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예지
프롤로그
“2년 동안 사귀고는 헤어졌지. 나 사람 좋아하면 정말 헌신하거든. 차를 사서 도시 곳곳 안 다녀본 데가 없어. 헤어지고는 바로 차를 팔아버렸어. 아무 곳도, 아무 곳도 가고 싶지 않더군, 더 이상.”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사랑했던 –나로서는 얼굴도 알 수 없는- 그 ‘여자’를 향해 일어나는 묘한 적대감을 서글피 확인했을 따름이다. 헤어지고는 차를 팔아 버렸다는 말끝에 묻어 있는 촉촉한 물기…. 누군가를 사랑한 적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즈넉한 육성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사랑했다던 그 ‘여자’에 대해서 어떤 의심조차도 할 수 없을 것이다.
-1-
날씨는 참으로 고약했다. 그곳의 겨울 날씨는 예측불허다. 혹자는 영국의 겨울을 언급하기도 했다. 흐리고 비, 흐리고 비의 연속. 그 날은 며칠째 내리던 겨울비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그러나 먹구름이 낀 하늘은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쏟아낼 것처럼 우르르거렸다. 한편으로는 가면을 쓴 듯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있는 하늘과, 회백색 건물들, 스산한 바람소리를 내던 가로수들.
그 날, 윤은 나와 차연 언니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연말에는 왠지 모르게 들썩거리며 한 해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가지고 있던 차에, 타국에서 연말을 보내게 된 차연 언니와 올해 처음 이국에서 연말을 보내게 된 나를 위한, 윤의 특별 배려였다.
동갑인 윤과는 지난 10월부터 시청에서 주관하는 각종 행사를 함께 치러내면서 친해지게 됐다. 함께 일을 하며 그는 동료로서도, 친구로서도 존경할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속말을 잘 터놓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다. 기실 그 말을 내뱉기가 쑥스럽기도 했고, 그런 말을 하느니 차라리 농담 한 번 더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굳어 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한 편으로는 그를 알게 된 지난 10월부터 그에게 가졌던, 절제하려 했으나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미묘한 감정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는 멕시코 요리로 우리의 입맛을 돋워 주었다. 향초를 피워 방안 공기를 산뜻하게 정화시켰고, 재즈음악을 틀어 느슨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했던 북적대고 소란스러운 연말 분위기와는 다른, 고즈넉한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순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감정에 휩싸였던 터라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서글픈 현실이 마치 멀리서 바라보는 신기루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세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차연 언니는 전날 인근 도시로 출장을 다녀왔던 터라 피곤에 절어 있었다. 윤은 자고 가도 좋다는 배려의 말을 건넸지만, 차연 언니는 괜스레 아침부터 말 많은 여자들 때문에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다며 이쯤에서 각자의 집으로 해산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윤은, 두 여인을 친히 집까지 모셔다 주겠다며 넉살을 떨었다. 주섬주섬 외투를 껴입고 거리로 나선 것이 그러니까 새벽 세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고요한 거리로 나선 우리는 그제야 낮 동안 꾸물거리던 대기가 토해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 바로 안개였음을 깨닫게 됐다. 그야말로 도시는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고요한 거리의 분위기 때문일까, 나는 마음껏 숨을 쉬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입김마저 자욱한 안개 속으로 유령처럼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연 언니 집은 윤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빌라다. 둘은 나보다 더 함께 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업무 외적으로는 오누이처럼 가깝게 지냈다. 피곤으로 갈라진 목소리를 내던 차연 언니는, 미수 좀 부탁! 하고 말한 뒤 손을 힘차게 흔들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건 윤과 나뿐이었다. 그간 머리를 맞대며 준비했던 행사들도 많았고, 얽히고설킨 업무가 끝난 뒤 가볍게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지만, 막상 안개 속에 덩그러니 둘만 남겨지니 거리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에 대한 내 감정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점퍼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고 이어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안개보다 더 진한 담배 연기를 공기 중으로 무겁게 뱉어냈다. 성큼성큼 앞서가는 윤의 걸음을 좇았고, 사실- 나 너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라고 운을 띄우는 윤의 섬세한 얼굴을 어느 결에 마주하게 되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날씨, 이 시간, 이 시점에서 할 수 있을만한 말이 무엇일까- 조금 가슴 떨리는 상상을 해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애먼 기대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고백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사실, 나 차연 누나를 좋아하고 있는데 좀 도와줘, 라는 다소 김 빠지는 부탁이라도 하려는 건가. 수많은 상상으로 한껏 부푼 머리 때문에 멀쩡한 다리가 풀썩 꺾이기를 반복했다. 마음을 다스리고자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짐짓 태연한 얼굴로 뭔데, 하고 되물었다. 입가가 떨려왔고, 이마가 서늘해졌다. 혹, 기대했던 말을 듣지 못하게 되더라도 실망한 모습을 쉬 들키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었다. 우리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오래 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나, 그날 밤 내게 건넨 그의 말은 고백이 아니었다.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가슴 한 구석이 바람 빠진 공처럼 부스스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어쨌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분위기의 날씨였기 때문이다.
