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이다

류예지

by 전건우


출근길, 아파트 출입문을 잠그고 돌아섰을 때였다. 주차장을 달리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폭염이 이어지던 여름, 아침부터 귀청을 찢을 듯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셔츠 위로 금세 땀이 고였다. 남자는 신기루 같은 형상으로 차량들이 빠져나간 그늘 한 점 없는 주차장을 달리고 있었다.


출근은 아홉 시. 나는 아파트에서 도보로 십 분 가량 떨어진 일본의 중소 도시 시청에 한국에서 파견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업무는 프로젝트에 따라 발생하는 대외적 통역 지원, 한국문화를 지역 주민들에게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전파하는 일이다. 인근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거나 시청에서 주최하는 주부 한국어 강습에 출강해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주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역시도 본 업무에 모두 포함된다.


이곳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부터 취미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테니스를 하며 생활 리듬이 꽤 규칙적으로 변했다. 아침 여섯 시 반이면 자연스레 눈이 떠지고 밤 열한 시 반이 면 잠이 든다. 일본에 와서 변한 것이 있다면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해 무척 건강해졌다는 것이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늑장을 부려도 출근 시간은 늘 여유가 넘친다.


신기루가 걷히자 남자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났다. 그는 다름 아닌 시청 건축과의 나카타 상이었다. 그와는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다. 파견 생활 초반, 나를 위해 마련한 환영회 겸 회식자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 탓인지 한국에 있는 둘째 남동생 같은 느낌을 주는 그는, 어떻게 보면 귀여운 인상의 소유자였지만, 쉽게 다가가기 힘든 부류로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이후, 그가 파견직 공무원에 제공되는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우리는 간헐적으로 목례 정도의 인사만 하고 지나갈 뿐, 불필요하게 사담을 섞는 동료의 관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업무적으로 부딪히는 일도 적었고 근무하는 층도 달랐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은 넉넉했다.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섰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은 채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달리는 모습은 뭐랄까 어느 순간 절박해 보이다가도 한편으로는 여유로운 느낌을 주었다.


시청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유난히 조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가끔 그가 저렇게 한산한 주차장을 달린다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인 특유의 문화는 사람들과의 일정한 거리감을 조성시킨다. 한국에서는 비록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쉽게 통성명을 하고, 가볍게 술자리라도 가지고 나면 손쉽게 호칭 및 서열 정리가 되어버리지만, 일본인들은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는다. 나는 유학생활을 하면서도, 지금까지도 내 나이를 직접적으로 물어본 일본인을 거의 만난 적이 없다. 그게 일본과 한국 문화의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때문에 주차장을 가로질러 바삐 출근을 하려는 내게, 달리기를 마친 그가 말을 걸어온 것은 의외였다.


"미수 짱, 출근하는 길인 가요?"
"아, 네!"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먼저 말을 걸어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앞에 섰다. 손 그늘을 만들며 다가설 때 그의 몸에서 풍기는 비릿한 땀 냄새를 느꼈다.


"출근 시간까지는 반 시간 넘게 남았는데, 급한 용무가 없다면 조금 쉬었다 가지 않겠어요?"


그는 다른 때와는 달리 명랑하게 말을 붙여왔다.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출근한다고 해도 시청에서 주최하고 있는 전기절약 캠페인 때문에 건물 안은 바깥 날씨만큼이나 후텁지근할 것이 분명했다.



KakaoTalk_20180512_162512541.jpg @류예지



우리는 주차장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 정도가 팔을 뻗으면 잡힐 정도의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더위는 쉬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앉자마자 목젖이 꿀렁거리도록 물을 마셨다. 나는 가방의 버클만 만지작거렸다. 아주 잠시 아뜩한 현기증이 일어나,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가 천천히 말을 걸어왔다.


"일은 어때요?"
"그럭저럭."


그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난히 하얀 치아 때문에 웃는 모습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머리칼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지저분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이내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달리기를 마친 직후라서 그런지 그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를 따라 나의 심장도 함께 두근거렸다.



심장 소리를 뒤로 하고, 새삼 무슨 이유로 이렇게 열심히 달리기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어 졌다. 호기심이 증폭되자 걸러지지 못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전에도 그랬고, 나카타 상이 달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본 것 같아요. 쓸데없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달리기를 하는 거예요?"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뭔가 골몰한 표정이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 것 같은 느낌에,


"혹, 실례되는 질문인가요?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좋아요."


질문을 거두려 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그는 목이 말랐던지 남은 물을 전부 털어마셨다.


"제 아버지는 화가예요. 이 도시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이죠. 삼 년 전에 후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그림 그리는 데만 몰두했어요. 어머니와 나는 뒷전이었죠. 아버지의 삶에서 어머니와 내 존재는 미미했으니까. 나는 그런 아버지를 싫어했어요.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려고 작업실 문을 열면, 마치 의자와 한 몸이라도 된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림만 그리는 아버지가 보였거든요. 어느 순간, 나는 그런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후두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선 그런 강박이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이다음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와 함께 뛰어놀고 싶어요. 가족을 잘 돌보는 건강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보시다시피 제가 이렇게 약골이다 보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달리기를 해서 체력을 기르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달리지 않고는... 무언가 가만히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 달리게 된 것 같기도 해요.마치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요."


두서없이 이어지는 말들을 온전하게는 아니지만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아련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도 궁금했어요. 미수 짱은 왜 그렇게 열심히 테니스를 치는 거예요? 가끔씩 테니스 코트 근처를 지나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미수 짱, 아주 열성적으로 테니스를 치던데 말에요."


예기치 못한 그의 질문에 그만 숨이 턱 막혔다. 나 역시 테니스를 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취미생활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딱히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 맞다. 나카타 상처럼 말이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지 어언 일 년. 풍족하지 않지만, 유학 시절처럼 경제적으로 쪼들리거나 힘든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미 타지, 타국 생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고, 웬만한 상황들 앞에서는 크게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 열아홉 살 때 대학교 진학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고, 대학 졸업 후 잠깐의 회사생활을 청산하고 일본에서 근 삼 년 넘게 유학 생활을 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6년이었다.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매일에 매일이 겹치는 날들. 처음엔 타국 생활이 신선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지루해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일탈을 꿈꾸게 됐다. 그런 내가 고작 새롭게 시작한 일은 라켓을 사고, 유니폼을 구입해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나카타 상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에요. 평범한 생활이 조금 지루했거든요. 테니스를 치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어요."



나카타 상은 말없이 웃었다.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플라타너스의 이파리를 바라보았다. 이파리가 얼굴에 푸른색 그늘을 드리웠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나카타 상이 달리기를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치유해 가고 있는 것처럼, 나도 테니스를 치면서 의식하지 못한 사이 위안을 얻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다를 것이 없다. 잘 웃는 사람이든 못 웃는 사람이든, 잘 사는 사람이든 못 사는 사람이든, 각자가 가진 결핍의 중량은 비슷하다. 그러했기에 우리는 적절한 농도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자, 이제 출근할까요? 미수 짱!"
"이따가 3층으로 올라오세요. 시원한 오렌지 주스 한잔 대접해 드릴게요."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가만가만 따라 웃고 싶어 지는 미소였다. 어느새 매미 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춰 있었다.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자,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에 고픈 사람이라도 된 양 이 도시의 여름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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