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Y와 나

류예지

by 전건우


나는 한 여자의 혈액 속에서 오랜 세월 살아왔다. 내가 어떤 경로로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는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부모님이 그러했듯, 그녀의 혈액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어린 블러드 시절에 나는 엄마에게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와 아빠는 어쩌다 이 여자의 혈액 속에서 살게 된 거예요?”
“나는 그녀 혈액의 일부였어. 그녀가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그녀의 몸으로 흘러 들어온 네 아빠를 만나게 되었지. 그리고 다른 혈액을 타고 채 이동하기 전에 네가 태어났단다. 우린 이곳에 정착해서 살기로 마음먹은 거야. 그게 운명이라고 믿었으니까.”


가늘고 긴 팔, 창백한 피부,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이 여자의 몸에서 부모님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어느 순간 우리 가족의 따스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나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부모님이 나를 지켜주었던 것처럼, 그것을 숙명으로 여겼다.


*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른네 살이 되던 해, 그녀가 뱀파이어 K에게 사냥을 당하고 난 후, 그리하여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의 피를 마셔야만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우리 가족은 단 하루도 편치 못했다. 그즈음 나는 가장 큰 상흔을 입고, 그녀의 심연 속에 부유물처럼 가라앉았다. 엄마와 아빠가 그녀가 마신 사람들의 혈액을 타고 흘러 들어온 나쁜 블러드와 싸우다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부모님은 나를 심연으로 떠밀며 유언을 남겼다.


너에게 평생에 걸쳐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올 거야.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평범하게 살다가 죽거라.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녀의 몸과 마음엔 너무 많은 추억들이 깃들어 있었다. 그뿐인가. 그녀가 천명에 가까운 사람을 사냥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던 안간힘 때문이었다. 인간으로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믿음 말이다. 나는 그 믿음을 져버릴 수 없었다.


사냥을 당한 후로, 뱀파이어 Y로 불리게 그녀의 마음은 그러나 무언가를 채울 필요가 없어 냉기로 가득 찬 냉장고처럼 얼어붙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입술은 아무리 많은 피를 마셔도 사막처럼 메말라갔다. 사냥을 다녀온 다음이면, 그녀는 몇 날이고 소파 위에 널브러져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 사냥을 위해 가까스로 몸을 일으킬 때, 움푹 파인 소파의 흔적만이 그녀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는, 절대 망설이거나 뒤 돌아보지 않았다.


*


그녀는 이제 한 사람의 피만 더 마시고 나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를 둘러싼 벽엔 구백 구십 구 개의 빗금이 그어져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른다. 뱀파이어는 늙지 않기에,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녀는 때로 몸을 떤다. 자신의 손에 스러져간 사람들을 꿈에서 자주 목격한다. 누군가는 그녀처럼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누군가는 뱀파이어가 되지 못한 채 죽어갔다.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분투가 지속될수록, 그녀 역시 언뜻언뜻 뱀파이어로서의 목적을 상실해갔다.


심연으로 가라앉은 나는 수시로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되기 위한 목적을 새까맣게 잊고 까만 어둠 속에서 숨죽여야 했을 때, 단순히 피가 피를 부르는 형국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그녀의 두려움은 두려움을 모른 채 시시각각 제 영역을 넓혀갔다는 사실을.


*

뱀파이어 Y는 지금 한 노신사의 쭈글쭈글한 목을 물기 위해 송곳니의 날을 힘껏 세우고 있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하고 있다. 뱀파이어 Y는 너무나 오랜 시간 어둠과 공생한 탓에 시력이 나빠져 그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심연 속에 들어앉아 수많은 세월을 함께해온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


잘 다려진 코트 깃, 코트 안에 받쳐 입은 체크 셔츠의 목덜미 부분에서 풍겨오는 섬유유연제 냄새, 뱀파이어 Y를 바라보는 노신사의 눈엔 비애가 어려 있다. 그리고 그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 역시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망설이고 있으며 확신이 떨어진다.


이제까지 그녀가 사냥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필사적으로 그녀의 송곳니 아래에서 발버둥 쳤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녀는 송곳니의 날을 더 깊이 세우고, 오직 피를 탐닉하기 위해 눈깔을 뒤집었다. 때때로 그녀는 마지막 아량이라도 베풀 것처럼 -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천 명의 사람의 피를 마시라고 말해주기도 했지만 - 그들 중의 대부분은 사냥을 당함과 동시에 살아야 할 이유를 잃었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인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뱀파이어 Y의 목적이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나 역시 그녀의 혈액 속에 침투한 다른 블러드와 열심히 싸울 준비가 되었다. 물론 심연의 영역까지 넘어온 블러드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열 명의 희생자를 남겨 두고부터는 매번 사냥을 나갈 때마다 머뭇거렸다.


