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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Mar 21. 2020

나는 천재가 아닐까?

새벽에 문득 하게 되는 멍청한 생각들

태어나서 처음 쓴 호러 단편소설 <선잠>은 1등을 하게 되었다.

공모전에 당선된 것이다.

그리하여, 엄청난 찬사와 함께 앤솔로지에 실려 독자들에게 공개되었으며 결국 영화화 판권까지 팔려 일약 데뷔작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는, 거짓말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조촐한 축하를 받았고 부모님께 지나가듯 이야기를 했으며 회사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만큼 작은 공모전이었고, 그래서 도대체 무슨 작품을 쓴 거냐고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뭐, 간단하게 재미있는 이야기 좀 썼어. 에이. 책이야 나와봐야 알지."


소수의 친구들에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진심이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반만 진심이었다.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솔직한 심정은 '내 작품이 출간된다고요!'라고 적힌 명찰 같은 걸 걸고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분명 처음 쓴 호러 소설이었다. 읽기는 많이 읽었고 내 내면에는 '내게 강 같은 호러'가 차고 넘쳤지만 그걸 글로 써서 1등을 한다는 건 분명 다른 일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사실은 날아갈 정도로 기뻤다. 


행복했다.


1등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소설을 썼다. 호러도 쓰고, 스릴러도 쓰고, 미스터리도 쓰고, SF도 썼다. 본격적으로 장르 소설 쓰기에 빠져든 것이다. 

나는 화수분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 머릿속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차고 넘쳤고 그걸 곧잘 재미있게 표현해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똥싸는 것 가지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수 있겠다는, 더럽게 더러운 자심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가, 이야기꾼으로서의 내 재능을 알게 된 순간이자 (슬프게도) 처음이자 마지막 전성기였다.

그 이후로 지금껏 소설을 쓰고는 있지만 그때만큼 열심히, 그리고 그때만큼 즐겁게 썼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처음 장르 소설을 쓸 때, 그러니까 한참 이야기가 술술 풀리고 아이디어가 샘솟고 쓰는 게 재미있어 미칠 지경일 때는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새벽 두세 시, 머릿속에 이성과 감성의 비율이 8:2 정도로 맞춰지는 바로 그 시간에는 더욱 더.


"나는 천재가 아닐까?"


물론, 아니다. 

당연히 나도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채 두 달도 걸리지 않았다. 1등 후 두 달이 흐른 시점부터는 거짓말처럼 글이 막혔고, 이야기의 샘은 말라버렸으며, 창작의 신은 나를 철저히 외면했다. 너 같은 멍청이는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대부분의 예술과 창작 분야에서는 재능이 아주 중요하고 그 재능을 풍부하게 가진 이른바 천재라는 이들이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낸다.

소설, 특히 장르 소설은 약간 다르다.

천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떤 한 부분에서 특별히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것과 소설을 '완성'하는 일 사이에는 꽤 넓고도 깊은 간격이 존재한다.

기막힌 아이디어를 가진 천재라 할지라도 일정 이상의 표현 능력이 없다면 소설을 쓸 수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설령 둘 다를 가졌다 한들 끈기가 없다면 소설가로 살아남기는 글렀다. 


나는 그런 사실들을 깨달아가면서 지지부진한 몇 년을 보냈다. 출간작이 있긴 하지만 단편 몇 개가 전부라 어디 가서 딱히 소설가라 소개하기에는 민망했다.  또 그렇다고 소설가의 길을 포기하기는 싫어서 몰래 '작가' 명함을 따로 만들어 들고다니기도 했다.


그나마 장르 소설을 완성하는 일이 천재에게만 주어진 특권은 아니라는 사실은 다행이었다. 천재이건, 아니면 나처럼 멍청이건 상관없이 누구나 소설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같은 분량의 글을 타이핑해야 한다는 점은 나에게 묘한 안도감을 선사했다. 나는 그 안도감에 의지해 어쨌든 계속 썼다.


그게 중요한 일이었다.

어쨌든 계속 쓰는 것.


그걸 확실히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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