-2-
“여자가 있었어. 예전에 말이야.”
윤이 드디어 자신이 사랑했다던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 기대감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윤이 사랑했다던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임이 분명했으니까.
“이웃한 도시에서 어학연수를 했을 때야. 아주 아끼던 여자 후배가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질 않는 거야.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라 꽤 걱정을 하고 있었거든. 수업이 끝나고 녀석을 찾아갔지. 남자 친구랑 헤어졌댔어. 그 애가 18살이었을 거야, 아마.”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사람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궁금해하고 있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아주 친했던 여자 사람 후배에 관한 이야기였다. 도대체 윤이 말하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여자’는 누구일까.
“그래서, 그날 만났어?”
“만났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너는 충분히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마음 굳게 먹고 잊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던 사이에 새벽 두 시를 넘겼지.”
“그래서?”
갈증이 난 사람처럼 언성이 높아졌다.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윤이 말하는 여자 후배를 향한 묘한 적개심 탓이었다.
“자고 가라고 하더라고. 다른 뜻은 없다, 비도 오니까 그냥 잠만 자고 가라고. 생각해보니 다음 날 수업이 아침 일찍 있더라고. 녀석의 집은 학교에서 가깝기도 했고, 그래서 하룻밤만 신세 질까,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갔던 거야. 그런데.”
윤은 그 시점에서 사래가 걸렸는지 꽤 오랫동안 기침을 했다. 안개 속에서 그의 어깨가 희미하게 들썩거리는 게 보였다. 어느 순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픈 기대감 때문이었지만 그 기대감이 무너지고 나서는, 그 여자 후배에 대한 묘한 적개심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안개 때문인지 아니면 연민 탓인지 그 적의마저 무력해졌고, 나중에는 오로지 그의 이야기라서 귀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3-
“내가 돌아가고 난 다음, 위층에 살던 어학원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어.”
그때의 분노가 되살아나는지 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역시 격분했다. 예기치 못한 이야기 전개에 놀라기도 했고 본능적으로 상소리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개새끼네, 그걸 반쯤 죽여 놓지, 그냥 놔뒀어?
“가끔 그런 생각을 해. 그날 밤 함께 있었다면, 그 여자 후배는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을까?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서 그 새끼를 처넣으려 노력했지만 속수무책이었어. 그 새끼는 너무 막강했거든.”
윤은 자책하고 있었다.
“설마, 네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냐, 명백하게.”
“사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그 어떤 가정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사실 그 여자 후배가 헤어진 남자, 바로 나였거든.”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안개에 휩싸인 골목길 어디쯤에서 형형한 두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결에 멈춘 그의 모습이 안개에 싸여 더욱 희미하게 보였다. 혹은 오랜 시간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었던 탓에 중첩된 눈의 피로가 그의 실루엣을 희미하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희미한 불빛으로 거리를 비추는 저 가로등, 거리를 따라 점점이 놓인 가로등을 따라가다 보면 안개를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나 보다. 미안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듣기엔 그리 유쾌한 말은 아니지.”
놀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나를 믿고 선선히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다.
“아니야. 쉽지 않았을 텐데 네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
“미수, 평소답지 않게 너무 배려 돋는 거 아니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윤의 고백으로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의외의 수확이기도 했다. 하지만 윤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마저 토해내야 하는 또 다른 이야기라도 있는 사람처럼 무언가 절박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잠잠하던 가슴이 또다시 쿵덕거렸다. 호흡을 다시 가다듬었다. 어쩌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말을, 이 순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실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어.”
