져 두려움이 되어 나를 삼켜 버릴테니까. 내 인생을 한 가지로 채우기엔 중요한 것이 너무 많고 내 삶이 너무 값지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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