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일지, 생존기, 작법서, 홍보 자료, 혹은 연애편지
저녁으로 먹은 양파 카레가 아직 위에 머물러 있다. 벌써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카레가 내려가지 않은 이유는 뻔하다. 그걸 먹은 이후로 움직이지 않고 글만 쓰고 있기 때문이다. 소화가 잘 안 되니 소화불량이라 그에 맞는 약을 찾아 먹는다. 소화가 잘 안 되니 자연스레 위염도 있어 속쓰림을 달래 줄 약도 먹는다. 요즘은 눈이 좀 침침한 것 같아 눈 영양제도 챙긴다.
나는 감히 소설가를 꿈꿨지만 이게 내가 원하던 소설가의 삶은 아니다. 맹세하건데, 정말로 그렇다. 이토록 약을 털어넣어 마치 방부제 인간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건 '스티븐 킹'과 '하루키'와 '김영하'를 보며 자라온 작가 지망생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아침에 일어나 차 한 잔과 클래식 음악으로 시작한 뒤, 가볍게 달리기를 하고 들어와 분위기 있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와 영화 감상 등으로 보내는 것.
나는 이게 바로 소설가의 삶일 거라 감히 짐작을 했는데, 인생에서의 짐작이 그렇듯 이것 역시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실은 거의 매일 비몽사몽 상태인 상태에서 일어나 대용량 에너지 드링크로 겨우 정신을 차린 뒤 밀린 업부(주로 마감에 좀 늦겠다고 애원하거나 비통해하거나 죄송하다고 말하는 내용의 답메일 쓰기)로 시작을 한다. 차 한 잔과 클래식은 없다. 달리기는 괜히 힘만 빠지므로 간단히 생략.
책상은 분위기는커녕 좌우로 쌓아놓은 관련 자료와 서적들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라 일단 '위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제부터 쓰는 일이 남았는데 여유롭고 우아하게 문서 프로그램을 열어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맞춰 한 자씩 타이핑하는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이 내 조상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어깨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쓰는데,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머리카락이 무섭도록 빠진다.
한편만 쓰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내가 아는 장르 소설가 대부분은 멀티플레이어다.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고, 심지어는 동시에 서로 다른 글을 쓰는 괴력을 뽐내기도 한다.
재능이 차고 넘쳐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래야 겨우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좀비 앱의 비밀을 뒤쫓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실종된 여고생을 찾는 탐정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썼고 지금부터는 귀신들린 집에 대해 써야 하며 내일은 또 돌로 만든 거대 로봇 이야기를 써야 한다.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음악과 영화와 독서를 통해 휴식을 취하는 우아한 작가의 삶은 저 멀리, 바다 건너, 혹은 다른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런데도 왜 장르 소설을 쓰느냐고?
이 매거진은 10년 넘게 장르 소설을 써오며 생존하고 있는 한 무명(에 가까운) 소설가의 작업 일지요, 생존기요, 작법서이며 동시에 홍보의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장르 소설에 바치는 연애편지가 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