“뭔데?”
오랫동안 뜸 들인 것에 비하면 너무나 명쾌하고 간단한 말이 윤의 입에서 비죽, 흘러나왔다.
“나, 사실 성소수자야.”
그래서였을까, 나름대로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했던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성, 소, 수, 자’라는 말이 스타카토처럼 띄엄띄엄 들려와 귀에 박혔다. 그러니까 그 네 음절이 삽시간에 와해되면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불분명한 단어로 인식되었다.
“나, 게이야.”
-4-
그때였다. 왜 하필이면 그의 방 책꽂이에 꽂혀 있던 낡은 사진첩이 생각난 건지. 앨범을 구경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가져갔을 때,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윤이 보물 상자 속 감추어 둔 소중한 보물을 꺼내듯 한 장씩 넘기며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가 이곳으로 오기 전 티베트로 수련하러 가기 전에 어머니에게 선물 받았다던 사진첩이라고 했던가. 하필 그 앨범에 꽂혀 있던 수많은 사진 중 단 한 장의 사진이 동공에 박힌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의 윤은 몽골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눈의 외국인 남자의 눈망울엔 선연한 이국적 향취가 배어 있었다. 사진 속 그들은 서로를 지지 대삼아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농담 삼아, 이 사람 참 잘생겼다, 나한테 언제 소개하여 줄 거야? 했을 때, 응? 기회가 되면, 하고 미소 짓던 윤의 목소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떨렸다. 나는 그 음성을 뚜렷이 복귀해냈다.
“혹시 네가 보여줬던 앨범 속 그 사람.”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맞아. 그 사람이 내가 이년 전에 헤어진 바로 그 사람이야.”
나는 그 사람이 설마 ‘남자’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는 차를 팔아 버렸어, 아무 곳에도 가고 싶지 않더군, 더 이상.’
그의 말끝에 묻어나던 촉촉한 물기…. 진정 사랑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즈넉한 육성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한순간도 그가 사랑했다던 그 ‘사람’에 대해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에필로그
윤과 나는 집 앞에서 헤어졌다. 그는 커밍아웃을 하기 전이나 후나 그대로였다. 힘든 이야기였을 것이다. 오히려 그 안개 속을 뚫고 걸어오면서 태연하려 애썼던 건 내가 아니라 윤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의 커밍아웃 후 그야말로 머릿속이 까마득해지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적어도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마치, 고백 한 번 못해보고 실연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그 순간에만 그랬다,라고 단정하듯 말하기엔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딘가 크게 달라져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방에서 정겨운 연말을 함께 보내며 잊고 있었던 사실 한 가지, 그러니까 나이를 한 살 더 먹어버린 서글픈 현실이, 그제야 거대한 신기루의 장막을 걷고 눈앞에 선연히 다가온 것 같았다.
하지만 윤이 내 친구라는 사실과 내가 그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존경한다. 그는 오래 두고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에게 이 말만은 해주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았다. 물론, 그 말은 앞으로의 어느 순간에 해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므로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 해주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다. 이 말은 앞으로의 어느 순간에도 하기 어려운 말이 될 것만 같아서.
“네 말처럼 이미 일어난 일에 수많은 가정을 하는 건 소용없는 짓 같아. 네가 남자가 아닌 여자를 사랑했다면, 이라는 가정은 더는 중요하지 않단 뜻이지. 앞으로는 그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충분히 오랫동안 마음 아파했어.”
윤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새삼 그는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일까, 궁금해졌다. 나 역시 어떤 이유로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할 수만 있다면 온전히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날씨 탓인가. 안개 탓인가. 아니면 그를 친구로서 존경하고 있기 때문인가. 아무래도 이 모든 복합적인 요인이 상호작용한 듯하다.
나는 윤이 돌아선 뒤에도 한참을 서 있었다. 그가 쉽게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서. 할 수만 있다면 희미한 가로등이 되어, 그의 앞길을 잠시라도 밝혀주고 싶었다. 확언할 수 없지만, 안개 속을 걸어온 시간 동안만큼은 서글프지만, 그도 나도 어쩌면 외롭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