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드로 Jan 05. 2018

성인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망각한 이태리 아시시의 상점

여행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늘은 나 혼자가 아닌 친구의 와이프까지 이렇게 셋이서 로마 근교 여행을 떠난다. 

로마시내를 운전하다보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반도국가의 기질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운전할 때 나름 거칠게 끼어들거나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경우도 많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네비게이션은 CD로 되어 있고 영어로 친절하게 안내를 하는 데 웃긴 것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if possible do U-turn" 

니가 할 수 있으면 유턴을 하라고 안내하는 데 우리나라 도로처럼 유턴 장소를 따로 정해 놓고 있지 않아서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참 어이없어했다. 그래서 우리는 불법유턴을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했는 데 이것이 불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범칙금 딱지가 나오지 않아서 이런 건 아무래도 괜찮은 건가 싶었다. 

대신 주차할 때는 철저히 주위를 살펴보고 했어야 했는 데 한국에 돌아와서 범칙금 돈 떼인 기분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이태리에서 그렇게 마음대로 운전하다 한국에 돌아오니 난폭한 운전습관이 남아서였는지 한동안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것은 이태리가 내게 선물해 준 추억이었다. 


All roads lead to Rome

todos los caminos conducen a Roma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 데 아우렐리아 국도를 타고 시원하게 뻗은 로마의 국도는 우리나라처럼 과속감시 카메라가 없었다. 

대부분의 차들은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것마냥 시속 160 KM/H 는 훌쩍 넘는 거 같았고 옆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폭스바겐 골프의 깜찍한 옆모습에 우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로마에서 시작하여 아시시까지 가는 도로 위에서 옛 로마 제국의 화려한 뒷모습을 수줍게 감추는 듯한 시골마을의 고즈넉한 집들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황홀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시시까지 2시간 여를 달린 끝에 우리는 목적지인 아시시에 도착할 수 있었고 맑고 청명한 가을날씨의 화사함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때마침 관광온 관광객들의 인파에 둘러싸여 아시시의 성당 주위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는 아시시로 가는 골목골목에서 느껴지는 미로를 만들어놓은 듯한 풍경에 감탄하기도 하였고 집앞에 놓여져 있는 화사한 꽃들의 꽃내음을 맡으면서  갑자기 짖는 멍멍이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아시시는 교회의 순례지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에 방문을 해서 성 프란치스코의 기운을 받아보고 싶었다. 

성인 프란치스코는 1182년 아시시에서 부유한 직물 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인이 된 이후 전쟁 포로로서의 체험 그리고 심하게 앓았던 중병은 프란치스코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고 프란치스코가 추구한 순종과 가난의 이상은 교회에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 

아시시 성당에 가보면 생전에 입었던 수도복을 볼 수 있었는 데 낡아서 이곳저곳을 수선하고 천으로 덧대인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성직자의 일반적인 옷들과는 거리가 먼 누더기 옷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저기 천으로 덧댄 자국과 실로 꿰맨 자국들이 남아있었다.

그만큼 가난을 몸소 체험하고 실천하는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아시시에서 성 프란치스코 성당을 보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자 했으나 그 감흥은 쉽사리 만져지질 않았다. 


잠시 뒤 성당을 나와서 근처 기념품점에서 한국에 사갈 만한 기념품 suvenior 를 고르기 위해 프란치스코 성인의 조각품 발 밑에 붙여있는 가격표를 보았는 데 이것 저것 크기가 다른 데도 불구하고 같은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 분심이 생겨서 나쁜 짓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배고픔을 견디고 가난을 몸소 실천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서 이곳 아시시까지 먼 걸음을 했는 데 나에게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기념품을 내려놓은 뒤 식당을 향해 갔고 그곳에서 우리는 봉골래 파스타를 주문하여 허기진 배를 채웠다.

식사전 기도를 하면서 느꼈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다시한번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작가의 이전글 터키 밸리댄스에서 아리랑을 부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