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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Mar 20. 2020

우연히 알게 된 은밀한 내 취향

신춘문예를 포기하다!

태어나자마자 결정되는 것들이 제법 많다. 저 먼 옛날에는 신분이 그랬고(지금도 비슷한 것 같지만), 생김새나 가정환경, 아니면 취향 같은 것도 탄생과 동시에 결정된다.


부산 남자인 아버지와 부산 여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태어나자마자 손 쓸 수 없는 몇 개의 환경에 놓이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모태 기독교인'이다. 두분 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니 어린 시절 내게 교회란 아주 자연스러운 존재였다. 

또 하나, 나는 '모태 롯데자이언츠 팬'이 되고 말았다. 하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직에 앉아 "부산 갈매기~~"를 부르고 있었으니, 이것은 마치 '천형'과도 같다.


아무튼, 기독교적인 가치라 할 수 있는 사랑과 평화, 그리고 봉사와 희생 등에 대해 그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나는 참으로 착하고 독실하며 건강한 신앙인이 되어 '호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문학청년들이 그랬듯 나 역시 처음에는 신춘문예부터 준비했다. 소설가가 되려면 그 방법 말고는 없는 줄 알던 때였다. 딱히 글쓰기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독학으로, 단지 쓰는 게 재미있어 소설을 써왔던 나였기에 뭐든 좀 확실히 아는 게 없었다. 문단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고, 문단 바깥의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 역시 몰랐으며 바깥의 그 작품들은 아주 그냥 거지 취급 당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리하여 읽고 또 읽어가며 열심히 소설을 쓰긴 썼는데 아무래도 재미가 없었다. 대학 시절 리포트 쓰는 것보다 재미가 없었다고 말한다면 쉽게 이해하시리.

언젠가 한 번은 내가 왜 굳이 이렇게 재미없는 걸  쓰면서 조용히(고시원 시절이었다) 절규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 노트북을 덮어버리고는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PC방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의 공모전을 만나게 되었으니......


호러 단편 소설을 공모하고, 당선되면 출간까지 해준다는 어느 카페의 공지를 보고 나는 눈이 번쩍 띄였다. 


"아니! 호러 단편 소설이라는 게 있다고? 근데 그걸 모집하고 출간까지?"


멍청하게도, 그 말을 해놓고 보니 내가 그토록 좋아하며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들이 생각났다. 딘 쿤츠는 물론이고 언젠가 헌책방에서 샀던 <세계의 공포 소설>이라는 두꺼운 소설집도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런 작품들을 꽤 읽었고 심지어 무척 좋아하기까지 했다. 어디 그뿐인가! <환상특급>이며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역시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즐겨 읽던 책 아니었나.


'호러'라는 장르와 내 삶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을, 그리고 호러라는 이 앙큼한 녀석은 내 등 뒤에 수줍게 서서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아주 오랜 세월 기다리고 있었음을, 나는 그날 그 PC방에서 깨닫게 되었다.


나는 흥분한 상태로 고시원으로 달려가(스타는 연승!) 노트북을 열고 다시 문서 파일을 띄운 다음 아예 새로운 제목을 넣었다.(그렇다! 그때까지 제목조차 못 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귀신이 나오는 공포의 묘지에 대한 이야기>


하마터면 세상에 나올 뻔했던 그 엄청난 제목의 소설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정신을 차리는 것과 동시에 삭제되었다. 이따위 제목으로 쓸 바에야 다시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저 제목은 약간 '신춘문예스럽기'도 한 것 같았다.

나는 고시원 침대에 누워 거짓말 조금 보태 밤새 어떤 호러 단편을 쓸 건지를 고민했다. 수많은 영감과 괴기스러운 설정과 섬뜩한 캐릭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끝에 나는 결국 이야기 한 편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제목은 <선잠>이었고, 어느 날부터 기억이 희미해진 남자가 섬뜩한 사내의 방문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다음 주말을 이용해 <선잠>을 휘리릭(그야말로 휘리릭!) 다 쓴 다음 떨리는 마음으로 공모전에 소설을 냈다.


내가 완성한 최초의 호러 소설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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