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황당한 여행의 추억
애초에 신혼여행은 유럽을 갈까 동남아를 갈까 하다가 부모님이 말라리아 병이 걱정된다는 말씀에 제주도로 4박을 결정했고 너무 재미있어서 2일을 더 연장했다. 그만큼 여행은 어딜 가느냐보다 누구랑 함께 하느냐가 여행의 만족도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신라호텔에서 4박을 묵고 난 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다른 호텔로 옮기고 렌트도 연장해서 우리의 꿈만 같은 여행은 그렇게 일주일동안 계속되었다. 뭐든 한번 빠지면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성격은 알아줘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 되던 결혼 1주년에 신혼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를 보러 호주 시드니로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항공회사에 다니는 처제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처제! 12월 30일에 호주 시드니 갈려고 하는 데 티켓있는 지 알아봐줘"
"응 형부! 잠시만....있긴 한데 연말이라 좀 비싸네"
"좀 비싸도 어쩔 수 없지. 호텔도 알아봐줄 수 있어?"
"응. 내가 예약해놓을게. 걱정말고 여행준비 잘해"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호주에 대한 뉴스를 검색해보니 그때 마침 호주는 대규모 산불이 번지고 있다고 언론에서 연일 방송하는 바람에 산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또한 난생 처음하는 해외여행에서 가이드도 없이 오른쪽 운전좌석의 적응을 잘 해낼 수 있을 지의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한국에서 허츠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할려고 봤더니 자동차는 오토가 아닌 스틱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말 극성수기인데다 밀레니엄 축제 즉 우리가 가는 해가 2001년이어서 21세기를 여는 정말 뜻깊은 해였던 것이다. 이렇게 근심반 기대반으로 호주 여행을 준비하면서 도착해서 무엇을 할까 행복한 고민과 과연 우리 여행 괜찮을까 라는 근심을 하던 중에 어느덧 우리의 몸은 비행기에 실려 있었다.
오매불망 호주 시드니 공항에 내려서 렌트카를 찾으러 이정표를 따라갔다. 호주는 한국과는 달리 정말 겨울에 꼭 한번 와볼만한 나라구나 라고 느낀 것은 10시간을 날아서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왔는 데 이런 기가 막힌 날씨가 우리를 반겨준 게 가장 큰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렌트카 부스로 달려갔고 다행이 오토매틱 자동차가 있다고 하여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공항을 빠져나와 서툰 오른쪽 운전대에 적응 할 겸 해서 나는 무조건 직진을 선택했고 도로 양옆의 산불을 헤치며 달리기 시작하였다.
약 2시간을 달려서 물도 없이 먹을 것도 없이 앞만 보고 좌회전 우회전도 없이 직진을 했더니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파 있던 차에 어느 한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고 마침 유턴할 수 있는 도로가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도착한 도시는 울릉공이였다. 영화속에서 봤음직한 가게에 들어가보니 주인이 없고 딸과 아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hello? I want to this"
"This one?"
"yes"
"how much is it"
헐리우드 서부영화에서 많이 봤던 세트장에 내가 서 있는 느낌이었고 그런 깡촌에 있는 어느 가게에 들어가 주문한 이름모를 우유와 빵을 사서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허기를 채우고 드디어 직진만 하던 우리는 원형교차로 circle turn 을 하였고 왔던 길을 돌아 다시 시드니 시내로 진입하여 우리가 예약했던 호텔을 찾아 인생의 터닝포인트처럼 새출발하였다. 시내로 돌아가는 길은 올때보다는 훨씬 긴장을 덜해서 그런지 나름 여유가 생겼는 데 시드니 시내로 들어가면서 정신없이 많은 차량과 울릉공으로 가는 길에 느껴보지 못했던 심리적 압박감에 의해서 다시 긴장을 하게 되었다.
특히나 교차로 신호등 앞에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도대체 어떻게 좌회전을 하는 거지?'
뒤에서 빵빵거리기도 몇번 했었는 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갈길을 갔던 나는 아빌리온 호텔을 단순히 지도 한장만 보고 찾아갈려고 했던 대범함을 보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모르는 게 약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도상으로 나온 아빌리온 호텔은 돌고 돌아도 보이지가 않았고 그렇게 나와 와이프는 2시간 넘게 시내를 헤메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달리는 차안에서 옆 택시기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where is avilion hotel"
그때 그 기사는 용케 우리의 말을 알아들었고 손으로 가리키며 바로 앞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시내를 뱅뱅뱅 돌고 돌았는 데 여기에 있는 것을 어떻게 몰랐을까 하는 어리석음을 탓하는 것도 잠시였고 우리는 호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데스크에서 나의 여권을 내밀었다. 한참을 검색하던 직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we have no your name"
당신의 예약이 없다라고 하였고 난 그럴리가 없다며 다시 검색해볼 것을 요구하였고 대답은 전과 같이 없음이었다. 이렇게 황당한 경우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에 우리가 공항에 도착해서 산불을 헤치고 오른쪽 운전대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또한 호텔 찾는 데만 2시간을 허비해서 찾았는 데 돌아오는 답은 여기가 목적지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아마도 냉수 먹고 정신을 다시한번 차리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파악한 후 한국에 전화를 걸어 여행사와 연락이 되었고 30분이 지나서 여행사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연말이라 바빠서 예약을 놓쳤다라는 답변을 하였다. 실로 어이가 없었는 데 너무 기가 차서 화도 안나고 하루가 너무 길어서 진이 빠질대로 빠진 나는 그가 예약한 호텔로 따라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건가? 그곳은 다름아닌 공항 옆의 airport hotel 이었고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날 저녁 연말 밀레니엄 송년 파티가 시내에서 있었는 데 하버브릿지에 올려지는 불꽃놀이도 보지 못하고 우리는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날 와인과 디너크루즈를 시켜준다길래 그걸로 보상을 받았지만 시내에 있는 호텔의 위치적 장점은 그것을 상쇄할 만큼의 값어치가 아니어서 씁쓸하였다. 그래도 어쩌랴? 이왕 왔으니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1주년을 맞이하자며 나의 분노를 가라앉혀준 와이프에게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