‘먹어 치워요. 나쁜 블러드와의 싸움 따윈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내뱉는 말에는 전혀 아랑곳 않고, 그녀는 어쩐 일인지 잃어버린 기억의 문을 비집고 나오려는 기억을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선량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슬쩍 그 문을 열고 나왔다가 들어갔다.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그녀는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두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그것은 뱀파이어 Y를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불안한 혈액의 움직임 속에서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하는 나에게도 상처를 입혔다.


*

천 번의 사냥의 반환점을 돌았을 때, 그제야 그녀는 피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새벽녘이면, 암막 커튼을 깊게 드리운 채 벽에 머리를 찧었다. 그럴때마다 부모님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뱀파이어로 지내 온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사랑하는 가족과, 그녀의 오랜 연인,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 류예지


그래서 떠나게 된 것이라고. 어둠으로, 깊은 어둠 속으로, 사방이 꽉 막혀 빛 한 점 조차 들어오지 않는 건물의 잔해 속으로, 급기야 자신의 어두운 내면 속에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집을 지었다. 나는 그녀가 만든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뱀파이어 Y는 어쩌면, 어둠을 뚫고, 자신을 찾아와 준 그를 만난 것 같다. 그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던 건, 나빠진 시력 탓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둠에 집착할수록 다른 감각들은 현저히 되살아났다. 그녀는 그의 목을 물기 위해 송곳니를 세웠던 순간부터 정확하게 그이의 체취를 복기해내고 있었다. 자신의 마지막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사랑했던 연인이었던 그를.


“내가 너무 늙어 버려서 당 신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좋소. 어렵게 찾은 만큼, 이번만은 절대 당신을 놓치지 않을 거니까.”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사냥을 앞두고 그제야 의문하지 않았던 지난 날을 떠올리게 됐다. 과연,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신을 사냥했던 뱀파이어 K는 어떻게 됐을까. 첫 사냥터에서 허기를 참지 못해 송곳니의 날을 세웠던 나를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 킬킬거리던 뱀파이어 K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의심해본 적은 없다. 이 목적을 상실해버린다면 그녀 역시 믿지 못한 채, 죽음의 수순을 밟아갔던 다른 인간들처럼 비참하게 죽어갈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에게로, 가족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숨죽여 흘러갔는지 역시 가늠할 수 없다.


노신사의 나이는 몇 살 쯤일까. 헤어진 지 반세기는 족히 지난 것 같다. 그녀의 엄마와 오빠, 그리고 언니는 진즉 죽었을 것이다. 일부러 눈을 닫고, 귀를 막고 산 세월이었다. 뱀파이어 Y는 그의 목을 향해 송곳니의 날을 날카롭게 세웠다. 하지만 송곳니는 차츰차츰 무뎌졌다. 흐물흐물 차오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녀는 지난 반 세기 동안 자신이 그리워했던 건, 비릿한 피가 아닌 누군가의 따스한 체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목덜미에 코를 들이민다. 그리고 그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


아늑하고 애틋한 감정에 취해 있던 노신사는 순식간에 그녀가 몸을 돌려 그가 걸어 들어온 환한 햇볕 속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의 목을 물고, 마지막 피를 한껏 들이마신다면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대로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어머니의 유언처럼, 나 역시 평범하게 살다가 그녀와 함께 죽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환한 햇볕 속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오랜 연인의 부재를 확인한 노신사의 목소리가 비통하게 귓전을 때리고 있다.


나 역시 너무나 지쳤다. 수시로 심연을 넘보는 블러드와 싸우는 일 같은 거,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 이젠 나도 쉴 때가 된게 아닐까. 그 종착역이 뱀파이어 Y와 함께 하는 비통한 죽음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생각해보면 이런 날을 꿈 꾸었던 것 같다. 햇빛 한 줌을 마음껏 쬐는 시간,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어둠을 살라버리는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지친 몸을 쉬는 일이었으니까. 비릿한 피가 아닌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맛보면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시린 눈을 한껏 찡그리는 것.


뱀파이어 Y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떨친 얼굴로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아득한 햇볕 속을 끝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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